[조수빈의 독서 칼럼] 공리주의의 모순, 오멜라스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모두가 행복한 마을이 있다. 모두가 평화롭다. 갈등이나 분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의 지능이 낮거나 사회 비판력이 낮은 것도 아니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그런데, 단 한 가지가 이 마을을 안 좋아 보이게 만든다. 그것은 지하실에 갇혀 사는 아이이다. 아이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사람도 만나지 못한다. 고통받는 이 아이 덕분에 이 마을의 다른 모든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 이 마을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언급되어 유명해지기도 하였는데, Ursula K. Le Guin의 소설인 'The ones who walk away from Omelas'의 오멜라스이다. 

 

 

이 책의 앞부분과 뒷부분의 분위기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앞부분은 오멜라스의 좋은 부분들을 소개하며 명랑한 분위기로 소설이 시작된다. 오멜라스에서는 교양 있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에 엄격한 규칙이나 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사회에 존재하는 법들은 아주 적고 군주제도, 노예제도 없다. '멋진 신세계'에서와 같이 모든 사람이 자신이 행복하다고 세뇌당한 것도 아니다. 우리 사회의 사람들보다 비판적인 생각을 하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생각을 단순히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도 아니다. 굉장한 평화롭고 행복한 마을이다. 

 

이 책의 뒷부분, 즉 아이의 존재가 드러나면서부터 책의 분위기는 어두워지게 된다. 이 마을 사람들은 아이의 존재에 대해 모르는 것도 아니다. 모든 아이는 8살에서 12살 사이에 이 아이를 보러 간다. 어떤 아이들은 이 불쌍한 아이를 보며 울기도 하고 식음을 전폐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는 이 아이가 사회의 행복을 위한 전제 조건이기 때문에 아이의 희생을 받아들이고 전체의 행복을 유지해나가는 방향의 사회를 수용하게 된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혼자 오멜라스를 떠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가 과연 정당할까? 지하실에 갇힌 아이만을 배제하고 본다면 오멜라스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완벽한 도시이다. 정말 불가능할 정도로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사회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하실에 갇힌 아이를 생각하게 된다면 우리는 오멜라스가 좋은 도시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공리주의가 가진 한계점, 다수결이 가진 한계점이다. 오멜라스는 공리주의가 가진 한계를 굉장히 극단적인 상황에 적용해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사회에서 의사 결정할 때 가장 편리하고 합리적이기도 한 방법이 다수결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결에는 모두가 알고 있는 한계점이 있다. 바로, 소수의 의견이 묵살당한다는 점이다. 또한, 이렇게 묵살 당한 소수의 의견이 맞고 다수의 의견이 틀렸을 경우 사회에는 혼란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다수결의 원리를 사회에 적용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고 모든 사람이 만족할 만한 타협안을 찾는 일은 굉장히 어렵기도 하고 비효율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효율적인 의사 결정함과 동시에 소수의 의견을 어느 정도 수용할 방안은 없을까? 굉장히 어려운 일인 것은 맞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소수의 의견을 수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수의 행복도 굉장히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소수의 의견을 위해 다수의 행복을 포기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렇기에 다수가 다수결로, 공리주의적인 사고로 정한 방향을 따라가되,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지 않고 계속해서 소수와의 소통과 타협을 유도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조건 다수만이 바르다고 주장하는 것 대신 소수의 입장에서 소수의 의견의 타당성을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최대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타협안에 가까운 방향으로 사회를 끌어나가야 한다. 

 

우리의 현 사회에서도 지하실의 아이 같은 상황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을 수 있다. 물론 물리적으로 강간 당하거나 모두의 협의 하에 지하실에 가둬진 사람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사람들의 차별과 편견 혹은 고정관념 하에 지하실의 아이와 같이 소외 당하고 희생 당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최대한 우리 사회에서 지하실에 갇힌 아이가 나오는 상황을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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