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권 선언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가 인류·가족·모든 구성원의 타고난 존엄성과, 그들의 평등하고 빼앗길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할 때, 자유롭고 정의롭고 평화적인 세상의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1그렇지만 현실은 그렇게 까지 낭만적이지 않다. 인권이 정치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 현실이고, 미디어는 현실의 인식을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반영한다. 이 책,<이 장면, 나만 불편한가요?>는 이런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를 다루는 미디어의 시선을 폭로하고 있다. 성별과 경제적 부, 성적 지향과 정체성, 인종 등에 대해서 그 동안 우리 사회가 어떻게 사람들을 그려 왔는지에 대해서 여러 예시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일상과 매체 속 혐오 표현에 대항하는 방법으로는 '대항 표현'이 있다. 대항 표현이란 "혐오표현을 논박하고 약화하는 맞받아치기, 되받아쳐서 말하기"2라고 할 수 있다. 거창한게 아니라, 일상 속의 담론에서도 쉽게 실천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홍콩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태도에 대해서 '짱깨'니 '중공'이니 같은 혐오 표현으로 공격하는 대신에 'Stand With Hong Kong'같은 대항 표현으로 홍콩
군사 쿠데타를 감행한 박정희와 전두환 두 전 대통령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말했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굉장히 우스운 결론이 나온다. 이승만, 박정희와 전두환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반국가단체의 수괴’가 되는 셈이다.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국가보안법 제2조 ①)”으로 했던 사건에 정확히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렇담 선거철마다 나오는 보수 정치인들의 ‘박정희 칭찬’은 국가보안법 제7조에 비추어 “찬양ㆍ고무ㆍ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ㆍ선동(국가보안법 제7조 ①)”1한 행위가 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볼테르가 했다고 (잘못) 알려진 말이 있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라는 문장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어떠한 이념이든 포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이 당연하다. 그런데도 국가보안법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무고한 피해자들만을 낚아 올렸다. 1970년에는 철거반원에게 “김일성보다 더한 놈”이라고 하였다는 이유로 한철거민이 처벌을 받아야 했다.50년이 지난 2020년에는 기여코 민중가요 하나 불렀다고
지난 4년간 친북·친중·반미 성향을 보여 온 한국 좌파 정권의 수장(首長)이 미국 민주당 출신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서 내놓은 성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찰떡 동맹’을 강조한 것이어서 놀랐다. <뜻밖의 한·미 동맹 확인서(김대중)>, 조선일보 중1 6월 1일, 조선일보에 올라온 한 칼럼의 첫 문단 중 일부이다. 어느 언론인의 개인적인 생각이겠지만, 이런 인식이우리나라 보수의 문재인에 대한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자유한국당 시절 원내대표를 맡았던 나경원은국회 본회의에서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는 과격한 표현까지 감수하며 문재인을 비판했다. 이후에도 이런 류의 발언들은 여러 번 나왔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 이인영 통일부장관, 조국 전 법무부장관 등 문재인 정부의 인사들의 인사청문회 당시에도 보수 국회의원들이'사상 전향' 질의를 쏟아냈던 것들도 이러한 맥락이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지극히 진영 논리적인 말들에 불과하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부정했다거나, 약화를 주장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취임식부터 "한미동맹은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문재인은 한미동맹을 부정했다거나, 약화할 것을 주장했다거나,
요즘 여성 징병제에 대한 논란이 젠더 논쟁의 물결을 타고 더욱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제는 이전과는 다르게 정치권에서도 직접 언급할 정도다. 여성 징병제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여성 징병제를 도입하는 사람들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군사력 증가에 필수적이다. 둘째, 여성 징병제는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이다. 셋째, 인구 감소 시대에 여성 징병제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필자는 여성 징병제에는 아무런 실증적 근거도 없을 뿐더러, 명분도 없는 주장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여성 징병제에 대한 여러 ‘명분’ 중에 인구 감소에 대한 대비가 꼽히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명분은 부가적인 미사여구다. 병력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던 시대는 세계 2차 대전 이후로 이미 사라졌다. 인구가 적다 하더라도, 탄탄한 경제력과 현대화, 정보화된 무기가 전쟁의 승패를 가른다. 더군다나,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적인 수준에 이미 달성했다. Global Firepower기준으로 대한민국은 군사력 6위에 달성했다. 설령, 모병제로 전환되었을 때 일부 병력이 빠진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순위는 상위권에 머무를 것이다.1 우리나라보다 군사력 순위가 낮은 국가들도 모병제
