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민의 독서 칼럼]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생각3

인간이라는 자격을 잃었다

‘인간 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1 요조의 생각이다. 세상을 자기로 살아 낸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자기의 힘으로 사는 것이 버겁던 요조는 약물의 도움으로 살았어야 했다. 약물중독이 점점 심해 짐에 따라 주위 친구들은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리고 그는 이 상황으로 ‘나를 인간으로도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다’라고 생각한다. 존재감 없는 자기의 무가치함을 또 한 번 확인하는 듯했다. 자기 상실로 인한 그의 짙은 우울감이 그 안에 가득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2 라는 요조의 독백. 처음부터 그는 자기 고백으로 무엇을 바랐던 것인 것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심약한 삶을 다시 살고 싶지 않다고, 그러니 나를 도와 달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닌지. 그의 작품을 읽고 있으면 그에게 한 번쯤 손을 내밀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안에 자신에 대한 자책도 느껴진다. 후회했을까.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한 인간의 삶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자신도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이 참을 수 없었던 것일까. 다자이 오사무는 혹시 ‘다른 사람들과 나는 다르다’는 오만함이 저 깊숙하게 있었던 건 아닌지 생각도 해본다. 특히, 그가 바랐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상을 받지 못함으로 보여준 그의 항의하는 모습은 그 의문을 더 강하게 한다.

 

세상에 동화되기 위해 익살꾼으로 살았던 요죠는 회피형 인간이라 생각된다. 인간과 연결될 방법으로 자기보다 익살꾼으로 살아가는데 진실한 만남을 스스로 차단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 생각과 행동을 바라보는 데 비겁함도 느낀다. 그대로의 모습으로 세상과 호흡하는 것이 버겁고 어찌할 줄 몰랐던 요조. 때론 익살스러운 자기모습과 오고 가는 그를 바라보면 불편함도 느낀다. 인간관계에 깊은 신뢰가 결여된 상태가 기반이 되어 있는 듯 해 또 다른 안타까움을 느낀다. 과연 일탈과 실패를 경험하게 하는 세상에 그 책임을 전가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요조 자신이 자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개인의 삶은 개인의 몫이라 생각한다. 친구가 화를 낼까 말하지 못하는데 그 이면에는 나의 말이 무시당하면 나는 속상해, 라는 내 마음이 다칠까 피하고 싶은 마음이 깊이 깔려 있어 보인다.

 

인간으로 집단보다 개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조. 자기만의 우주를 가지고 있어서 세상이 요도를 섬세하게 이해할 수 없는데 요조 또한 세상을 섬세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가면이 살아가는 요조를 보고 있으면 ‘정말 인간답다.’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우리가 모두 자신을 들킬 때 수치심을 느끼게 되는데 그래서 회피하는 것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지 아니겠냐는 생각도 하게 되니 말이다. 여기서 하나의 집단이 나에 대한 기대와 앞으로 내가 경험할 세상에서 나는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 것인가? 라는 나의 기대가 조화롭게 그 삶을 꾸려야 할 것이다. 물론, 커다란 세상에 위축되지 않고 하나하나 적응하기란 만만하지 않을 것도 같지만 그 또한 내가 나의 인생에 책임질 일이다.

 

 

현재, 입시라는 어쩌면 세상에서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기를 위한 과정에서 불확실한 결과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겠냐는 생각도 해 본다. 그 불안한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때로는 예민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내가 경험하는 불안은 상황에 부합하는 정서라 생각하기에 그리 심각하지 않다. 언젠가 어떤 모습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나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에 대한 신뢰로 나는 현재의 삶에 다시 맞설 수 있다. 요조의 모습을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보며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그리고 자기혐오와 연민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그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슬프기도 하다.

 

불안정한 정서가 짙은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에 열광하는 독자들이 많다.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다. 처음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에게 문학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희망찬 내일을 비추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던 거 같다. 마치 전래동화가 권선징악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과 같은. 그러나 나도 몰랐던 나의 편협한 생각을 깨우는데 다자이 오사무의 역할이 컸다. 그의 작품으로 불안한 자신이 세상을 어떻게 느낄 수 있는지, 현재 이 세상 어느 곳에 있을 다자이 오사무와 같은 청춘들을 공감하고 이해할 기회가 되어 타인에 대한 관심이 좀 더 확장된 듯하다. 거대한 세상에서 열린 그들이 무저항만으로 버티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일원으로 더욱 책임감도 느꼈다. 특히, 불안정한 청년세대가 사람을 신뢰하고 두려움 없이 안정적인 관계를 맺는데 사회적 환경보다 먼저 나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책임지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참고 및 인용자료 출처

1.인용: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민음사 p.131
2.인용: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민음사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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