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을 유영하며 커다란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물고기와, 카데트 블루와 달리아의 색조명이 어항 안을 비출 때마다 그 색을 받아들이며 빛을 통과해 수영하는 해파리들. 모두 아쿠아리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필자는 현재 아쿠아리움에 있는 것도 아니며,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서 모습을 설명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자세하게 묘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 장소에서 구매했던 기념품(記念品)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기게 된다. "기념품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우리는 특별한 공간을 다녀오면 기념품을 산다. 심지어는 기념품을 사기 위해서 여행을 가기도 한다. 그 기념품은 자석, 열쇠고리, 오르골, 혹은 인형 등과 같이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위와 같은 것들을 소장하는 이유에는 물건 자체로도 아기자기하여 예쁠 뿐만 아니라, 행복한 시간을 보낸 뒤, 그곳을 갔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기도 한다. 기념품을 사는 것에 대해 특별한 명분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여행하며 즐겼던 곳을 회상하고 추억하기 위해 사는 경우가 기억을 회상할 수 있는 물건을
우리는 종종 핸드폰 속 세상에서 마주치게 된다. 그 세상에는 현실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외모를 자랑하는 유튜버들을 만날 수 있다. 동그랗게 뜬 눈과 움직일 때마다 한 올 한 올 흔들리는 머리카락, 화려한 옷과 살포시 웃고 있는 입꼬리를 보게 된다. 그들은 입을 움직이면서 다양한 언어를 말한다. 게다가 게임과 소통을 통해 시청자들의 피드백을 받아 더 나은 방송을 꾸려 나간다. 때로는 새로운 밈을 만들고, 노래와 미술에도 능한 모습도 볼 수 있다. 다재다능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이들은 누굴까? 그들은 버츄얼 유튜버이다. 버츄얼 유튜버(virtual Youtuber)는 2016년, 일본으로부터 창시된 인터넷 방송의 장르들 중 하나이다.1 이들은 일반적인 유튜버들과 마찬가지로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여러 가지 콘텐츠들을 진행한다. 하지만, 버츄얼로 방송을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면, 바로 알게 되겠지만 버츄얼 유튜버들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보통 방송을 한다고 하면 목소리만 나오고 모습이 보이지 않거나, 캠을 켜서 자신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면서 진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버츄얼 유튜버들은 앞서 제시한 방송과 달리 2D와 3D를 이용해서 특이하게
4천 억개의 행성이 가볍게 넘는 저 우주의 존재에 대해, 수십 미터 밑에 깔린 심해의 모습에 대해 아는가? 그곳에는 무엇이 존재할지 아는가? 혹은 당신을 결정하는 운명의 형태를 본 적이 있는가? 혹은 배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신의 모습에 대해 믿는가? 앞서 한 질문들에 대해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본 적도 없고,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의 운명과 무의식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믿고 있는 신은 없을 수도 있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잠시 상상해보자. 당신의 몸의 열 배 이상 되는 커다란 무언가가 당신의 머리 위를 배회하고 있다고 가정한다고 치자. 그것의 몸은 형태가 불특정하다. 여러 가지의 눈을 가진 그것의 모습. 구름에 가려 보일락 말락 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아니, 그것은 얼굴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의 기괴한 형태를 띠고 있다. 입도, 귀도 없다. 갑작스럽게 하늘에서 모습을 보인, 알 수 없는 그것이 소리를 낸다. 하지만 당신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당신 앞에 나타난 이 미확인 생명체에 대한 정보도 없고, 당신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것도 정확하게 모르고 있다. '그것'을 우리는 무엇이라 정의해야 하는가.