정체성 정치란, "공유되는 집단 정체성을 기반으로 배타적인 정치 동맹을 추구하는 정치 운동이자 사상"1을 의미한다. 정체성 정치는 사회 운동의 일환으로, 특정 집단의 권리를 주장하지만 모든 연대를 거부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해당 사회적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연대를 구한다. 이 연대는 고전적인 계급 의식과는 다른 형태다. 순수히 타자에 대한 거부로 뭉친 의식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체성 정치는 차별에 맞서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특히, 젠더와 인종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운동의 한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학술적으로도 최근에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존중받지 못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은 주목할만 하다. 그는 이 책에서 '정체성 정치'를 분석한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인권 운동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민족과 종교로까지 정체성 정치의 영역을 확대한다.2하지만 필자는 여기서는 보수적이며 전체주의적인 민족과 종교에 기반한 정체성 정치를 논의의 대상에서 거부하고, 소수자의 권리를 위한 운동의 방법으로써 정체성 정치를 비판하고자 한다. 후쿠야마는 모든 인간은 "대등 욕망"을 가지고 있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새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민주주의'를 언급했다. 그런데 이 단어에 무언가 불만이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자유>라는 단어 하나를 뺀 것이 이 사람들에게는 매우 큰 불만이었다. 당시 보수 논객들은 일제히 이를 비판하는 사설들을 발표했을 정도였다. 이들이 지적한 것은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 진영이 보여주는,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알레르기적 반응이다. 이 알레르기는 임기가 다 끝나가는 이 시점까지도 치료되지 않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일까? 자유민주주의란,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진정한 민주주의는 자유주의를 전제로 하여야만 가능하고, 양자(兩者)는 본디 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민주주의를 이르는 말"1이라고 한다. 즉,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국민이 주권을 가진 국가가 실현될 수 있다는 이념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이런 의미보다 정치적인 수사로 더 많이 사용되었다. 실제로민주당계, 그리고 진보 진영 정치인들은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를 꺼려왔다. 오히려 보수 진영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더 애용했다. 그러나 민주당계, 그리고 진보 진영 정치인
일본의 오염수 방류 결정으로, 잠시 사그라들었던 반일 감정이 다시 불붙었다. 대학생들은 30일 동안 반대 농성을 하기도 했고, 국회에서는 긴급 현안질의 등이 일어났다.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좋은 적이 없었다. 이번 일은 단지 그 긴 역사 중 단지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일본은 1945년 패망 이후 제대로된 사과를 하지 않았으며, 지속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무시했다. 지속적인 망언은 덤이었다. '반일'에 대한 여론은 정치적 성향에 상관없이 꾸준히 올라간다. 우리나라가 반일을 외치는 이유는 결국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과이다. 독일은 68 혁명 이후 끊임없이 사과를 했다. 몇 십년이 지났는데도, 독일의 사과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속적인 사과로 독일은 외교의 모범 사례 중 하나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언급되는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우리나라에서 잘 언급조차 되지 않는 나라가 있다. 베트남이다. 한국은 박정희 정부 당시, 외화 유치라는 목적으로 베트남에 파병을 결정했다.이 당시 미국으로부터 받은 외화 특수는 우리나라 경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베트남에 많은 상처를 남겨주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는
