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우의 역사 칼럼] 근대화, 대한민국에서 움직임을 보이다

서양사를 배우면서 서양인들에게 근대는 자유와 평등의 키워드를 가지고 객관성과 합리성을 기반으로 과학적, 이성적 논리가 팽배했던 시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홍경래의 난이나 동학농민운동 등 새로운 시대를 열망하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조선의 멸망과 함께 일본에 의해 자본주의를 일방적으로 수용하게 되어 근대화가 수동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이러한 견해를 반박할 수 있는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이고 주체적인 사상을 찾아보고자 하였고 그 결과, 나철이 창시한 대종교와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이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미친 영향을 알아볼 수 있었다.

 

역사를 통해 미래를 보기 위해서, 우리는 눈은 과거를 보면서 미래를 향해 뒷걸음질 치며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속도는 느릴지 몰라도 신중하게 과거를 되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이전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앞만 보고 나간다면 지나간 역사를 없던 일로 치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약 12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나철의 대종교와 서재필의 독립신문을 통해서 신분제 타파, 자본주의의 유입이라는 혁명적 변화를 겪으면서도 동시에 일제의 간섭을 겪어야 했던 혼란스러운 시대를 읽어내 볼 수 있다.

 

 

나철(1863-1916)은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병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에서 근무하다가 일본의 침략이 심해지자 관직을 사임하고 유신회라는 비밀단체를 조직하였다.을사늑약 이후 을사오적을 처단하려다가 실패하고 힘이 필요함을 절감하였다. 하지만, 무력으로 대응하려 하지 않고 대종교를 창시하여 민족 지사를 규합하고 독립투사를 양성하려고 하였다. 대종교란 단군교라는 말로도 불리는데 한반도에서 기원한 종교로 한국 민족의 정통 사상 및 철학이다. 단군교는 단군이 땅에 내려온 날을 개교한 날로 삼아 한민족이 하느님의 자손이고, 환인은 우리 조상의 천부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이는 일본과 우리의 차이점을 부각하여 우리는 일본과 하나가 아님을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일본은 국권침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단군과 일본의 천조 대신이 형제간이라고 주장하였다. 나철은 이에 반발하여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교육을 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교세의 급속한 확장에 당황한 일제는 대종교를 불법화하였고 이에 나철은 단식수도를 하다가 유서를 남기고 자결을 하였다. 나철의 죽음 이후 그를 중심으로 홍범도, 박은식, 신채호 등 독립운동가들이 뭉치게 되었으며 더욱 활발하게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1896)은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해방 이후에는 국가적 독립 및 국제 외교를 통한 독립을 강조했다. 독립신문에서는 대한민국의 주체적인 근대화 노력을 엿볼 수 있는데,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정보를 전달하였으며 백성에게는 정부 정책을 알려주고 정부에게는 백성의 상황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다.3아래로부터의 개혁을 강조하며 진정한 의미의 평등을 끌어내려고 하였고 모든 신문이 순 한글로 작성되어 정보격차를 줄임으로써 신분 제도를 타파하고자 하였다. 또한 한국 사정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영문판도 발행되었다.

 

독립신문의 기저에 있는 사상들은 서양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사상들과 다르지 않다. 1897년 독립신문 논술을 보면 하나님께서 주신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나의 권리를 남에게 뺏기지 않고 남의 권리를 아무나 뺏지 못하게 하기 위해 나라의 법률이 만들어졌다는 내용이 있어 사회계약론의 기본인 민권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조혼제도, 중매결혼, 축첩을 비판하고 여성에게도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자고 주장하였고 침술, 미신을 비판하고 수질관리, 끓여 먹기 운동, 목욕, 청소, 환기 등의 공중위생을 강조했다.4

 

해방 후 우리 정부가 서양문물과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대종교를 미신취급하여 제대로 연구가 되지않고 그 가치가 폄하된 점을 아쉬움이 크다. 그리스신화, 로마신화는 많은 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어 있는데 정작 단군신화는 읽은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 언급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독립신문이 정부와 민중을 연결하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점은 근대화의 움직임에서 많은 것을 시사한다. 

 

나철은 나라가 약한 시기에 나라 대신 종교를 구심점으로 하여 한민족의 정통사상과 철학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였고 독립투사를 양성했다. 서재필의 독립신문은 문명화를 통해 독립을 이루려 하였으며 독립신문에 나타난 민권사상, 사회계약 사상, 공리주의 사상, 자유주의 경제사상은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1900년경 근대화와 독립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꾸었을 꿈. 그 꿈이 현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현재의 내가 꾸는 꿈이 10년 뒤의 나를 만들듯이.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의 죽음 위에 서 있는 존재이기에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1. 참고: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 나철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1526

2. 참고: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 대종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8C%80%EC%A2%85%EA%B5%90&ridx=0&tot=657

3. 참고: 독립신문 다시 읽기(2004)_서울대 정치학과 독립신문강독회 pg.127-147

4. 참고: 독립신문 다시 읽기(2004)_서울대 정치학과 독립신문강독회 pg..10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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