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용의 영화 칼럼] 게임의 규칙, Old but Never Old

 

 

필자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필자는 세계 10대 영화에는 항상 꼽히며, 평론가들이 흔히 역대 최고의 영화라고 칭송하는 ‘게임의 규칙’(1939, 르누아르)을 시청한 경험이 있다. 워낙 인상 깊었던 이 시청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다음 문단에서는 본격적인 감상을 밝혀 보겠다. 아랫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 바란다. 또한 스토리에 대한 설명은 많지 않은, 영화의 내포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글로서, 해당 작품을 감상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난해한 글일 수 있음에 양해를 구한다.

 

계급이 뒤섞인다. 계급을 초월한 사랑은 없지만, 계급 내에서의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어느 계급에서나 똑같은 사랑의 속성에 대해 일반화한다. 이 일반화의 근거로 하인과 주인 모두 사랑의 쟁취를 위해서 폭력을 쓴다는 등의 공통점을 여러 번 비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하인의 옷을 입어서 주인 쥘리에의 계급이 하인으로 너무나도 쉽게 오해받는 결말도 역시 그 근거이다. 엔딩에서 하인 마르소와 귀족 옥타브도 함께 퇴장하면서 근거를 강화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엔딩 시퀀스의 그림자 신scene은 이러한 일반화를 탁월하게 수행한다. 마지막 신에서 하인과 주인, 아내와 정부 등 다양한 계급들은 일시에 저택으로부터 빠져나온다. 이때 감독 르누아르는 사람들을 피사체로 삼지 않고 그들의 그림자를 피사체로서 삼는다. 등장인물들의 그림자들은 그 경계가 모호하게, 주인과 하인의 것이 한 데 뒤섞이며 그림자만으로는 그들의 계급 역시 구별되지 않는다. 감독은 그의 명성에 걸맞게, 영화의 주제에 부합하면서도 미적이며, 은유적이면서도 명확한 결말로 영화를 끝맺은 것이다. 이때 그림자에 대해 떠올린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보자면, 수많은 페이드 아웃도 그림자의 일종은 아니었나 싶다. 즉 영화 내내 등장했던 수많은 페이드 아웃들이 영화의 마침표인 그림자 신과 호응하는 하나의 일반화의 도구는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토록 빈번한, 어떻게 보면 몰입에 방해가 되는 페이드 아웃의 사용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그는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명장이다. 그래서 추측해 보건대, 이러한 몰입에 대한 방해는 내러티브로부터 빠져나와 그림자와 페이드 아웃의 연결이 주는 형식적 조화의 극치로서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려는 감독의 의도가 밑바탕에 있지 않았을까.

 

영화는 1939년 개봉이라는 점과 여러 주인의 허영을 풍자하는 장면에서 상류층을 비판하는 영화라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오해이다. 영화는 절대 상류층들에 대한 경멸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가장 허영심이 큰 인물은 상류층이 아닌 오히려 크리스틴의 하인으로, 하인은 사랑보다는 주인의 자리를 욕망한다. 이때 욕망이라는 것은 자신이 가지지 않은 것을 대상으로 한다. 즉 그녀는 역설적이게도 주인의 자리를 누구보다 크게 욕망하면서 그녀 스스로가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온 힘을 다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영화가 특정 계급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단 여러 일반화된 개념에 대한 포괄적인 풍자임을 알 수 있다.

 

극의 중반에 이르렀을 때 주인들은 여가를 즐기기 위해 사냥을 나간다. 이 장면에서 주인들은 수직적으로, 곧게 서 있고 하인들은 사선 또는 수평으로 토끼를 몬다. 전통 회화에서부터 흔히 수직선은 생명력, 수평선은 죽음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르네상스 시기의 그림들을 보다 보면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시퀀스에서 주인들은 사냥도 정적이다. 마치 사냥이라기보단 클레이 사격 같다. 반면 하인들은 사냥감들을 몰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계급을 명확하게 구분 짓는 장면이지만, 이후 주인과 하인을 교차편집하고 실제로 같은 공간에 섞이기도 하면서 싸우는 장면에서 주인들도 수평으로 넘어지며 망가진다. 이로써 역시 일반화의 목적이 미적으로 달성된다.

 

여자든 남자든 모두 갇혔다. 여자 캐릭터들은 각각 다른 것으로부터 떠난다고 말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일례로, 후작의 정부는 떠나겠다고 말하지만, 방문을 열어 복도로 나올 뿐, 후작에게 ‘중요한가요?’라고 물었던 그 성을 떠나지 못한다. 남자들은 명예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떠나지 못한다.

 

관객들이 집중을 잃지 않도록 사소한 장면에 흥미를 유도하는 방식들이 좋았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처음 쥘리에와 공항 씬으로, 단지 인파를 롱쇼트로 보여주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한 여성 리포터의 경로를 미리 앞서 움직이면서 그녀의 미디엄 샷을 유지하며, 여러 사람과 부대끼는 상황을 연출한다. 그녀는 결국엔 군인에 막혀 멈춰 서게 되고, 이때 카메라는 그녀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나 계속 후진하면서 그녀가 멈춰선 상황, 주변의 소란스러운 상황을 담아낸다. 이후 리포터가 인파를 비집고 와 쥘리에를 인터뷰하는 장면도 한층 동기 부여된다. 이러한 사소한 장치들에서 그 뒤에서 치열하게 고민한 명장의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었고, 절로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졌다.

 

The Rules Of The Game이라는 제목. 게임이란 뭘까. 규칙이란 뭘까. 결국엔 다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는 결국 욕망의 게임에 참여하여, 만들어졌을 뿐인 사랑의 규칙에 목메는 사람들을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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