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라의 사회 칼럼] 난설헌 허씨와 차별

허난설헌이라는 이를 아는가? 모른다면 허균은 아는가? 허난설헌을 아는 사람은 적어도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을 아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허난설헌과 허균은 같은 이에게 배우고 둘 다 신동으로 불렸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허난설헌의 본명은 허초희로 허균의 누이이다. 여성이 엄청나게 억압받는 성리학의 시기 조선 중기에 다행스럽게도 억압하지 않는 가풍 속에서 글을 짓고 신동으로 불리며 오빠인 허봉 덕분에 그 당시 가장 유명한 시인 이달에게 허균과 함께 배웠다. 그리고 다행스럽지 않게 15살 성리학을 더 중요시하는 남인 집안에 시집을 가 고생 끝에 27세 요절한다.1

 

그녀는 아이를 병과 유산으로 잃고 그를 기리는 《곡자》 시를 짓거나 결혼 초기부터 밖에 나돌고 기방에 가는 남편에 사랑 시를 짓다가 나중에는 현실의 불행을 잊으려 신선이 되는 시를 짓기도 하였다. 허난설헌의 시는 방 한 칸을 채울 정도로 많았는데 유언으로 불태우라고 하여 불태워지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허균이 친정에 남은 그녀의 시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그녀의 시를 엮어 명나라 사신들이 읽게 하였다. 그녀의 시는 그렇게 중국으로 넘어가 큰 인기를 끌고 일본으로도 넘어가 인기를 끌었다.2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에서야 재평가를 받았는데 이는 어째서일까?

 

당시에는 여성이 글을 모르고 이름이 없는 사람도 많을 만큼 여성인권이 없어서3 여성이 쓴 글은 읽어보지도 않고 평가절하하는 것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신분제가 만연할 당시 백정도 집안이 있는데 사대부라도 여인이라면 족보에 오르지 못하니 없는 채로 살다가 흔적을 남기지 않았으면 했을지도 모른다.

 

현재에야 편견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인종이나 성별, 종교 등 내가 하는 것이 잘못된 행동인지 옳은 행동인지 생각해 볼 일이 있었겠지만 과거에는 현재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작고 좁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우리에게 이런 행동은 하면 안되겠구나 교훈을 남겨주는 흥망성쇠 사례이고 돌이킬 수 없기에 과거는 납득하고 넘어가는게  오히려 좋은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과거와 다르니 현재는 괜찮은 것일까? 이 글에 처음 제기한 의문인 ‘허난설헌을 이를 아는가?’에 대답한 사람이라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괜찮지 않은 것 같다. 현재도 아직 작은 세계라서 그렇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과거와 비교하기 우습게 넓어졌기에 더 조심해야 한다. 과거에는 있지도 않았던 편견이 생겨난 것이나 차별이라는 것을 알지만 많은 차별이 있기에 옅게 많이만 알고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등 넓어진 세상에 맞춰 더 높은 사고를 가져야 한다.

 

참고 및 인용자료 출처

1.인용: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69888&cid=59015&categoryId=59015
2.인용: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69888&cid=59015&categoryId=59015
3.인용: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69888&cid=59015&categoryId=59015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