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건휘의 독서 칼럼] 쓸쓸한 소년의 뒷모습이 남겨주는 삶의 의미

「소년이로」(편혜영,2019)

 

 

익히 알고 있던 편혜영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어보았다. 가장 궁금했던 <소년이로>를 학교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이끌려 집어 든 책을 읽게 되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내가 기대했던 전개와 내용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었고 그에 담긴 의미 또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소설집인 <소년이로> 속 다양한 단편소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의 표제작, '소년이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소년이로'에는 두 명의 소년이 등장한다. 중학생 유준과 소진. 두 아이는 둘도 없는 친한 친구이지만 으리으리한 저택에 사는 유준과 다르게 소진은 평범하고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왔다. 아버지가 오랜 병을 앓고 누워계신 유준의 집을 거의 매일같이 드나들고 하숙을 하다시피 하는 소진은 이 집에 발을 들이고 나서부터 쭉 기이한 기운을 느끼게 된다.

 

먼저 유준의 어머니는 유준과 아버지가 함께하는 아침 식사 시간과 같이 모두가 모여있을 때는 누구보다 친절한 친구의 어머니가 되지만, 아침마다 손님방에서 자는 소진을 깨울 때만큼은 말 한마디 없이 냉철한 눈빛을 내뿜는다. 소진은 이러한 어머니의 행동을 쉬이 이해할 수 없지만 이내 순응하기로 한다. 이 집에서 자신이 함부로 견해를 내뱉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준의 소진에 대한 집착은 나날이 커간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병이 악화가 될수록 집안의 분위기는 더욱 어수선해지고, 그럴수록 홀로 남은 유준은 하나뿐인 친구인 소진에게 기대기만 할 뿐이다. 그로 인해 매일같이 소진이 자신의 집과 자신의 침대에서 함께 잘 것을 원하고, 심지어 학교에서 소진이 다른 친구들과 잠깐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도 소진을 노려보며 경계하고 그에 대한 집착을 퍼붓는다.

 

어쩌면 이 집에서 가장 정상적인 인물인 소진은 가끔 유준의 아버지가 병실로 옮겨져 텅 빈 그의 옛 방을 들락거리곤 한다. 처음 갔던 날 열지 못했던 책상 속 잠겨진 서랍을 조마조마하면서도 금은보화가 들어있을까 기대하며 열어보고 싶어 하던 그의 심리를 통해 자신과 비교되는 이 집안의 재력을 엿봄으로써 드러나는 현대 사회의 소득층 간 빈부격차를 의미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는 그저 소진에 대한 동정심과 현실 사회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그러나 후반부 내용이 진행될수록 드러나던 유준의 행동과 그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고 나니 가난한 소진보다 부유한 유준이 훨씬 불쌍한 존재로 여겨졌다.

 

그 후 유준의 아버지는 결국 병세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아버지를 대신해 공장 일을 도맡아야 했던 유준의 어머니는 매일같이 공장에 나가서 바쁜 일이 많았으며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는 동안 유준은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현실을 대했다. 실은 그가 아버지에게 약을 가져다드리러 들른 병실에서 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다는 것을 소진은 알고 있었다.

 

소진은 자신이 동경하고 어쩌면 질투했던 집안이 속히 '풍비박산' 나게 되는 현장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유일한 인물이다. 소진은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슬픔보다도 혼란의 감정이 더 커졌고, 그가 몰래 들어갔던 아버지의 방에 남겨진 서랍은 어떻게 된 것인가라는 의문이 가장 큰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방에 다시 한번 방문하게 된 소진이 보게 된 서랍은 단단히 잠겨있던 서랍이 아닌 누가 다녀간 것인지 말끔하게 열려 텅 빈 나무통의 형상만 남겨둔 채였다. 소진은 혹시나 유준일까싶어 그를 떠올렸다. 그러던 중 요즈음의 유준의 등은 쓸쓸하기 짝이 없으며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어린 소년의 형태만 남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나는 유준에 대한 안타까움을 크게 느꼈다. 아버지를 눈앞에서 잃었으며 유일하게 의지해왔던 단 하나뿐인 친구마저 자신의 아버지가 없는 방을 들락날락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견뎌내던 유준의 모습은 나이답지 않게 너무나도 의젓했고 하다못해 이 상황이 아무렇지 않은 듯 굴기까지 했다. 나는 이 소설의 전개가 늘 소진의 시선에 중점을 두고 있고 소진의 심리에 대한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지만, 궁극적인 의미로는 유준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잃은 그의 뒷모습은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이 책의 제목인 소년이로는 주자의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에서 빌려온 것으로, '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찾아본 작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성장이라는 게 꼭 순차적인 것만은 아니고 상실을 통해 비약적으로 이뤄지기도 한다”며 “죽음을 목격함으로써 삶의 유동성을 깨닫는 소년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한다.1 이러한 작가가 담은 실제 의미를 이해하고 나니 묵묵하지만 유독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던 유준의 마지막 모습이 이해가 가는 듯싶었다.

 

소년이로를 읽으며 유준보다는 소진의 심리에 더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지만, 때 묻지 않은 미성년자에게서 느껴지는 고독함과 유년기의 깨달음은 삶에 대해 더없이 소중한 진리를 알게 해주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나의 남은 유년기의 삶 속에서 지금에서만 깨달을 수 있는 존재들은 무엇인지, 현재의 삶의 의미 또한 어떻게 찾아갈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각주

1.인터뷰 인용: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5091606785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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