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의 문화 칼럼] 장애인 문화권을 보장하자고? (1). 역사 속 사례

작년 중순 즈음 우리 학교에 관현맹인 전통예술단이 방문하여 국악 공연을 펼친 일에 대해 스쿨통 기사로 다룬 적이 있다. 나는 그 공연을 계기로 장애인 계층의 문화예술 활동이 우리 사회의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암묵적 장벽을 허물어 진정한 사회 통합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해 탐구한 내용을 칼럼 1편부터 5편까지에 걸쳐 다루고자 한다. 본 칼럼은 장애인 문화권이 무엇인지, 왜 갑자기 등장한 개념인지에 대해 궁금해할 독자들을 위해 역사적 사례를 통해 장애인 문화권에 대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마련한 서론과도 같은 장이다.

 

문화는 인류의 탄생과 함께 인류와 더불어 진화해 왔고, 인류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특히 문화·예술 활동은 소비적 측면에서는 정서적 안정과 만족감을 안겨주고, 생산적 측면에서는 개인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자아실현을 성취할 수 있는 수단이기에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는 데 있어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누구나 자유롭게 문화를 누릴 권리인 ‘문화권’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모든 국민이 장애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모든 영역의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할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는 내용의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장애인복지법』 제8조,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4조,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제3조 등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 내지는 약자의 위치에 놓인 장애인이 문화권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요컨대 장애인 문화권은 장애인 계층이 어떠한 제약이나 차별 없이 비장애인과 같은 위치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문화·예술을 누릴 기회를 누릴 온당한 권리를 의미한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인권이라는 개념이 전무했던 과거부터 어쩌면 오늘날까지도 장애인을 포함한 소수자 계층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은 팽배해 왔고, 그 결과 소수자 계층과 문화 향유 사이에는 장벽이 존재해 왔다. 하지만 오늘날 상황은 달라져 장애인들이 그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국가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함께 TV나 인터넷과 같은 미디어를 통해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술적 환경 또한 마련되어 있다. 이에 따라 장애인 계층의 문화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고, 이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사실 오늘날의 장애인 문화권 보장을 위한 노력이 최초의 일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인 조선 초기 세종 재위 시절, 음악 관련 궁중 업무를 맡아 보던 관청 관습도감의 박연의 상소를 받아들여 맹인 악사들을 지원, 교육하여 궁중 악사로 등용하여 녹봉과 벼슬을 주고 궁중 행사 때 향악을 연주하게 한 ‘관현맹(管絃盲)’이 있었다1. 세종대왕은 재위 13년 “맹인 악사는 앞을 볼 수는 없어도 소리를 살필 수 있다.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는데, 관현맹은 고종 때까지 전승되어 오다가 오늘날에는 ‘관현맹인전통예술단’이 그 정신을 계승하여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과 시각장애인 악사들의 뛰어난 예술성을 알리고 있다. 2019년 9월에는 판교고등학교에 방문하여 학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였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미국 순회공연을 성황리에 마무리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더 오래 된 사례로는 ‘맹인독경(盲人讀經)’이 있다. 맹인독경은 복을 빌거나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맹인들이 여러 경문을 읽으며 행하는 전통신앙 의례이다. 세종 재위 시절에는 맹인들의 직업 교육의 일환으로 독경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주로 국가가 어려울 때, 가정에 경·조사가 있을 때 행해졌다. 맹인독경은 고려시대 이후로 오늘날까지 천 년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2017년에는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48호로 지정되기도 하였다2.

 역사적으로 장애인 예술가들의 업적은 예술계의 발전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한국장애인사』에서 선정한 조선시대 장애 위인 66인 중 38%이 예술인이었으며, 해외의 경우『세계장애인물사』에서 선정한 장애위인 137명 중 58%가 생전 문화·예술 분야에 몸 담았다. 문학 분야에서는 ‘4대 비극’과 ‘5대 희극’으로 널리 알려진 셰익스피어를 비롯해「이솝 우화」의 이솝,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 「데미안」의 저자 헤르만 헤세, 「노인과 바다」의 저자 헤밍웨이 등 문학사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가진 명작을 남긴 작가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미술 분야의 경우에도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 프리다 칼로, <아담의 창조>의 작가 미켈란젤로, 인상파의 대표적인 거장들인 클로드 모네, 르누아르반 고흐 등 장애를 극복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화가가 많으며, 음악 분야에서도 인류 역사상 최고의 음악가들로 칭송받는 모차르트베토벤, 슈만 외에도 오늘날 수많은 음악인들의 롤모델인 가수 스티비 원더, 피아니스트 이희아 등 많은 음악가들이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앓았다. 이들은 모두 예술사적으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훌륭한 예술가들이다.

 

다음 칼럼에서는 필자가 직접 행한 설문조사를 통해 알아본 비장애인 계층의 장애인 문화권에 대한 인식 현황과, 장애인 문화권이 실현되었을 때의 기대효과와 그 의의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참고자료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관현맹&ridx=0&tot=54)

2) 한국문화재재단 공식 블로그 (https://blog.naver.com/fpcp2010/221407209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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