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말있어요

[무비적무비적] 이전과는 전혀 다른 한국형 재난영화의 등장

스포일러 주의! 터널에 갖힌 대한민국에게 보내는 따끔한 메세지


우리가 흔히 '한국형 재난영화'라고 하면 머릿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몇가지 있다. 엄청난 규모의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그 과정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주인공. 그리고 그런 주인공에겐 반드시 동행하던 연인 혹은 가족이 있음으로 인해 긴박한 와중에도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가 함께하는게 한국형 재난영화였다.


필자가 터널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려되는 점이 두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이러한 신파가 난무하는 영화일 것 같아서였고, 또 하나는 아무리 터널 속에 갖힌게 하정우 일지언정 도대체 120분이라는 러닝타임을 어떤 이야기를 채울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보니 필자의 우려가 완전히 뒤집혀버리는 영화였다. 충분히 신파를 배치할 수 있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신파를 철저히 배제했다. 배우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절제된 연기를 유지하며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하게 전달한다. CG는 남용되지 않고 필요한 부분에서만 사용되었으며, 그렇다고 영화가 전반적으로 지루하지도 않다. (초반부터 전개가 상당히 빨라서 살짝 당황스러웠을 정도.)



이 영화는 단순히 터널 밖으로 탈출하기 위한 주인공 '정수'의 사투를 그려내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를 관람하신 분들이라면 이 영화가 얼마나 대놓고 정부와 언론을 비판하는지 아실 것이다. 감시를 피해 자행되는 부실공사, 실전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메뉴얼, 실제 터널의 구조와 다르게 표시되었던 설계도, 시종일관 비신사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언론, 카메라 앞 인사치레에만 급급한 윗분들, 시간이 지날 수록 그만하자고 하는 사람들 등의 요소들은 자연스럽게 2014년 발생했던 세월호 사태를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의 결말부에 다다르면 정수는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구조된다. 정수의 아내에게 이제 인정하고 그만하자고 하던 정부 관계자들과 '몇일만 더 버티면 신기록 갱신인데 조금만 늦게 나오지'라 말하던 기자들에게 정수는 들것에 실려오며 이렇게 얘기한다. "다 꺼져 이 개XX들아!"(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겨져야할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바로 '인간애'이다. "저 안에 있는건 도롱뇽이 아니라 사람입니다"라는 대경의 대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필자가 영화를 보면서 만족했던 점은 터널 바깥과 터널 안의 상황을 적절하게 교차시켜가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애를 놓치지 않아야한다는 감독의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터널 안에서 '미나'라는 또다른 생존자가 나타나면서 정수가 겪게되는 변화가 영화의 전반적인 정서를 잘 드러냈다. 간혹 미나를 단순히 민폐 케릭터로 보는 분들이 계시던데, 이는 영화의 진정한 의미를 놓치신 것이다. 정수가 처음 미나를 만났을 때 미나는 정수에게 꽤 여러가지 부탁을 한다. 정수가 칼같이 아껴 마시던 물을 부탁했고, 배터리가 얼마 없는 전화기를 빌려썼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개한테도 물을 달라고 부탁한다. 부탁을 받을 때마다 정수는 여러모로 당황함과 더불어 엄청난 심적갈등에 빠진 표정을 짓는다. (심지어 개에게 물을 줄 땐 입모양으로 온갖 험담을 내뱉는다.)


하지만 미나를 짓누르던 바위덩어리로 인해 결국 미나가 죽고난 뒤의 정수의 행동들은 그의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들을 보여준다. 목숨처럼 아끼던 물을 흘리는가 하면 미나가 살아있을 땐 꿈쩍도 안하던 바위가 미나가 죽었다는 사실에 당황한 정수가 있는 힘껏 힘을 주자 바위가 밀려나간다. 


비록 마지 못해 그녀를 도와주긴 했지만 그는 진정으로 그녀를 살리고자 하는 인간애가 없었다는 것이다. 충격을 받은 정수는 오열하고, 그녀의 애완견 탱이를 대하는 태도가 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이러한 정수의 변화를 통해 김성훈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전달된다. 다만 초반부에 정수가 조금만 더 이해타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으로 그려졌다면 그 의미가 훨씬 더 잘 전달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은 남는다.



터널을 관람하기 전에 해운대, 타워, 부산행같은 대형 재난영화를 기대하신다면 크게 실망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가 감히 자부하건데 지금까지 봤던 어떤 한국 재난영화보다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재난영화로서 시각적인 부분에서도 신경을 썼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련의 사고들을 날카롭게 비판함과 동시에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확실하게 전달한다. 터널은 단순 재난영화가 아니다. 터널 속에 갖혀버린 대한민국에게 과연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하는지를 따끔하게 경고하는 우리 시대의 메세지이다.



여담으로, 스틸컷을 뒤지던 중 설마 매드 클라운일까 하고 찾아봤더니 다름아닌 매드 클라운(조동림)의 동생 조현철이었다. 형제라지만은 어쩜 이렇게 닮았는지...(저와 제 동생 중 한명은 주워온 자식이 분명합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를 보고난 후의 감상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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