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금전달 나눔의 집으로

따뜻하고 먹먹한 나눔의 집 이야기



지난 12월 7일 경기도교육청에서 주관하여 나눔의 집에 성금 전달식이 있었다. 나눔의 집은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에 위치하며 일제에 의해 성적 희생을 강요 당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이 곳에는 할머니들이 생활하시는 나눔의 집과 위안부에 관련된 모든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 역사관으로 총 두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본격적인 성금 전달식을 하기 전 나눔의 집 대표님과의 짧은 면담이 있었다. 현재 나눔의 집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체험, 봉사, 기부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고 있는데 그 중 일본인들의 방문 수가 가장 많고 실제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말동무가 되어주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고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위안부 할머님들께서 직접적인 피해를 당한 국가가 일본인데, 일본인들의 배려와 선심을 꺼리지 않고 받아주시는지.." 라는 질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 나눔의 집 대표님은 "처음에는 마음을 쉽게 열지 않으셨죠. 그 일본인들도 그럴 반응을 미리 예상하면서도 용기 내어 매달 정기적으로 와서 할머님들과 말벗이 되어드리니까 할머님들도 마음을 여시더라고요." 라고 답변하셨다. 지금껏 개인적으로 일본 하면 별로 좋지않은 이미지만 생각이 나곤 했는데 이렇게 양심적이고 자신 국가의 과거행적에 반성할 줄 아는 자세를 가진 일본인들도 있다는 것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적인 충격을 물질적으로 치유할 수는 없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의 편안한 생활을 위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성금을 전달하고서 역사관으로 향하였다.

역사관 입구에는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동상이 있었는데 그 동상들은 시작부터 애잔하게 하였다. 역사관 내부에는 그 당시 끌려간 피해자들의 명부와 출신, 피해자들이 머물었던 위안소와 위치들 모두가 자세히 긴 글로 설명되어 있었다. 그 긴 글을 꼼꼼히 읽으면서 내부에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 목소리가 글을 읽는 사람을 더 울컥하게 하였다. 그 위안부 피해자들에는 대다수가 한국인이었지만 필리핀, 러시아, 심지어 자국의 일본인까지 다양한 국가의 피해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차이점은 일본인 위안부일 경우는 단지 생활하기 어려워 직접 자신의 의사대로 따라 간 것이며 한국인 위안부들은 일을 시켜준다는 거짓에 속아 강제로 끌려간 것이다.


역사관 내부를 걷다가 나의 발소리가 무겁고 웅장하게 울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그곳은 바로 실제 위안소를 표현한 곳이었다. 그 당시 위안소 복도에서 군인들의 군화 소리에 위안부 피해자들이 두려움과 긴장감을 가지게 하기 위해 바닥을 의도적으로 나무판자로 설계한 것을 섬세하게 재현해 두었다. 또한 위안소 안은 감시용 작은 창문과 딱딱한 침대, 비좁은 공간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그런 비좁고 잔인한 공간에서 나 자신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생활한 모습을 상상해보니 가슴이 먹먹해지고 조용히 눈물이 고였다.


어두운 공간과 어두운 과거에 밝은 빛을 주는 사람들이 역사관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눔의 집에 기부해준 사람들의 이름과 금액이 모두 적혀져 있는 곳이었다. 그 명단에는 유명 연예인들과 여러 학교 이름도 있었는데 이 많은 기부자들을 보고 사회의 악질도 많이 있지만 아직 따뜻하고 큰 아량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는 것에 놀랐고 이런 사람들이 사회에서 주목받아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역사관에서의 깊은 여운이 맴돌며 위안부 할머니들이 계시는 나눔의 집으로 향하였다. 할머니들을 실제로 뵐 생각에 기쁘고 영광인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내 개인적인 감정을 잘 추스를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많은 할머니들이 나와 계실 줄 알았던 나의 예상과는 달리 연세가 많아 보이시는 할머니 한분만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계셨다. 이 곳에 오면 할머니들과 잠시라도 좋은 추억 만들고 가야지 할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할머니를 앞에서 뵈니까 말이 쉽게 나오질 않았다. 그렇게해서 어렵게 나온 질문 한마디. "평소에 뭐 하면서 지내세요?" 라는 말에 할머니께서는 "뭐 별거 할 건없지 뭐."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해주셨다. 실제로는 나눔의 집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서 노래부르기, 종이접기, 한글배우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할머니들의 오랫동안 쌓인 상처때문인지 남을 쉽게 믿는 것이 어려워 오랫동안 프로그램을 하진 못했다고 한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 평생 지워지지 않고 남아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아직 이 나눔의 집에 계시는 위안부 할머니들 말고도 외부에 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살아 계신다. 단지 용기가 나질 않고 신분 노출에 민감하여 이 곳에 오지 못하고 계시는 분들도 많다. 다음에 다시 방문할 수 있게 되는 기회가 찾아온다면 그 땐 지금보다 더 많은 할머님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편안하고 건강하게 지내시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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