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연의 역사 칼럼] 고려의 외교와 서희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성공한 외교, 서희의 외교 담판

학교에서 역사 수업 시간에 북방 민족에 대한 수업을 마치고 남은 시간 동안 고려 시대 서희의 외교 담판에 대해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대화만으로 침략국의 군대를 물리고 심지어 땅까지 돌려받은 이 황당한 이야기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외교의 역할과 중요성은 무엇인지 서희를 통해 우리가 배우고 본받을 점에 대하여 생각해보려 합니다.

 

 

918년 왕건이 폭정을 일삼는 고구려의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합니다. 이어 왕건은 백제의 견훤과 신라의 경순왕을 굴복시키며 936년 후삼국을 자주적으로 통일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한반도 통일국가인 고려를 완성합니다. 한반도 최초의 통일국가는 신라의 삼국 통일과 고려의 통일 중에 엇갈리는 의견이 있으나 당나라와 연합하여 이룬 신라의 삼국 통일보다는 자주적으로 통일을 이끈 고려의 통일국가가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으며 자주적으로 통일하기는 어려움이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정치적 견해 차이와 경제적, 문화적 격차가 벌어지면서 더욱더 통일의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염원인 남북통일은 고려의 통일과는 시대가 다른 점을 감안해도 자주적인 통일이라는 의미를 되새기며 배워야 합니다.

 

이후 고려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되찾기 위해 북진 정책을 펼치는데 송나라와는 친 송 정책을 추진하지만, 발해를 멸망하게 만든 거란(요나라)은 배척합니다. 거란은 이를 빌미로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993년 고려를 침입하며 여 요 전쟁을 일으킵니다.1 서희의 외교 담판이 일어난 시대적 배경을 보면 고려, 여진, 거란(요나라), 송나라의 관계 안에서 거란이 중국 통일을 위한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후방 국인 고려를 견제하고자 침략한 여 요 전쟁에서 두 나라 모두 원하는 이익을 얻게 되며 성공한 고려의 외교전입니다. 외교는 국제사회에서 교섭을 통하여 국가 간에 맺는 모든 대외관계를 말하며 모든 나라들은 외교를 통해 자국의 번영과 안녕을 위해 노력합니다.2 우리나라도 주변국들과의 이해관계 속에서 예로부터 많은 외교가 이루어져 왔습니다. 고려 시대 서희의 외교 담판은 주변 정세를 잘 분석하여 능동적으로 대처하였으며 실리 외교를 펼치며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한 것으로 지금까지 외교의 좋은 본보기로 평가됩니다.

 

 

강한 나라를 상대로 서희는 정세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대담한 외교를 펼쳤으며 이에 결과는 고려가 거란에 사대할 것을 약속하고 북쪽의 강동 6주를 확보하며 압록강까지 영토를 확장하게 되고 거란군은 스스로 물러나게 됩니다.

 

거란은 고려가 송나라와 단교하고 여진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주게 되므로 송과의 전면전이 가능해졌습니다. 거란이 중원 진출을 목적으로 송과의 전면전을 하기 전에 후방을 먼저 정리하고자 고려를 침입한 진짜 의도를 꿰뚫어 본 서희의 외교 능력이 협상을 통해 발휘된 것입니다. 전쟁 없이 양쪽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이루어 낸 것으로 서희의 외교 담판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성공한 외교로 평가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가격을 흥정하고 부모님께 용돈으로 받는 금액을 정할 때 대화를 통해 조율하는 과정도 협상입니다. 이처럼 협상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흔하게 일어나며 상대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기 위한 노력이 협상의 출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외교는 나라 사이의 협상이며 개인 간의 협상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오로지 대화를 통해 서희가 적을 물러나게 하고 땅까지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상대방을 잘 이해하고 그 입장을 대변해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협상의 기본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희가 소손녕과의 회담 중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분명 시 한 것은 고려가 고구려의 후손임을 기록으로 밝힌 최초 선언이며 역사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지니는데 현재 중국과의 동북공정 논쟁에서 우리나라의 강력한 증거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역사 속 오래전의 외교가 현재의 외교에도 도움이 되고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서희의 외교 담판은 천년 후를 내다본 외교가 아닐까 싶습니다.

 

서희가 획득한 강동 6주는 압록강 동쪽의 6개의 행정 지역이며 고구려의 옛 영토를 되찾은 것으로 이후 고려의 북방 방어 기지 역할을 하게 되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입니다. 강감찬의 귀주 대첩 역시 강동 6주 중 한 곳이며 고려 후기 몽골군의 침략도 이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막아냅니다. 

 

서희의 외교는 보이는 명분이 아닌 진짜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그 본질에 초점을 맞춰 넓은 시각으로 국제 정세를 파악하고 세계 질서 속에서 우리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외교의 모범 답안을 보여줌으로써 남은 고려사에 있을 전쟁과 외교에 큰 도움으로 영향을 주게 됩니다. 서희를 외교 담판이라는 업적만 보고 외교관 하나에 특정 짓기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춘 분석가이자 전략가이며 뛰어난 재상으로의 업적도 같이 주목해야 합니다.

 

고려는 외교에 적극적이었고 나라의 이익이 무엇인지 실리적으로 대응하였으며 외교술 또한 뛰어났는데 그 시작에 서희가 있었습니다. 후에 들어서는 조선이 명분 외교가 아닌 고려의 역사 속에서 실리 외교를 배웠다면 격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발맞추어 잘 대처해 병자호란 같은 큰 전쟁을 피해 갈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고려는 거란의 압박에도 비공식적으로 송나라와의 관계를 유지하며 두 나라 사이에서 실리 외교를 추구하게 됩니다. 이 모습은 현재 우리나라가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겪는 어려움과 비슷해 보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압박 속에 우리나라는 미국과 친밀한 동맹 외교를 하고 있지만 평등한 관계는 아니기에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두 나라 사이에서 자주 외교를 하기에는 국력이 부족하므로 대외 정책으로는 다른 많은 나라들과 동맹을 맺고 자주 외교도 추진하며 적절한 균형을 통해 실리외교를 펼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많은 청소년이 외교관을 꿈꾸는 데 있어서 외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외교관은 나라를 위해 어떤 일들을 수행하는지 역사의 인물을 통해 배움을 얻고 어떠한 능력을 키워나가며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더불어 서희와 같은 외교관이 많이 나온다면 우리나라 현실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각주

1.참고: goodinj.tistory.com/entry/77고려의-대외관계-및-원간섭기
2.인용: terms.naver.com/entry.naver?docId=569022&cid=46627&categoryId=46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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