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호의 무비칼럼 5]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 잡아가는 '시네마틱 유니버스'

스케일은 커지고 부담감도 커지고


최근 영화시장에서 10년이 다되가도록 식을줄 모르는 히어로 무비 열풍의 시작점은 2008년 아이언맨의 개봉을 시작으로 무섭게 입지를 굳혀가는 마블이었다. 특히 마블은 단순히 개개별 히어로 무비의 흥행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등장하는 작품도 다르고, 시대 배경도 다르며, 캐릭터가 보여주는 액션의 종류도 모두 다른 히어로들을 한 프레임 안에서 조화롭게 녹여내는 그들만의 능력을 어벤져스 시리즈를 통해 보여주며 관람객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었다. 마블이 보여주었던 그들만의 장점은 이제 2019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통해 클라이맥스를 보여줄 예정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볼만한 마블의 성공 요인은 제각각 다른 영화의 주인공을 담당하던 케릭터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내세운 작품이 아닌 다른 히어로의 작품에도 간간히 등장하며(대표적인 예로 캡틴아메리카: 시빌워가 있다.) 때로는 수많은 히어로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동일한 세계관, 즉 시네마틱 유니버스라고 한다. 마블은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대단히 잘 활용한 사례에 속한다. 일단 같은 세계관 속에서 언제나 함께 움직이는 히어로들의 원작 속 모습을 그대로 구현해냄으로써 원작 팬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으며, 각각의 개성을 지닌 케릭터들이 보여주는 액션의 조화, 그리고 개별 히어로의 영화가 전체 세계관에 계속해서 영향력을 가지기 때문에 관객들은 마블의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한번 빠지고나면 마블의 영화는 한편한편 모두 관람할 수 밖에 없다.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활용하는 것이 비단 마블 뿐만은 아니다. 마블과 똑같은 히어로 무비를 제작하는 DC(배급사 워너브라더스) 역시 각각의 작품들이 모두 똑같은 세계관 속에서 진행된다. 아실분들은 아시겠지만 DC는 마블과 반대로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상당히 활용하지 못한 사례이다.


필자가 미디어 경청에서 처음으로 작성했던 영화 리뷰가 수어사이드 스쿼드였는데, 필자는 DC의 현상황을 이렇게 정리했다.


'마블의 성공을 보며 조급해진 워너가 어찌해야할지를 몰라서 이것저것 집어넣다 스스로 자멸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은 DC나 감독들(특히 모든 비판을 홀로 받아내셨던 잭 스나이더)보다는 마블의 성공을 따라잡고자 했던 워너 브라더스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보여진다. 마블은 어벤져스의 개봉 전작들만 보면 사실상 아이언맨 시리즈를 제외하고 뚜렷한 흥행작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만의 독자적인 세계관 구축을 차분하게 준비해나갔고 그 결실이 어벤져스에서 터진 것이다. 하지만 DC는 처음 시작부터 마블과 정반대로 여러명의 히어로들을 한 영화 안에 등장시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앞으로 자신들의 세계관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암시하는 대사와 단서들을 너무 일찍 던져버린다. 필자처럼 미리 알고 관람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모를까, 사정을 모르는 관객들의 입장에선 흐름이 끊기고 당혹스러울 수 밖에.


공통적으로 히어로 무비를 만들고 똑같이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활용했음에도 두 경쟁사의 상반된 결과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대세지만 잘못 활용하면 오히려 관객들에게 혼란을 주는 요소로 다가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마블과 DC 외에도 최근 들어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가진 작품들이 정말 많이 등장했다. 2014년 개봉했던 '고질라'와 올해 초 개봉한 '콩: 스컬 아일랜드'(참고로 이 두마리의 초대형 괴수들은 2020년 한 프레임 안에서 격돌할 예저.), '해리포터' 시리즈와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 올해 개봉하는 '미이라'를 시작으로 펼쳐질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몬스터버스' 등등.


그렇다면 관객들은 왜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열광하며, 영화사들은 제작에 있어 여러가지 부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세계관을 가진 작품을 내놓는 것일까?



