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과거 가부장적인 사회의 틀에서 벗어나 이제는 한국 또한 양성평등의 시대로 다가가고 있다. 국내에선 다양한 양성평등을 위한 제도들과 교육이 시행되고 있으며 실제로 여러 부분에 있어서의 인식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 상황을 보았을 때 필자는 오히려 여성의 차별 대우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역차별이 생겨나는 경우도 있다고 느꼈다. 요즘 많은 논란이 되는 페미니즘 사상 또한 현재 행해지고 있는 역차별들은 외면하고 여성의 인권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비판 받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다.하지만 어디까지가 역차별이고 어디까지가 양성평등이라고 부를 수 있는걸까? 항상 이 문제에 대한 글을 적고자 하였지만, 사안이 민감한 만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솔직한 개인의 의견을 담아보려 한다. 우선 필자가 생각하는 역차별의 사례는 여성 할당제이다. 단순히 여성의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의무적으로 여성을 채용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이 그저 보여주기식 결과를 만들기 위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양성평등을 이뤄내기 위해선 이런 식으로 결과의 평등에끼워 맞추는 것이 아닌 근본적인 과정에서의 문제 해결이 일어나야 한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기회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이다.' 이 말은 우리가 얼마나 다양한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느냐에 따라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 폭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필자 또한 영어와 스페인어 등을 공부하며 그 나라만의 고유한 문화를 직접적으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다.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아름답다. 그 언어에서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를 이해하게 될 때마다 마치 처음 세상을 접한 어린아이처럼 신기해하고 놀라워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필자는 스페인어를 배워두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스페인어는 그 가치에 비해 우리나라에선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고 먼 나라의 언어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스페인어의 장점을 오늘 이 글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되길 바라는 바이다. 우선 스페인어는 정말 많은 국가, 많은 사람에게 사용되고 있는 언어다. InstitutoCervantes 에선 발표한 2018년 전 세계 스페인어 통계에 따르면1스페인어가 모국어인 사람은 전 세계 4억 8천 명으로 2위이고 무려 영어보다 더 많이 사용된다. 또한 스페인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할 수 있는 사람까지 합하면 5억 7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스
K-드라마 열풍이 부는 요즘, 매년 새로운 배우들이 데뷔하고 수십에서 수백 개의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온다. 남녀의 눈물겨운 사랑, 피 튀기는 치열한 복수극, 악당을 무찌르는 멋진 히어로 등 다양한 주제와 화려한 연출들이 시청자의 눈길을 잡아끈다. 그런데 어느 날 필자는 문득 궁금해졌다. 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어쩌면 타인의 삶의 일부를 엿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벌어지지 않은 허구의 이야기들을 감상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어떤 부분에서 열광하고 재미를 느끼며 희열을 얻는 것일까? 그런 점을 하나하나씩 생각하다 보니 오늘의 기사를 적게 되었다. 우선 가장 큰 이유는 대리만족이라 할 수 있다. 개인은 오직 하나의 삶밖에 살 수 없기 때문에 타인의 삶을 본인의 시선에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드라마란 감독이 사람의 인생에서 보여주고 싶은 면들만 확대하여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으로 생각한다. 따뜻하고 감동적인 멜로드라마에선 이번 달 대출금 이자를 걱정하지 않고 다음 달에 있을 시험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으며 푸른 들판을 뛰놀고 잘생기고 예쁜 애인과 즐겁게 지낸다. 물론 고통과 슬픔을 주는 갈등 상
'생각하는 데로 살지 않으면 사는 데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이 있다. 난 이 말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이렇게 내가 삶을 주도하지 못하고 밀면 밀리는 대로, 끌면 끌리는 대로 살면 남들과 똑같은 평범한 삶을 살 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껏 생각만 해오고 실제로 실천하지는 못했던 버킷리스트를 하나하나 이뤄가기로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날씨 좋은 날 수업을 듣다 뛰쳐나와 발길이 닿는 데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남들이 듣기엔 무모하다 여길 만큼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차라리 번지점프를 하고 싶다 말하는 게 나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수업 도중에 가는 즉흥 여행은 졸업하고 나서부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더욱더 좋았다. 부모님한테도 미리 허락을 받고 함께 갈 친구들을 모색했다. 그리고 대망의 날, 날씨는 완벽했고난 처음으로 내가 직접 계획한 버킷리스트 이루기에 한 발자국 다가간 순간이었다. 미리 일러두건대, 이 일은 무단조퇴 처리가 되어 생활기록부에 기재가 되고 보통의 경우라면 선생님께도 매우 혼나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짓이기에 따라 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난 그러한 처벌을 감수할 정도로 간절히 바라던 버킷
