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호의 무비칼럼 2] <브이 포 벤데타> 신념이 있다면 누구나 'V'가 될 수 있다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해선 안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지."


3차 세계대전이 끝난 2040년, 전쟁의 여파로 온 국가가 혼란에 빠져있다. 전쟁, 질병, 테러의 위험은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심어 주었고, 사람들은 점점 자신들을 안전하게 해줄 지도자를 원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정권을 잡은 서틀러 정권은 하나된 국가를 이루어 국민들을 안전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서틀러가 말한 '하나된 국가'는 국민들의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아니, 많이 달랐다. 정부를 비판하는 일체의 풍자, 시위는 용납되지 않았고, 음악, 그림과 같은 예술작품들 역시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며 금지시킨다. 심지어 성적 취향, 종교, 인종마저 탄압하며 철저하게 '하나된 국가'를 지향한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제 기능을 할 리가 만무하다. 언론은 정부의 사상을 국민에게 전달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국민들은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이것이 국가가 안전해지고 내가 안전해지는 길이라 믿으며 점점 무기력해지고 나 자신을 잃어간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일까.


정부가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철저히 국가를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공포'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 정부는 '국민을 안전하게 해주기 위해'라는 명목 아래 수용소에서 각종 생체 실험을 자행한다. 그러던 중 인간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와 백신을 발견하게 된다. 국민들을 선동하고 빠르게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서틀러는 국민들의 '공포'를 이용하기로 한다. 상수도에 바이러스를 풀어 전염병을 퍼뜨리고 뒤에서는 제약회사를 설립해 백신을 판매하여 막대한 이익을 챙긴 것이다. 10만 명의 사망자를 유발한 전염병 앞에서 국민들은 자신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겠다는 정권의 등장에 결국 자유와 권리를 반납하고 말았다.


"임무는 단 하나, 피의 복수!"


서틀러 정권의 온갖 추악한 짓들이 시작된 수용소가 의문의 사고로 폭발하고, 바로 그곳에서 화염과 함께 분노에 가득 찬 '브이'가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그는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정체를 숨긴 채 자신을 이렇게 만든 이들에게 피의 복수를 다짐한다. 그런 그의 앞에 '이비'가 나타난다.


"세상은 나쁘게만 변해왔잖아요"


이비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힘없는 시민일 뿐이다. 게다가 그녀의 부모님은 이비가 어릴 적 사회 운동을 하다 서틀러 정권의 탄압에 희생되었고, 이비는 침대 밑에 숨어서 자신의 어머니가 잡혀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이비는 더이상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들에게 저항했다가는 자신도 부모님처럼 어디론가 끌려가 소리소문없이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안고 산다. 그러던 중 핑거맨에게 겁탈 당할 뻔했던 이비를 브이가 구해주면서 정반대인 두 사람의 만남이 시작된다.



브이는 방송국을 습격해 자신이 미리 녹화해 둔 방송을 전국으로 송출시킨다. 그는 자유로운 비판과 사고, 의사 표현이 금지된 이 나라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고 대가를 치르겠지만 이 지경이 되도록 방관한 건 바로 여러분입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두려웠던 거죠. 누군들 아니겠습니까? 전쟁, 테러, 질병, 수많은 문제가 연쇄 작용을 일으켜 여러분의 이성과 상식을 마비시켰죠."


브이는 서틀러가 정권을 잡기 위해 사람들의 공포를 이용했음을 간파하고, 사람들에게 1년 뒤 오늘 자신과 뜻을 함께 하기를 부탁한다. 늘 두려워하며 살던 이비 역시 브이의 연설을 지켜보며 무언가 느끼는 점이 있었다. 정확하게 자신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이와 함께 하는 것은 여전히 위험하다고 판단한 이비는 TV쇼를 제작하는 자신의 친구 디트리히를 찾아간다. 디트리히 역시 브이와 마찬가지로 이 나라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동성애자이지만 서틀러 정권의 성 소수자 탄압으로 자신의 성적 취향을 철저히 숨기고 살아왔다. 세월이 흐르며 잃어가는 것은 비단 성욕 뿐만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디트리히, 이비, 그리고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 말이다.


