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말있어요

독립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며

Grand Budapest Hotel - Directed by Wes Anderson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필자는 아버지와 주말마다 새로 개봉한 영화들을 보러 가는 것이 취미생활이자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장르의 구분은 없었다. SF, 판타지, 로맨스, 다큐멘터리, 스포츠 등등 선호하는 장르에 따라 영화를 선택하기보단 일단 영화관에 간 뒤 재미있어 보이는 영화를 선택하였다. 많은 영화를 보면서 마음속 깊은 감동을 하게 된 영화가 있는가 하면 어린 나이에 이해하기 어려웠던 영화들도 있었다.


수많은 상업영화를 보고 난 뒤에 필자는 독립영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의 자본 압력에 따른 요소들을 배제하고 감독이 전하려는 주제를 최대한 담아낼 수 있으며 참신한 예술적 시도가 가능했다는 점에서 독립영화는 평소엔 잘 다니지 않던 골목길과 같은 흥미로움을 주었다.


필자가 가장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던 독립영화가 바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었다.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감독의 작품인 이 영화는 2014년 베를린 영화제의 개막작이자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이다.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 미술상, 의상상, 분장상을 받았으며 개봉한 지 2년도 채 안 된 영화지만 "영화의 색감"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영화가 바로 이 영화이다.


간략한 줄거리로는 1927년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세계 최고 부호 ‘마담 D’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다녀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의문의 살인을 당한다. 그녀는 유언을 통해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명화 ‘사과를 든 소년’을 전설적인 호텔 지배인이자 연인 ‘구스타브’ 앞으로 남긴다. 마담 D의 유산을 노리고 있던 그의 아들 ‘드미트리’는 구스타브를 졸지에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게 되고, 구스타브는 충실한 호텔 로비 보이 ‘제로’와 함께 누명을 벗기기 위한 모험을 시작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영화를 보다 신체 일부가 잘리는 장면이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는데, 누군가의 죽음이 굉장히 허무하게 표현되고 다음 부로 넘어가면 금세 잊힌다. 이런 장면들은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당시 시대의 분위기들, 폭력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해됐던 것들을 표현하는 감독의 의도이다.


영화는 액자식 구성에 내부 이야기가 5부로 나누어져 있다. 내부 이야기를 5부로 나누어 놓은 구성은 마치 소설을 읽듯 적절히 쉬는 시간과 그 연결부를 잘 이어놓았다. 그리고 영화의 흐름을 계속 따라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부분은 바로 배경음악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나오는 배경 음악들은 모두

단조로운듯하면서도 머릿속에서 맴도는 그 멜로디인데 이 멜로디들은 영화가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또한 영화에 더욱 몰입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였다.


세계대전을 이야기의 배경으로 함에도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귀엽고 따듯한 분위기를 주는데

영화를 보면 세트, 의상, 소품 등이 아기자기하게 표현되었고, 화면 또한 귀엽고 알록달록하게 구성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의 감독인 웨스 앤더슨의 키덜트적(Child 과 Adult 의 합성어 아이들 같은 감성과 취향을 지닌 어른) 성격이 반영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여러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핵심적인 소재는 바로 영상미에 대한 부분이다.


영화를 보며 관객들은 대부분 이전에 쉽게 접하지 못한 영상미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화면의 비율은 계속 바뀐다. 이 또한 감독의 의도된 표현인데, 다양한 시대마다 쓰인 특정 화면비율을 사용하여 시대상의 흐름을 표현하였다. 영화에서 주로 사용한 화면 비율은 액자식 구성의 시나리오를 표현하기 위해 4:3 비율의 화면을 사용하였다(아날로그 SDTV의 주 해상도 화면 비율이 4:3이다.) 또한 배경의 공간감을 극도로 보여주기 위해 광각의 렌즈로 화면을 담았다.


