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문학이 삶에 꼭 필요한가? 굳이 없어도 되지 않을까?"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오늘은 내가 문학을 사랑하는 까닭, 필요한 까닭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사실 이번에 선정한 주제는 조금 민망할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고 쉬운 주제이다. 하지만 문학을 즐기는 사람으로서내가 쓰는 올해의 마지막 칼럼이 될지도 모르는 이 글에 내가 사랑하는 문학에 대한 내용을 담고 싶었다. 문학은 언어를 매체로 표현하는 작품과 예술을 뜻한다. 이런 짧고 단순한 정의에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언어'이다. 언어는 전 세계 곳곳의 나라마다 다르며 같은 나라 안에서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할지라도 그 사용 방법과 표현방식은 개인마다 다르다. 나는 같은 언어 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표현의 차이를 보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빨갛다'라는 표현을 살펴보자. 사람들은 모두 빨간색을 보지만 어떤 사람은 이 색을 붉그스름하다고 말할 수도, 또 다른 사람은 개화한 지 얼마되지 않은 장맛빛이라고 말할 수도, 어떤 이는 시장에서 팔리는 사과 같은 색이라고 말 할 수도 있다. 또한 같은 붉은 색이더라도
평소에 쓰는 단어에 혐오 표현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아마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하는 말을 인식하지 못 하고 사용할 것이다. 무엇이 혐오 표현인지 알지 못 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혐오 표현을 접하고, 사용한다. 경각심을 가져야한다. 이 글에서는 특히 아동 혐오 표현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무언가에 대해 서투르거나 미숙한 사람에게 종종 ‘~린이’ 라는 표현을 사용하고는 한다. ‘어린이’ 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인 것이다. 이 ‘어린이’ 라는 단어가 초보자라는 느낌을 주고는 하는 걸까. 이 단어를 꽤 많이 사용한다. 그 예로 운동 초보자에게는 ‘헬린이’, 요리 초보자에게는 ‘요린이’ 등. 그러나 이제는 이런 단어를 근절할 필요가 있다. 한 사람으로서 존중하고 인정해주어야 할 어린이들을 미숙하고 부족할 것 같다는 부정적인 고정 관념이 고정되고, 곧 무시하는 태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차별이자 혐오인 것이다. 어린이들이나 학생들의 특징이거나 이들을 대상으로 한 단어가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것도 큰 문제이다. 어리숙하거나 주변에게 피해를 끼치는 아동을 지칭하는 ‘잼민이’, 급식을 먹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