디트리히는 브이의 연설에 인상 받고 곧바로 서틀러 정권을 희화화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송에 내보낸다. 비판과 표현을 억제 당하던 사람들은 방송을 보며 오랜만에 웃음을 되찾았지만 그것도 잠시, 디트리히는 집으로 들이닥친 서틀러의 부하들에게 희생 당하고 이비는 침대 밑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극한의 공포에 휩싸인다. 브이의 연설과 디트리히를 통해 조금이나마 세상이 바뀔 수 있겠단 희망을 가졌지만 또다시 부모님이 잡혀가던 것과 똑같은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며 이비에게 더이상 희망은 없어 보였다.



끔찍한 고문에 시달리며 고통받던 이비에게 변화를 준 것은 이비와 같은 수감실에서 죽었던 '발레리'의 편지였다.


"난 여기서 죽어요. 내가 지닌 가치도 사라지겠죠. 전부 다... 하나만 빼고요. 고결함. 작고 약하지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본질. 그걸 포기하거나 저들한테 뺏겨선 안 돼요. "


이비는 발레리의 편지를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해서는 안될 인간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사실 이비가 겪은 것은 이비의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 브이가 설계한 혹독한 체험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비는 자신을 따라다녔던 두려움을 떨쳐내고 자신의 신념을 되찾을 수 있었다. 훗날 편지를 읽을 누군가가 자신과 같은 처지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고결함을 포기하지 않길 바랬던 발레리의 진심이 이비에게 그대로 전달된 것이다.


사진에 나오는 장면에서 과거 화염에 휩싸인 수용소에서 분노에 가득 차 울부짖던 브이의 모습과 비를 맞으며 감격스러워하는 이비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브이는 불에서 태어났다. 그는 독재정권의 피해자이고, 파괴와 폭력을 동반한 피의 복수를 원한다. 반면 이비는 물에서 다시 태어났다. 그녀가 발레리의 편지를 통해 본 것은 사랑과 희망이었다. 궁극적으로 두 사람이 원하는 목표는 같았지만 그에 대한 방식에 있어서는 차이가 존재한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괴물 같은 짓을 했어!"

"그리고 당신을 괴물로 만들었죠."


브이는 다시 태어난 이비를 보며 다른 것을 깨닫는다. 바로 어떠한 혁명도 증오와 폭력을 통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실 브이의 행동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여러 사람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결국 폭력은 계속해서 폭력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면 브이 스스로는 철저히 하나된 국가를 위해 폭력과 탄압을 서슴치 않았던 서틀러와 다를 바가 없게 된다.



"내가 만들었고 속했던 세상은 오늘 밤에 끝나. 내일은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 거야.

이건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갈 사람들의 몫이야."


결국 브이는 자신이 겪었던 폭력을 똑같이 행사했던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그것을 죽음으로서 마무리짓는다. 폭력과 공포로 얼룩졌던 시대는 브이의 손으로 끝내고, 새로운 세상은 사랑과 희망을 간직한 다음 세대(이비)에게 맡긴다.



브이는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가면을 쓴 채 한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비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브이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가면 뒤의 얼굴, 이름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간직하고 이루려 했던 신념과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신념과 이상을 간직했을 때, 우리는 누구나 '브이'가 될 수 있다.


우리의 희망은 다른 사람이 찾아주지 않는다. 두려워하거나 무심해하며 해결사가 나타나 주기만을 바란다면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다 가지고 태어난, 부정부패로 높은 자리에 오른, 말만 번지르하게 늘어놓는 사람이 아닌 우리 사회를 이루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각각의 신념을 간직한 채 '브이'가 되었을 때, 비로소 불합리한 상황을 바꿀 수 있다.



칼럼소개: 영화 칼럼이 영화에 있어 또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 감상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칼럼은 하나의 견해를 제시할 뿐 영화에 대한 실질적 감상은 여러분 개인의 몫입니다. 영화에 대한 각자 다른 생각들이 모여서 서로 존중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조영호의 무비칼럼]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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