영화에서는 화면의 구성이 좌우대칭으로 되어있거나 정면이나 정 측면에서 화면을 구성하였다. 영화 내에서 인물이 이동하더라도 카메라 앵글의 가운데를 중심으로 모두 이동하게 된다.


또한, 카메라를 수평으로 이동시키는 시각적 요소가 두드러지는데, 이러한 부분은 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수평, 수직의 자로 잰듯한 화면 구성이 깔끔하고 정갈하게 표현되어 통일성을 주고 영상미에 대한 아름다움을 돋구는 요소가 되었다.


이 영화에서는 영상미를 돋구는 요소로 "색채"를 굉장히 비중 있게 사용한다. 필자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직원들의 유니폼의 색감이 강렬하다는 것을 느꼈다.


멀리서 보아도 딱 보이는 원색 ‘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호텔 직원들은 호텔의 가장 주요한 인물들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었고 그들을 호텔 안에서 아주 돋보이게 하였다.


원색 이외에도 파스텔 색조를 많이 사용하였는데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힌 '구스타브'에게 면회를 간 호텔 로비 보이 제로는 케이크를 건넨다. 포장지는 파스텔 색조의 아주 사랑스러운 분홍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삭막한 느낌의 교도소 안에서 사랑스러운 분홍색 케이크 포장지가 주는 느낌은 정말 이질적이었다. 다양한 장면에서 파스텔 색조의 색감을 이용하여 원색의 강렬함과는 조금 대비되는 따뜻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느낌을 표현하였다.


강렬한 원색과 함께 아기자기한 파스텔 색조 색감들은 관객을 색감의 아름다움에 빠져 영화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이러한 색감들의 표현이 장면 장면마다 무엇을 강조하고 관객에게 어떠한 점을 호감을 사고 싶었는지를 잘 나타내었기에 관객을 더욱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였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선 ‘색감의 강렬함을 표현한 영화’라는 별명이 이상하다고 느껴질 법한 진한 흑백으로 이루어진 장면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흔히 무채색, 흑백이라고 하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한 색깔이라기보다는 단조로운 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흑백이 가지고 있는 색의 힘은 아주 강렬하다.


감독 또한 여러 가지 다채로운 색채의 향연 속에서 마지막에 강렬한 내용의 전개와 동시에 색감들 또한 흑백의 강렬함으로 표현했던 게 아닐까.


흑백 장면 이후로 감독은 화려한 색감의 화면을 배치한다. 필자는 이 부분이 영화의 상영시간 동안 색의 대비를 통한 시각적인 효과를 관객들에게 가장 극대화해 보여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진한 흑백의 장면을 보다가 원색 색감의 장면으로 바뀔 때, 그때의 대비되는 색감의 강렬함은 영화를 보고 난 뒤 다시금 생각나게 한다.


독립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출연진들이 굉장히 호화로운데 오언 윌슨, 제이슨 슈워츠먼, 빌 머리가 이 작품에도 출연한 것을 비롯하여 주드 로, 틸다 스윈튼, 레이프 파인스, 에드워드 노턴, 에이드리언 브로디, 레아 세두, 윌렘 데포, 하비 카이텔, F. 머리 에이브러햄, 시얼샤 로넌, 제프 골드블룸, 마티외 아말리크 등이 이 작품에 출연했다. 주역은 18살의 미국 신인 배우인 토니 레볼로리가 맡았다.  웨스 앤더슨의 이전 작품들과 공통으로 신인을 주역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런 감각적인 작품에 나오는것을 배우들 또한 강하게 원했다는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명쾌한 내용구성, 감각적인 색채, 세련된 배경음악, 독특한 세계관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어우러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이전 독립영화를 접하지 않았다면 "신선하다"라는 느낌을 받을 영화임이 분명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신선함은 우리에게 '이상하다, 괴상하다.' 같은 느낌의 괴리감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 이전에 없던 독립영화만의 묘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점에서 100분간 즐길 수 있는 예술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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