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채의 독서 칼럼] 십 대들의 시선에서 청소년 임신을 바라보다

친구들과 토론해 본 청소년의 성과 사랑

 

요즘 독서 시간에 조별로 독서 토론을 진행하고 있는데, 우리 조가 선정한 책은 바로, ‘열여덟, 페리의 선택’ 이다. 독일 작가 클라우스 코르돈의 청소년 소설로, 열여덟 소녀 페리가 아이를 갖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은 소설이다. 우리 조는 조원들이 각자 원하는 진로가 다 달라 공통으로 이야기해 볼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사서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신 책이 바로 이것이다. 사실 다른 조들은 조금 어려운 책을 고르는 것 같기도 해서 ‘너무 쉬운 책 아닌가?’ 라는 걱정도 들었지만, 막상 지속해서 토론을 하니 상당히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또, 어렵지 않은 청소년 입장에서 쓰인 책이어서 평소 책을 싫어하던 친구들도 재미있게 읽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 책을 통해 ‘청소년 임신’에 대해 친구들과 토론해 본 생각을 담은 칼럼을 써보고자 한다.

 

책은 주인공 페리가 저녁 식사를 하는 도중 부모님께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리며 시작된다. 페리는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앞둔 열여덟 소녀로, 부모님과 함께 여름 휴가를 갔다가 그곳에서 만난 밀란이라는 소년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밀란은 팔 한쪽이 없는 소년원에서 사는 매력적인 소년으로, 산책하러 나간 페리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서 휴가지에서 짧지만 깊은 사랑을 하게 된다. 휴가가 끝난 뒤에도 둘은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는데, 그러던 중 페리는 자신이 밀란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모님과 친구들은 모두 페리에게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밀란은 아이를 지우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중 페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이냐는 이야기이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페리와 밀란은 결국 아이를 낳기로 한다. 그 과정은 절대 순탄치 않은데, 페리는 굉장히 혼란스러워하며 부모님과 심한 갈등 상황에 처하고,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밀란의 불우한 가정사와 현실도 큰 문제이다. 하지만 페리는 결국 졸업 시험을 미루고 밀란과 아이를 낳기로 하며, 부모님도 페리의 선택을 존중하며 책은 끝을 맺는다.

 

함께 토론해 본 주제 중 인상 깊었던 점 몇 가지를 꼽자면, 페리의 두 친구, 에다와 카로는 서로 페리의 임신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에다는 모든 일에는 분명한 질서가 있기 때문에 페리는 그 결과를 따라야 하는 것이 당연하며 인생도 그에 맞춰서 바꾸어야 하는 것이라 말한다. 카로는 페리는 졸업 시험을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장래를 생각해서라도 아이는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또, 밀란과의 사이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며 불우한 가정사를 갖고 있다는 것도 이유로 든다. 친구들과 함께 두 사람 중 어느 입장에 동의하는지 이유를 말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어떤 친구는 아이는 죄가 없기 때문에 페리가 그에 맞춰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였다. 반면 대다수의 친구들은 페리는 현재 고등학생이고 현실을 생각해서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한다는 카로의 입장에 동의했다. 생각보다 이 문제를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 고 생각했다.

 

반면 생각 외로 개방적인 성 가치관을 갖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윤리 시간에 성에 대한 세 가지 입장을 배웠었는데, 자유주의, 중도주의, 진보주의가 그것이다. 자유주의 가치관은 사랑 없이도 서로의 동의가 있다면 성적 관계가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고, 중도주의는 사랑이 전제된 사이에서는 성적 관계가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진보주의 가치관은 혼인 관계에서만 성적 관계가 허용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실제로 반에서 각자의 생각을 들어 보았을 때도 그랬고, 이 책과 연관 지어 토론해본 결과 자유주의, 중도주의적 가치관 순으로 비교적 이전 세대보다 개방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또, 주인공 페리가 자신의 친구라면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고 싶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었다.

 

평소 이런 주제를 가지고 친구들과 이야기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는데, 독서 토론을 계기로 삼아 의견을 나누어 보니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고, 서로의 입장을 비교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 조는 남녀 학생들의 비율이 거의 동일했는데, 그래서인지 더욱 진지한 태도로 서로 토론에 임했던 것 같다. 나는 주인공이 가끔 참 답답하기도 했고, 또 집안 환경이 좋기 때문에 마지막에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했다. 우리나라와 독일은 십 대 청소년이 임신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다를 것이다. 우선 우리나라는 미혼모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고, 임신한 여자 청소년은 학업을 중단하고,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을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자신의 아이와 함께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페리의 행동은 나 역시 응원하는 마음이 들게 했다. 조금 이를지 몰라도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청소년 임신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 나가야 할까? 청소년의 임신이 옳든 그르든 간에 생명을 책임지겠다는 그들의 선택을 조금은 따뜻한 시선으로,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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