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민의 독서 칼럼] '평등'에서 출발하는 삶의 가치

카프카 '변신'을 읽고 시리'즈 3

카프카의 변신을 읽으며 주인공 잠자의 삶을 살펴보며 인간의 실존 가치에 대한 생각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이는 곧 나의 이야기며 우리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삶을 점검할 기회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 내 생각은 끝나지 않았다. 잠자의 삶을 이해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삶의 모습을 과연 개인의 책임만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또 다른 의문을 품게 되었다.

 

개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그 삶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변화될 것인지 는 동의할 수 없다. 자기 삶의 질을 그 개인에게만 전가한다는 것이 어디서 말하듯 '2%로 부족하다'는 생각과 '그 부족함은 ‘평등주의’가 일정 기반이 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여기서 ‘평등’이란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카프카의 작품으로  접하게 된 인간의  실존적 가치를 고려하면,  인간은 존중되어야 마땅함으로 누구나 사회에서 권리나 위세를 획득하는데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를 얻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의 가치를 논할 수 없다. 그러나 각자의 역량(개인의 능력과 노력)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생각은 특별한 방식의 정당화가 필요하다. ‘평등주의’ 이념을 최초로 전개한 스토아학파는, 모든 인간은 덕에 대해 동등한 능력을 갖춘 이성적 존재로서 ‘천성적으로 평등’하다고 보았다 (사회복지학 사전 이철수 저 인용). 다시 말하면 사회가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고유하게 존중하고 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평등주의''가 잘 발달하여 있다. 능력 중심의 사회이기에 개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존중하고 각자가의 실존하는 기반이 된다. 그리고 자기의 선택과 결정으로 그 삶의 내용은 다양해 지고 생존방식이 차별화된다. 여기서 개인이 현실에서 선택하고 결정한 각자의 고유한 실존방식을 그대로 인정한다. ‘평등’이라는 모두에게 제공된 현실이라는 장에서 자기 결정으로 생존방식은 다양해짐에 따라 그 실존의 형태는 전적으로 각자의 몫이다. 여기서 ‘성과’를 말하고 이것이 각자의 현 삶을 만드는 동력이 된다. 혹시, 이러한 과정으로 성취한 각자의 몫을  불평등이라 제기한다면 먼저 자신을 이성적이고 균형있게 바라보길 권하고 싶다.

 

이렇게 우리나라를 비롯해 선진국에서 개인의 능력 차이를 인정하고 그 역량에 따른 성과에 따른 보상을 받는 사회적 ‘평등’을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상반되는 국가로 일본을 말한다. 그들은 오히려 ‘평등주의’로 개인의 창조적 재능이 있는 사람들의 역량을 어렵게 하는 등 '몰개성적'이다.  여러 민주국가의 평등과 달리 일본의 평등주의는 자유와 책임, 평등을 인간 중심의 사회 발전적 차원에서 보지않고 국가 중심으로  평등을 말한다. 이는 절대적’ 평등감으로 경쟁을 없애고 모두의 평등을 강조하는데 지금까지 일본의 발전을 저해하고 비합리적인 현상을 나타나게 한 요인이라 생각한다. 평등한 위치에서 평등한 자격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말하는 평등은 각자의 역량도 평등이라는 기준으로 통제하는 데 그 문제가 있어 보인다.

 

 

 


우리의 평등과 같은 말이지만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것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후진국 수준인 일본의 IT 인프라이다.  일본 정부는 예전부터 적극적으로 전자화된 정부를 구축하기 위해서 큰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번번이 실패에 봉착하고 현재도 좀처럼 잘 진척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근본적인 문제는 성과에 대한 평등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성과주의를 지지하는데, 공정한 출발선에서 정당한 방법 (평등)으로 각자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그에 따른 성과는 각자의 몫으로 돌려주는것이 선순환의 동기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 힘으로 더 나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각자가 만들어낸 성과 또한 평등이란 명목으로 모두의 몫으로 돌림에 따라 그 동기가 저하되는 악순환을 경험하고 있어 보인다.

 

또 하나의 생각을 해본다. '평등주의'에 대한 차이를 단순히 정책적 측면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각국의 정서가 반영된 문화의 특성으로 이에 대한 설명도 가능 할 것이다.  이에 그 가능성에 대한 접근을 남겨두고자 한다. 다만, 각자의 노력으로 얻어낸 성과를 내는데 평등이라는 명목으로 사회가 보상하지 않는다면 나조차도 그 열정을 다하기 힘들 것 같다. 이와 함께 각자의 능력을 자유롭게 발휘하여 그에 따른 보상을 정당히 받는 민주주의와 다른 평등이 그 발전을 방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고집하는 것은 그들의 경험에 기반한 정서에 의한 것으로 그대로 존중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 참고  일본인의 심성과 일본문화 가와이 하야오 저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