학교란 '일정한 목적. 교과 과정. 설비. 제도 및 법규에 의하여 계속해서 학생에게 교육을 시행하는 기관이다.1 또한 대부분의 학생이 꺼리는 곳이기도 하다. 방학식 날엔 기쁨을, 개학 날엔 슬픔을 느끼게 해주며 수업 시간 45~50분가량을 끝나지 않는 영원한 시간으로, 방학 한 달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 버리게 하는 마술과도 같은 곳이다. 또한 8세에서 16세까진 의무적으로 학교에 다니도록 법을 시행하고 있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난 학교에 가지 않는 삶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집에서 학교 수업을 듣는다는 상상은 미래 과학 상상대회에서나 떠올려 보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며 계속해서 연장되는 방학을 겪고 집에서 수업을 듣는 상황이 되자 필자는 꼭 학교라는 곳이 필요하냐는 근본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학교가 필요한 이유는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 또래의 아이들을 만나며 사회적으로 성숙할 기회를 얻고사회 속에서 어엿한 구성원의 몫을 해내는 법을 배운다. 또한 학교는 그나마 사회에서 겪는 편견과 차별 없이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필자도 마찬가지로 학교의 다
무려 520만 개의 관련 영상이 있고, 매년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유튜브에서 가장 유명한 트렌드로 자리 잡은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바로 ASMR이다. ASMR은 Autonomous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약자로 우리 말로는 백색 소음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는 소리를 통해 뇌를 자극하여 쾌락 반응을 끌어내고 심리적 안정감을 주게 하는 것이다. 흔히 팅글이 느껴진다고 하는데 몸의 특정 부분이 간질간질하고 마치 귀에 바람을 불어넣는 것처럼 몸이 떨리는 것을 말한다. ASMR이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이걸 들었을 때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껴 잠들기 전ASMR을 틀어놓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건 좋지 않은 행동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행동은 좋지 않은 것일까? 첫 번째로는 바로 수면을 조건화 상태로 만들기 때문이다. 처음엔 잠을 자기 위해 ASMR을 듣기 시작하지만, 점점 뇌가 이런 상태에 익숙해져 ASMR을 듣지 않으면 잠이 안 오게 되는 것이다. 또한, 유튜브에 ASMR을 검색해보면 'ASMR 고인물 영상'이라는 제목의 영상들이 정말 많이 나온다. 고인물 영상은 잔잔한 소리보다는 더
'글쓰기'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를까. 아마 괴테나 톨스토이 같은 거장들이 떠오를 수 있지만 사실 글쓰기는 우리의 생활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항상 이용되곤 한다. 자기소개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SNS에 남기는 짤막한 글까지도 전부 글쓰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우린 그 글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조금 더 우리의 글을 매력적이고 흥미 있게 만들 순 없을까? 필자는 뛰어난 글솜씨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세 권의 책을 쓰고, 다양한 글쓰기 대회에서 수상하였으며 이렇게 칼럼니스트에까지 도전하고 있는 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생각을 공유해보려 한다. 우선 내가 담고 싶은 이야기의 주제를 확실히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필자가 이렇게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면 그건 잘못된 글이다. 그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글쓰기를 하는 과정에서 혼란을 빚고 독자에게 주제 전달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글을 시작하기 전 생각해보자.내가 이 글을 적는 목적은 무엇인가? 가장 핵심적으로
다들 '외모지상주의'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외모지상주의란 외모에 가치의 중심을 두는 사고방식을 뜻한다. 우린 외모지상주의로 뒤덮힌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성형 수술을 하고, 수많은 화장품들이 앞다퉈 경쟁을 하며 팔려 나간다. 물론 사람의 내면이 아닌 외면을 중심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또한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필자 또한 외모지상주의는 막연히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어느날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하였다. 동물들 또한 이성에게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화려한 깃털을 뽐내고 가꾸는데 이러한 자연의 섭리가 단순히 외모지상주의라는 사고방식으로만 인식될 수 있는지 말이다. 통계청에서 2020년 실시한 인생에서의 외모 중요도를 묻는 설문조사에 따르면어느정도 중요하다는 69.3%, 매우 중요하다는 15.9%이며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응답한 사람은 0.3% 뿐인 것으로 밝혀졌다.1 이는 현대 사회인의 대부분은 외모가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하여 필자의 또래 친구들 또한 중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형 수술을 알아보고, 화장
