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종의 사회 칼럼] '반일'하기 전에

일본의 오염수 방류 결정으로, 잠시 사그라들었던 반일 감정이 다시 불붙었다. 대학생들은 30일 동안 반대 농성을 하기도 했고, 국회에서는 긴급 현안질의 등이 일어났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좋은 적이 없었다. 이번 일은 단지 그 긴 역사 중 단지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일본은 1945년 패망 이후 제대로된 사과를 하지 않았으며, 지속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무시했다. 지속적인 망언은 덤이었다. '반일'에 대한 여론은 정치적 성향에 상관없이 꾸준히 올라간다.

 

File:NO, BOYCOTT JAPAN.png

 

우리나라가 반일을 외치는 이유는 결국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과이다. 독일은 68 혁명 이후 끊임없이 사과를 했다. 몇 십년이 지났는데도, 독일의 사과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속적인 사과로 독일은 외교의 모범 사례 중 하나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언급되는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우리나라에서 잘 언급조차 되지 않는 나라가 있다. 베트남이다. 한국은 박정희 정부 당시, 외화 유치라는 목적으로 베트남에 파병을 결정했다. 이 당시 미국으로부터 받은 외화 특수는 우리나라 경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베트남에 많은 상처를 남겨주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계속해서 베트남에 손을 내밀고 있다.

 

소양강가에는 춘천 월남전 참전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역사는 어찌된 일인지 거꾸로다. 우리나라는 월남전 파병을 미국에 먼저 제안한 국가다. 전쟁은 미국이 시작했지만, 전쟁에 함께 하기로 결정한 것은 미국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은 한국군 파병에 반대했다.1 

 

<신짜오, 신짜오>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한 한국 가정과 베트남 가정 사이의 우정을 갈라놓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2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그 베트남 가족 앞에서 자랑스럽게 대한민국은 침략 전쟁을 한 사실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 뒤에 한 문장을 더 덧붙이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엄마'는 거듭 사과하면서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나무란다. "당신이 뭔데". 우리는 누구일까. 일본의 오염수 방류 결정에 그토록 분노하는 우리는.

 

일본에 분노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왜 일본에 분노하는가이다.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이 일본일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박정희 정부가 베트남 파병을 결정한 것은 결국 외화를 위해서였다.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던 것도 결국 식민지와 자본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일본에만 그렇게 집착하고, 일본에만 분노를 쏟아낼까. 우리는 왜 우리에게는 분노를 돌리지 않을까...? 왜 우리는 역사 교과서에 베트남 파병 사실을 실어놓았으면서 한국을 선한 나라, 국제 관계의 피해자로 포장하고 있을까.

 

'반일'하기 전에 생각부터 하자. 고민없이는 아무런 발전도, 진보도 없다. 역사는 끊임없이 전진한다. 언제나 일본에 분노하고 살 수는 없다. 그래서 필자는 제안한다. 제발 잠깐 멈추자고. 일본이 어이없는 행동을 해도, 끊임없는 행동주의(activism)은 진지한 움직임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분노는 효과적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짧다. 그러나 성찰과 고민은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김수영)> 중

 

참고문헌:

참고: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42610112107684#0DKU

2 참고: http://www.cultura.co.kr/news/articleView.html?idxno=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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