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빈의 윤리 칼럼] 내가 하는 말이 아동 혐오 표현일까

 

 

 

평소에 쓰는 단어에 혐오 표현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아마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하는 말을 인식하지 못 하고 사용할 것이다. 무엇이 혐오 표현인지 알지 못 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혐오 표현을 접하고, 사용한다. 경각심을 가져야한다. 이 글에서는 특히 아동 혐오 표현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무언가에 대해 서투르거나 미숙한 사람에게 종종 ‘~린이’ 라는 표현을 사용하고는 한다. ‘어린이’ 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인 것이다. 이 ‘어린이’ 라는 단어가 초보자라는 느낌을 주고는 하는 걸까. 이 단어를 꽤 많이 사용한다. 그 예로 운동 초보자에게는 ‘헬린이’, 요리 초보자에게는 ‘요린이’ 등. 그러나 이제는 이런 단어를 근절할 필요가 있다. 한 사람으로서 존중하고 인정해주어야 할 어린이들을 미숙하고 부족할 것 같다는 부정적인 고정 관념이 고정되고, 곧 무시하는 태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차별이자 혐오인 것이다.

 

 

 

어린이들이나 학생들의 특징이거나 이들을 대상으로 한 단어가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것도 큰 문제이다. 어리숙하거나 주변에게 피해를 끼치는 아동을 지칭하는 ‘잼민이’, 급식을 먹는 학생들을 낮잡아 부르는 ‘급식’, 초등학생을 달리 부르는 멸칭인 ‘초딩’ 등이 그 예시이다. 이런 단어는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심지어는 예능이나 아이들이 많이 보는 만화책에서도 사용된다.

 

단순히 재미있고 부르기 편하다는 이유로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충분히 문제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어린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은 물론, 하나의 인격체인 어린이들을 존중하지 못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때문이다. 아이들 스스로 자신을 ‘초딩’, ‘잼민이’ 등과 같은 혐오 표현으로 지칭하는 것도 참 가슴 아픈 일이다. 좋은 표현이 있음에도 어른들이 만든 표현에 자신을 낮추고 있는 것이다. 한창 자신감을 가지고 클 아이들에게 이런 상황은 또 다른 학대라고 볼 수도 있겠다.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 “단어 하나 가지고 너무 예민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가끔은 이러한 예민함이 필요하다고. 또한 이런 예민함이 곧 혐오가 당연시 되는 것을 막는다고. 아이들이 혐오 받지 않는 시대에 살고 싶다. 누구나 혐오 받지 않아야 하지만 그 대상이 아이들이라면 더더욱. 아이들을 위해,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아이들에 대한 혐오를 멈출 필요가 있다. 그 시작에는 아동 혐오 표현 근절이 있다. 단어 하나를 바꾸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아이들을 위한 작은 발걸음을 내딛어보자. 우리의 작은 발걸음으로 다져놓은 길을 아이들이 따라 걸을 수 있도록. 먼저 걸어둔 길이 충분히 아름답도록. 어떻게 보면 가장 쉬워 보이는 일이 가장 아름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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