책을 피고 그것을 집중해서 읽는 데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다. 지루하고, 단조로운 글씨들을 보는 것보다 역시 놀면서 편하게 쉬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뒤의 이야기는 뻔하다. 쉬고 싶다는 중독에 짓눌린 후에 책을 덮고, 침대로 뛰어든다. 이처럼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은 다음 책을 읽는 것은 생각처럼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공부는 지식을 배우고, 습득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부는 학생에게 있어 매우 필수적인 요소이다. 왜? 그 이유는, 무엇보다 학생들의 길을 결정하는 시험이 있기 때문에 공부가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공부가 중요하다는 말은 줄곧 어른들에게서 자주 들어왔던 것이다. 게다가 학생이라는 자리에 앉은 이들은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공부는 이때밖에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며, 정말로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다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떨까? 실제로 공부하는 시간보다 핸드폰을 보면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다. 공부는 왜 이렇게 하기 힘든 일일까? 그리고 공부는 왜 하기 싫을까? 우선, 학생들은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주변에서 공부하라
우리는 꽤 멍청한 편에 속할지도 모른다. 현실에 집중하고, 자신에게 놓여진 상황을 이성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이들은 거의 대부분 우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필자가 '우리'가 멍청하다고 한 이유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들에 금방 현혹되고, 인과 관계가 완벽하지 않은 부분에도 믿음을 주게 된다. 즉, 합리적이지 못한 신뢰(信賴)를 가지게 된다. 이를테면 '이름을 빨간색으로 쓰면 죽는다', '숫자 4의 불운',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질식사' 등등···. 한 번쯤은 장난으로 얘기하면서 넘겼을 테지만, 우리는 무의식 속에서 빨간색으로 이름을 적으려 할 때 망설여질 것이다. 이는, 위와 같은 미신들이 어느 사이에 우리 머릿속에서 자리 잡고 있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이나 숫자에 대해 의미를 두고 이를 불길한 징조로 삼는 것일까? 미신(迷信)의 사전적인 의미는 아무런 과학적, 합리적인 근거도 없는 것을 믿는 것이다.1이런 의미를 통해 알 수 있겠지만, 미신은 즉,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조상들이 만들어낸 한낱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의 과학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핸드폰을 접하면서 우리의 생활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그중에서도, 요즘 특히 급상승하는 부분은 SNS이다. 특히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자신의 셀카를 찍어 올린다거나, 주변 풍경들을 찍은 사진을 예쁘게 보정하여 앱이나 사이트에 업로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경우가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것에 대한 이유가 '보여지는 것에 대한 집착'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언가의 행위를 한 다음에 그 행위에 대한 보상을 갈망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보상이 직관적으로 눈에 보일 때 우리는 더한 보상을 추구한다. 이건 인간의 원초적인 갈증과도 연관을 지어 볼 수 있다. 그 갈증은 '관심'일 것이다. 관심을 받는 것은 다양한 종류로 나뉘어 있다. 예를 들어 사랑을 받음을 통해 관심에 대한 갈증이 채워질 수도 있고, 칭찬을 들음을 통해 관심에 대한 목마름이 해소될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단순한 것이다. 상상해 보자. 자신이 유명한 사람이 되어 있었을 때의 기분을. 잘 와 닿지 않는가?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거나, 자신이 만든 '무언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을 때의 기분을 상상해 보아라.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이 주목받는 것을 좋아한다
치지직 거리는 효과음과 꽤 짠한 화면 해상도. 배경은 놀이터와 어두운 심야. 화면이 전환된다. 한 소녀의 얼굴과 상반신이 보인다. 그리고 그 소녀의 눈이 커지면서 모니터 너머의 플레이어를 응시한다. 그녀는 손을 뻗어 쩍 벌어진 입으로 다급하게 말한다. 목소리 또한 갈라져 있다. 앞서 묘사한 부분은 이건 아만다 더 어드벤처 중 한 장면을 나타낸 것이다. 갑자기 튀어나온 장면이 하나도 없는데, 우리는 마우스 클릭 한 번에 왜 이리 떨고 있는 걸까? 고작 키보드 몇 번만 누르는 데에 있어서 손에 땀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우리가 공포 게임을 하면서 심리적인 압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두근거리는 긴장감과 언제, 어디서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그 아득함이야말로, 진정한 공포심일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공포심을 이용하여 제작한 게임들은 큰 인기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공포 게임에서 공포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요소들은 무엇일까? 바로 연출과 효과이다. 먼저, 연출에서는 BGM과 캐릭터의 외관 등이 이곳에 해당된다. BGM이 으스스할 때, 캐릭터의 외관이 처음부터 소름 끼칠 때, 무서운 분위기를 불러 일으키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인간은 모두 어느 무리에 속해 있기를 갈망한다. 외톨이를 반기는 이는 없을 것이며, 사람들과의 사회적 연대 또한 중요시 여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정서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내던지는 질문에 숨겨져 있었다. 은연 중에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호감을 보일 때, 우리는 그 대상에게 다가가 여러 방식으로 말을 건다. 예를 들어, 인사를 하거나 "오늘 뭐 먹었어요?" 와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주로 말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질문의 종류가 살짝 변화하였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 질문에 대해 언급하기앞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은 사람을 겉으로 보는가, 그 안에 존재하는 진정한 영혼으로 보는가? 답은 정해져있지 않지만, 필자는 외모지상주의 시대, 즉 이젠 외면만 보고 판단하는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사람들은 겉멋을 보고 혹하지 않을 시대. 이제는 사람의 내면의 심오한 뜻과 본질을 알고 싶어 하고, 이전보다 더 깊은 관계를 얻기를 바란다. 인간 관계는 둘 이상의 사람이 빚어 내는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관계를 말한다.1 런 정서적인 관계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