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인의 역사 칼럼] 부자(父子)간 불통의 결과, 임오화변

조선 시대 제 21대 왕 영조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아마 그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떠올릴 것이다. 나는 영조와 사도세자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실제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영조와 사도세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둘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고 이를 통해 얻은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는 깨달음을 공유하기 위해 이 주제로 칼럼을 쓰게 되었다.


사도세자는 영조가 42살일 때에 태어난 소중한 늦둥이였다. 너무나도 소중한 아들이어서 영조는 사도세자가 태어난 이듬해 바로 왕세자 책봉을 한다. 하지만 이 기쁨도 잠시 사도세자는 영조의 기대와는 다른 쪽으로 소질을 보인다. 그것은 바로 무술이었다. 하지만 영조는 문치주의를 갈망하는 군주였기 때문에 이런 사도세자를 탐탁지 않아 한다. 결정적으로 영조와 사도세자가 틀어지게 된 것은 왕의 업무를 대신 맡아보는 ‘대리청정’을 14년 동안 하면서 둘의 사이는 매우 나빠지게 된다. 사도세자가 왕의 업무를 영조에게 물어보면 영조는 사소한 것 하나도 해내지 못한다며 야단을 치고, 사도세자의 마음대로 하면 영조는 그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아 또 꾸짖는 것이었다. 이러한 악순환의 연속으로 사도세자의 마음은 썩어들어갔고, 결국 해서는 안 되는 많은 악행을 하게 된다.1

 

역사서에서 사도세자는 환관을 죽이고 그 머리를 자신의 부인에게 가져다주고, 영조의 침방 나인이었던 박 씨를 건드려 임신시킨 적도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또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는 의대증이라는 정신병에 걸려 옷을 입다가 천이 살갗에 닿기라도 하면 그 즉시 궁녀와 내관을 해치기도 하였다. 심지어 사도세자는 아버지인 영조를 죽이겠다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게된다. 이 발언은 영조를 격노하게 하였고, 결국 쌀을 담는 통인 뒤주에 사도세자를 넣게 된다. 사도세자는 뒤주에 들어간 지 8일 만에 숨진다. 이 사건이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임오화변’이다.2

 

나는 임오화변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을 때에는 아들을 뒤주에 넣어서 죽인 영조만이 몹시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아무리 그래도 아들인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 너머에는 광적인 행동을 하는 아들로부터 국가를 지켜야 할 무게를 지고 있는 영조의 모습이 있다. 사도세자가 영조를 죽이겠다고 한 것은 역적과 다름없는 발언이었다. 당시 역적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죄인이었다. 따라서 영조는 이렇게 왕궁과 나라를 어지럽히는 아들을 국가를 위해서 처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조가 이러한 선택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수월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고 확신한다. 늦은 나이에 낳은 소중한 아들이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영조의 마음은 그 누구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고 있었을 것이다.

 

국가를 위해 아들을 포기한 영조 반대편엔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해 위축된 사도세자의 모습이 있다. 사도세자는 그저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한 소년이었다. 자신의 사소한 잘못에도 붙같이 화를 내고 질책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그의 마음은 수없이 무너졌을 것이다. 실제로 사도세자는 영조에게 ‘아버지가 날 사랑하지 않으셔서 짐승이나 사람이나 닥치는 대로 죽이지 않으면 내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아버지의 사랑을 필요로 하였다. 누군가를 해하면서까지 마음의 위안을 얻을 만큼 그의 마음은 각박했었고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부자(父子)는 어긋나야만 했을 운명이었을까?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애정을 주었다면, 사도세자가 영조의 마음을 이해했더라면 그들의 관계는 이렇게까지 비참해지지 않지 않았을까? ‘임오화변’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 있지만, 나는 부자의 불통이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고, 자기 생각과 처지만이 가장 불안하다고 여기며 상대방에게 내가 편안해지는 방법을 강요하는 것은 양쪽 모두의 불행으로 이어지고 결국 둘의 관계는 어긋나게 되는 것이다. 이 역사적 사건을 통해 우리 모두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나의 편안함을 위하여 남에게 불행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대상이 친구든 가족이든 서로의 마음을 수용하려는 시도는 꼭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주

1.참고 : https://www.youtube.com/watch?v=qcGmThWrrvA&t=497s
2.인용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410318&cid=47322&categoryId=47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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