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영의 역사 칼럼] 디아스포라, 고향을 떠나다

 

 

디아스포라, 한 번쯤은 들어봤을 수도 있고 처음 보는 생소한 단어일 수도 있다. 디아스포라란 고향을 떠나 강제적으로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단어이다. 오늘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의에 의해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한인 디아스포라는 일제강점기 때  증가하였는데 이주의 대표적인 장소로는 만주, 연해주와 중앙아시아, 일본, 미주와 같은 곳이 있다.만주는 1931년 만주사변 이후 국내 한인을 강제 이주시킨 장소이며 국권을 상실한 이후에는 독립운동가들이 기지를 건설하고 독립운동을 지지한 곳이기도 하다. 광복 후에는 80만여 명이 귀국했으며 잔류한 이들은 오늘날의 조선족으로 불리고 있다. 다음으로 연해주와 중앙아시아는 소련, 일본 전쟁이 발발했을 때 스탈린이 강제로 이주시킨 장소이며 오늘날의 카레이스키와 고려인으로 불린다. 중앙아시아는 홍범도 장군이 강제로 이주당한 장소이기도 하며 많은 민족 운동가들이 한인 자치 단체를 조직한 곳이기도 하다.1 이렇듯 타의에 의해 타국으로 갔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디아스포라들은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곳에서 독립운동을 이어 나갔다.

 

당시의 한인 디아스포라의 삶을 바라본다면 그 누구라도 한숨을 지을 것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살기 위해, 혹은 강제적으로 타국으로 나아갔다. 타국에서 한인 디아스포라들은 고된 노동과 열악한 환경, 저임금에 시달려야 했다. 새벽에 기상해서 하루 10시간씩 중노동을 해야 했고 감시당했으며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다치거나 죽음을 맞기도 했다. 고향을 떠나, 가족을 떠나 하루종일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정지용 시인의 향수라는 시에 나온 '그곳이 꿈엔들 잊힐리야'와 같은 말처럼 꿈에서도 고향이 떠올랐을 것이다. 이처럼 많은 디아스포라가 힘들게 삶을 이어 나갔고 위와 같은 사실들이 우리가 그들을 잊어서는 안되는 까닭이다. 

 

강제적으로 떠난 우리의 민족을 잊는다는 것은 우리의 역사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 또한 한국사 시간에 수업을 듣기 전까지 '디아스포라'를 알지 못했으며 그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알아갈 수록, 그 과정과 그들의 노력을 알게 될 수록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는 우리의 역사에 있어서 그들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기억할 때 비로소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고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뉴스를 보다 보면 종종 차별받는 한인, 우리나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차가운 눈길 속에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들을 마주할 수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고국으로 돌아왔음에도 차별에 시달리거나 작은 집에 살며 전전하는 경우가 많다. 크게 다치더라도 감당하기 힘든 비용 때문에 병원에 가기 힘든 사례도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우리 민족을 위해 이제는 우리가 나설 차례인듯 하다. 우리말이 서툰 한인 디아스포라를 위해 한국어와 문화 교육 시설을 확대하고 지원 정책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우리와 하나라고 여기고 적응하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우리의 인식의 개편이 더욱 중요하다. 

 

그들이 자신이 발딛고 있는 곳에서 노력해왔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민족을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 각자의 위치에서 도움을 주어야 하며 그들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타국으로  흝어졌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간 이들과 한인 디아스포라를 기억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각주

1.참고: 금성출판사 한국사 교과서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