주말 오후에 동네 도서관을 방문해 본 적이 있는가? 필자는 매주 일요일마다 동네 도서관에 방문하여책을 대여하고는 한다. 그런데 도서관에 갈 때마다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을보게 되는데,놀랍게도 그 중 대부분은 노인층이다. 도서관과 할머니 할아버지, 언뜻 생각해보면 별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가 지속되면서 더이상 노인들은 보호 받기만 해야할 대상이 아닌 스스로노력하고 공부하며 여전히 무언가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1년 4월 기준 총 인구 수는51,702,100명이고, 그 중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8,604,592명으로 대략 대한민국 인구 6명 중 1명은 노인인 셈이다.1 일반적으로 노인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과 달리 필자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마냥 나약한 대상이 아니다. 필자가 다니는 드럼 연습실은 백발의 할아버지가 비트를 쪼개며 깜짝 놀랄 수준의 연주를 하시고, 필자의 친할머니는 최근 피아노로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마스터하기 위해 노력 중이시다. 이처럼 직업을 갖고, 취미를 가지며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써 몫을 다하는 현대의 노인들이 증가해가는 추세
브루스타인은 말했다. "사람들은 남들과 비슷해짐으로써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는 기분을 느끼게 될 수 있다. 그들은 이방인으로 보이길 원하지 않는다."1사람들은 왜 항상 같은 유행을 따르고 서로 비슷해 보이려고노력하는 걸까? 이는 또래 문화 동조 현상 때문이다. 오늘은 이 현상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추운 겨울 하교 시간쯤 학교 앞 정문에 서 있으면 마치 김밥들처럼 롱패딩을 입은 학생들이 우르르 빠져나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롱패딩이 학생들 사이에서 큰 유행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또래 문화는 그 무엇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 옷차림, 머리 스타일, 음식 취향과 심지어는 말투까지도 청소년들만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 ‘등골 브레이커’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열심히 일해서 벌어다 주신 부모님의 돈을 비싼 신발, 옷 등에 낭비하여 불효를 저지르는 학생을 일컫는 말이다. 이 단어의 유래도 결국 또래 문화에 의해 생겨난 말인데, 2011년 모 브랜드의 점퍼가 10대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며 나온 것이다. 당시 학생들 사이에선 가장 싼 25만 원 패딩을 입으면 평민이고 50만 원대인 점퍼부터는 등골 브
2015년 9월 세상을 울린 한 장의 사진이 공개됐다. 전쟁이 없는 더 평화로운 세상을 찾아 그리스로 향하던 중 생을 마감한 한 아이의 사진이었다. 아일란 쿠르디. 그 사진이 찍힌 당시 그는 세 살배기 아이였다. 시리아에 살았던 쿠르디는 내전을 피해 그리스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가족과 함께 쿠르디가 탄 배는 지중해에서 난파되었고, 쿠르디는 터키 보드룸의 해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쿠르디의 눈에 비친 지구의 모습은 포탄이 터지고, 자신의 이웃이 죽어가는 모습뿐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비극적인 하루하루를 보내던 쿠르디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나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빨간색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채로 잠든 것 같은 모습의 쿠르디였다. 죽은 쿠르디의 사진은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를 통해 '파도에 휩쓸린 인도주의'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이후 유럽 내에서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당시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난민 위기의 진정한 비극을 보여준다"는 제목과 함께 쿠르디의 사진을 1면에 실었고, '인디펜던트'는 "파도에 실려 온 시리아 꼬마의 사진이 난민에 대한 유럽의 태도를
최근부르키나파소에 인질 구출작전을 위해 파견된 프랑스 군 2명이 작전 중사망했다. 이에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주재하는 영결식이 앵발리드 기념관(Hôtel des Invalides)에서 엄수되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 곳에서 약 20분간 유족들과 직접 악수를 나누며 운구행렬을 맞이했고, 숨진 장병들에 직접 프랑스 최고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바쳤다. 마크롱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두 장병은 영웅으로서 숨졌다. 이들은 전 세계 어느 군인도 감히 생각하지 못 할 수준의 특출한 군인들이었다." 고 말했다. 이들은 프랑스 국민을 위해 일하다 숨졌다. 숭고한 희생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도 이런 숭고한 희생이 더러 있었다. 6·25 전쟁의 전사자 26만 명,제 2차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해군 6명,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당시 전사한 해병대원 2명 그리고 천안함에 올라타 나라를 지키다 북의 어뢰를 맞아 숨진 46명의 해군. 이 외에도 너무나 많은 희생자들이 있었다. 이들의 희생으로 남한의 최북단 연평도를 지킬 수 있었고, 우리의 동해를 지킬 수 있었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사명감 아래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영웅이다. 이 영웅들이 없었더라면 지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