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인의 역사 칼럼] 아들과 나라에 대한 사랑이 만들어 낸 부국강병의 지름길, 태자밀건법

나는 세계사 공부를 하다가 옹정제가 당시 시행한 ‘태자밀건법’이 중국을 넘어 범아시아 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기 위해 칼럼을 쓰게 되었다. 또, 태자밀건법에서 엿볼 수 있는 나라와 아들에 대한 옹정제의 사랑 또한 널리 알리고 싶었다.

 

과거 중국, 대한민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는 ‘왕’ 혹은 ‘황제’ 라는 통치자의 통제 아래에서 생활하였다. 이러한 통치자들은 그들의 직위를 어떻게 다음 사람에게 물려줄까? 대부분의 사람이 알듯이 왕위세습이다. 첫째 아들 즉, 장남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때부터 왕위세습의 방법으로 정권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 왕위세습 때문에 형제들은 서로 죽이고, 죽게 되는 잔인한 사례들이 많다. 이 때문에 국정은 불안해지고, 권력 때문에 가족끼리 서로 신뢰할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만다.

 

이러한 진흙탕 싸움을 피하고자 과감한 정책을 내세운 중국의 황제가 있다. 바로 옹정제이다. 옹정제는 청나라 제5대 황제로 청나라의 지배체제를 확립하였다. 옹정제가 추진한 정책 중 하나인 ‘태자밀건법’은 앞서 말한 불상사들을 최소화하기에 시행되었다. 옹정제는 즉위하자 바로 자신이 즉위하기까지의 황위 싸움을 뒤돌아보고 일찍부터 황태자를 정해놓으면 황태자를 둘러싼 당파싸움이 일어나고, 또 황태자가 교만해진다고 하여 황태자를 공표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리고는 황태자의 이름을 써서 간직하였다가 황제가 죽은 후에 개봉하는 방법을 실행하였다. 간단히 말하면 황제가 사망하기 전 장남을 황태자로 책봉하는 기본 방식과는 달리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황태자의 이름을 적어두었다가 황제가 사망하면 개봉하여 황태자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옹정제는 태자밀건법을 통해 황제의 자리를 두고 다투는 형제들의 싸움을 뿌리 뽑기를 꾀하였다.1

 

나는 태자밀건법을 시행한 옹정제가 매우 존경스러웠다. 당시에는 유교적 사고가 우세했기 때문에 장남에 대해 우호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지만, 옹정제는 나라의 부국강병을 위해 이러한 사고를 과감히 포기하고 진정으로 유능한 아들을 황태자로 세우려고 한 것이다. 또 이뿐만 아니라 황태자를 미리 공개했을 때에 발생할 수 있는 갈등과 죽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가 한 결정이 나중에 공개되도록 미루고 또 미룬 것이었다. 나는 이가 다음 황제가 될 아들과 나라 모두를 배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능한 황태자를 미리 밝힌다면 그의 형제들은 황제가 되기 위하여 가족을 죽이는 것을 서슴지 않고 실행할 것이며 만약 황태자를 죽이게 된다면 가족이라는 범위 내에 잔인한 사건일 뿐만 아니라 국가를 이끌어갈 현명한 미래 지도자가 제거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는 가족이라고 하는 사적인 관점에서나 국가라고 하는 공동체적 관점에서나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국가와 황태자를 모두 보호하기 위해 옹정제는 당시 시대적 발상에 역행하는 중대하고도 위험한 선택을 한 것이다.

 

또, 태자밀건법을 통해 지혜로운 황태자가 황제에 즉위한다면 나라가 부강해진다는 것은 당연하다. 장남만을 고집하여 무능한 아들을 허수아비 지도자로 만들고 통제자의 능력 부족 때문에 나라가 점점 쇠퇴해가는 것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이렇게 나라의 성장과 황태자의 보호를 위해 풍습과 사고까지 바꾼 옹정제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라와 아들을 향한 옹정제의 따뜻한 사랑이 청나라를 아시아를 주름잡는 강대국으로 발전시키는 데에 크게 이바지하였다고 나는 확신한다. 만약 이러한 태자밀건법이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시행되었다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아마 궁궐 내 가족 간 피 튀기는 싸움이 덜 하였을 거라는 예상을 조심스레 하며 선진적인 정책을 개발하지도 수용하지도 못한 우리나라의 역사에 조금은 아쉬움을 남는다는 의견을 표한다.

 

각주

1.인용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52487&cid=40942&categoryId=39994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