언젠가 한 신부님의 강론을 들은 적이 있다. 교인들이 외식하러 나오면 성호를 긋는 것을 꺼린다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울 때가 많다. 성직자의 이름을 걸고 추악한 일을 할 때도 그렇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발언들을 할 때도 그렇다. 요즘은 성소수자(LGBTQ+)를 단죄하는 교회를 볼 때도 그런 생각이 든다. 가끔씩 교회의 이름을 걸고, 동성애는 죄악이다, 질병이다, 치유 가능하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용감한 교회들의 사례들도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었던 것이다. 한국주교회의도 공식적으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했다. 얼핏보면 교회의 교리와 반대되지 않는 것 같지만, 차별금지법의 내용 중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대한 단서 조항들을 문제 삼은 것이다. 교리를 살펴보면 너무 복잡한 면이 많다. 수천년의 역사를 맥락으로 한 성서비평학적 접근부터 수천 페이지가 넘는 문헌을 배경으로 한 접근까지. 그러나 성경은 성소수자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류 해석이 되었다.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죄인 취급을 받기 일쑤다. 가톨릭
우리나라는 헌법 33조에서 모든 노동자들에게 노동 3권, 즉 단결권, 단체 교섭권, 단체 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이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단결할 권리, 즉 노조를 설립할 권리인 단결권을 가지며, 노조를 앞세워 사용자에게 교섭을 요구할 권리, 즉 단체 교섭권을가지며, 만일 사용자가 응하지 않거나 불성실할 경우 파업 또는 태업같은 노동 쟁의를 할 수 있는 권리, 즉 단체 행동권을헌법에 의해 보장받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조합에 대한 시선이 별로 좋지 않다. 특히 경제 신문들을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이제는 기득권이 되어 버렸다는 비판이 많다. 귀족 노조라는 비판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특히 한국 GM(제너럴 모터스) 노조의 파업 이후로 이런 시각이 더 커졌다. 회사가 망해가는 상황에서도 이익만 챙기려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노동권 보장과는 거리가 먼 나라 중 하나다. 국제 사회는 우리나라를 노동권 5등급, 즉 아프리카 국가들과 동일한 수준의 보장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는 노동권이 명시는 되어 있지만, 아직 보장할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는 작년에야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에 비준했다
칼럼니스트는 논쟁하는 사람이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같은 진영에 있는 사람과 논쟁하는 것도 칼럼니스트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두 번째 칼럼에서는 미디어경청에 나온 다른 기자의 기사를 비판하고자 한다. 그 기자처럼 정치적 견해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절차는 생략하겠다. 다분히 정치적이고, 다분히 논쟁적인 글이 될 것이다. 불편할 누군가도 있을 수 있겠다만, 이 글은 불편하게 하고자 쓰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그 칼럼에서는 진보의 실패 원인을 진보적인 부동산 정책의 실패와 여당의 독재를 꼽고 있다. 그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진보는 경제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러니 개혁을 열망했던 국민이 떠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1 작은 부분부터 비판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 우선적으로 보수 진영과 놀랍도록 일치하는 단어 선택은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극좌스러운, 극우스러운 등의 표현이라던지, 여당의 독재라는 표현이라던지... 하지만 이런 것에 걸고 넘어지는 것은 진보답지 않을테다. 그래서 필자는 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자 한다. 그대가 말하는 진보는 어떤 진보인가? 그대는 어떤 진보주의자인가? 소위 ‘진보 진영’인 그대에게 민주당은 진보였
참 우여곡절도많았던서울시장재보궐선거가드디어끝났다. 양대정당의후보모두너무나아쉬운모습을보여준선거였다. 이번서울시장선거는고박원순서울시장의사망으로인한궐위에의해치뤄진선거로, 국민의힘오세훈전서울시장, 더불어민주당의박영선전중소벤처기업부장관이맛붙었다.그러나이번에는 또다시정책없는선거가되어버렸다. 필자는 더 좋은 논쟁을 위해서라면 군소 후보들에 주목하라고 말하고 싶다. 이번에선거는네거티브공방이가득했다. 정책을놓고대결하고논쟁하는모습은쉽게찾아보기힘들었다. 안철수후보와오세훈후보의단일화과정에서도서로의정치적논란에대한공방만이오갔다. 이후본선에서도오세훈과박영선은서로네거티브에압장섰다. 정작, 공약에서는두정당모두대동소이했다. 이번선거에서시장의임기는1년짜리였으나, 두후보모두대선에나올법한공약들을들고나왔다. 1년이임기인시장이할수있는일은많지않다. 잘해봐야자치경찰제등새로시행되는제도에대해서제대로된초석을놓고, 자치단체의인사문제를해결하면서정부와정책협의를마치면1년은금방갈것이다.1 그런데도저렇게큰규모의공약들을내세우는이유는, 중요한 선거들을앞두고있기때문이다. 즉, 거대양당의후보양측에는정책을내세울이유는딱히없는것이다.지역 발전보다는 차기 선거의 정치적의미가더강하게작용했다. 공약은토론회에서만서로검증하고넘어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