뭐니뭐니해도 수익성의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부분은 앞서 개봉한 영화들이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거나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 때의 경우이다. 아무래도 서로 다른 영화에서 출연하던 여러 캐릭터들이 한 작품 내에서 등장한다고 한다면 관객들은 일단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이러한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가진 영화들은 대부분 대규모의 자본이 투자되는 경우가 많아서 볼거리가 풍성하다. 필자같은 상업영화 매니아들을 기본적인 고정 관객층으로 보유하고 가는 것이다.(필자 주변만 보더라도 영화 관람객들 중 상업영화 매니아들의 비중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또한 한편의 작품을 보고나면 그다음 개봉작을 보게 되고, 그다음 개봉작도 보게 되는 연쇄적인 관람을 유도하는 것이 시네마틱 유니버스이다.



이러한 연쇄적 관람에는 두가지 경우가 있는데 첫번째는 전작의 매니아층이 후속작의 관람객으로 그대로 편입되는 경우이다. 대표적인 예가 올해초 개봉해서 역대 시리즈 중 흥행 신기록을 달성한 '신비한 동물사전'이다. 필자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한편도 보지 않고 신비한 동물사전을 관람했음에도 너무나 재밌게 관람했는데 해리포터 시리즈를 보고 자란 세대라면 더더욱 열광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이 된 해리포터 세대를 겨냥하여 배우들의 캐스팅도 모두 성인 배우들로 이루어졌고, 해리포터의 팬이라면 꽤나 익숙하실 이름과 주문들이 종종 등장한다.



두번째는 하나의 작품이 전체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로, 마블에서 종종 보인다. 올해 개봉하는 마블 영화는 총 세편으로 5월 3일 개봉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와 '스파이더맨: 홈커밍', 그리고 '토르: 라그나로크'이다. 그 중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와 '토르: 라그나로크'는 마블의 초대형 이벤트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로 가는 중요한 길목 역할을 할 것이 확실시 되어 보이기 때문에 영화팬들은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중이다. 이러한 관심은 자연스레 흥행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으며, 이런 작품들이 흥행을 거듭할 수록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대한 만족감은 높아진다.



하지만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마냥 좋은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관람객들에겐 여러가지 볼거리와 풍성한 스토리를 제공하지만 제작사의 입장에선 여러모로 골칫거리로 작용한다. 스토리의 풍성함을 갖다줄 것 같은 세계관이 오히려 제작사가 원하는대로 스토리를 이끌어낼 수 없게 만드는 족쇄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세계관이 꼬일데로 꼬여버린 20세기 폭스의 엑스맨 시리즈다.


엑스맨 시리즈는 브라이언 싱어가 1편과 2편을 연출할 때까지만 해도 잘 나가다가 엑스맨3와 엑스맨 탄생: 울버린을 거듭하며 세계관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고, 이는 다음 엑스맨 시리즈를 제작하는 감독들에겐 해결해야할 숙제로, 관객들에겐 혼란을 가중시키는 요소가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프리퀄 시리즈가 진행되던 중 브라이언 싱어가 재합류하면서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패스트'로 기가 막히게 꼬여버린 세계관을 정리하고 리부트를 시도하나 했더니 올해 3월 개봉한 '로건'으로 또다시 꼬여버리고 말았다. 물론 '로건'은 지금까지 등장했던 히어로 무비와는 다른 궤도를 걸었다는 점에서 칭찬받아 마땅한 작품이지만 세계관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또다시 혼란을 만들어버린 작품이 되었다. 감독과 휴잭맨도 대놓고 '로건은 세계관을 아예 무시하고 봐달라'고 했을 정도. 그만큼 감독이었던 제임스 맨골드에게도 '로건'의 완성도를 위해선 엑스맨 세계관을 함께 가지고 가는 것은 무리였던 것이다.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양날의 검과 같다. 전작들이 어느정도 흥행과 인지도 면에서 성공을 거두고, 세계관이 잘 정립 되었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고, 앞서 말한 사례처럼 세계관이 뒤죽박죽 엉켜있는 상태에선 먹긴 싫고 버리기엔 아까운 존재가 될 것이다. 앞으로도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가지는 작품들이 여러편 개봉할 것이다. 영화팬들의 즐거움을 위해, 더이상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너무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차근차근 잘짜여진 세계관으로 영화관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칼럼소개: 영화 칼럼이 영화에 있어 또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 감상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칼럼은 하나의 견해를 제시할 뿐 영화에 대한 실질적 감상은 여러분 개인의 몫입니다. 영화에 대한 각자 다른 생각들이 모여서 서로 존중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조영호의 무비칼럼]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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