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빈의 독서 칼럼] 무엇이 옳은가,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가 무엇인지를 정의 내릴 수 있을까

"당신이 열차를 조종하는 기관사이며 열차의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두 갈림길에서 한쪽으로 가서 한 무리의 사람들을 쳐서 사망에 이르게 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한쪽 길에는 사람 다섯 명, 다른 한쪽 길에는 사람 한 명이 있습니다. 당신은 어느 쪽으로 가시겠습니까?"

 

이 딜레마는 '트롤리 딜레마'라고 불린다. 이 딜레마는 그 이전에도 존재했던 딜레마지만 마이클 샌델의 대표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더 유명해졌다. 이처럼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다양한 도덕적 딜레마들을 제시해 나가며 그와 관련된 여러 철학자의 사상을 제시한다. 여러 딜레마와 사상들 가운데 나는 공리주의와 자유 지상주의를 중점적으로 다루어보려고 한다.

 

 

먼저, 공리주의란 무엇일까? 공리주의를 대표하는 말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공리주의에는 두 가지의 종류가 존재하는데, 이는 '양적 공리주의'와 '질적 공리주의'이다. 양적 공리주의는 제러미 벤담이 주장한 공리주의로, 행복해지는 사람의 수가 많아지는 것이 옳다는 사상이다. (참고: 도서, '정의란 무엇인가' 63쪽) 예를 들어보자. 어떤 행복한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서는 모든 것이 평화롭고 모두가 행복해서 공리가 최대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 마을의 지하실에는 스스로 씻지도, 먹지도, 감정을 조절하지도 못하는 어린아이가 갇혀 있다. 이 아이를 지하실에서 구원하여 마을에서 씻기고 먹여준다면 이 불쌍한 아이를 향한 연민, 혹은 불쾌감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의 행복은 감소하고 고통을 증가하여 전체적인 양적 공리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때 양적 공리주의를 토대로 갇혀있는 어린아이를 그 상태로 내버려 두는 것이 옳을까? 양적 공리주의에 따르면 아이를 구원하면 안 되지만 보통의 사람이라면 너무 비윤리적이라고 생각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질적 공리주의이다. 질적 공리주의는 양적 공리주의를 발전 시켜 행복에도 질이 있다고 말한다. 투우를 볼 때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볼 때보다 더 높은 쾌락의 정도를 느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질적으로 바람직한 쾌락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반면, 이러한 공리주의와 상반되는 개념도 있다. 바로 자유 지상주의이다. 자유 지상주의는 개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가장 우선시한다. 국가조차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유 지상주의인 로버트 노직은 국가의 역할은 개인을 폭력과 같은 피해들로부터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것에만 있고 그 외의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국가가 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유 지상주의에 따르면, 국가는 부의 자본을 강제적으로 빈에게 배분하여 빈부격차를 줄이면 안 되고, 징병제를 실행해서도 안 된다. (참고: 도서, '정의란 무엇인가' 129쪽)

 

이런 공리주의와 자유 지상주의는 상반된 주장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둘 중 무엇이 옳은 주장일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서는 한 사람의 자유나 권리가 침해되어도 되는 걸까? 개인의 자유나 권리, 선택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존중받아야 하는 걸까? 두 주장 중 무엇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최대 다수의 행복을 위해 개인의 생명에 대한 자유, 종교에 대한 자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유가 지나치게 제한되는 것은 개개인의 존엄을 훼손하는 것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반면, 자유 지상주의의 경우, 개인의 자유만이 존중받는다면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힘들다. 심지어 어떠한 자유로운 계약을 할 때, 계약자 간의 권력이나 자본에 차이가 있어서 약자에 속하는 사람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시에 이것을 정말로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무시할 수 없다. 

 

때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때로는 개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해야 할 때가 있다. 어떤 한 사상을 모든 상황에 대입하여 그것이 무조건 옳다고 설명할 수는 없다. 이 책을 읽은 뒤 우리는 여러 딜레마를 접하면서 자신이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방안이 상황마다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정의란 가변성을 가진 상대적인 개념이다. 우리는 한 사상만을 고집하는 편파적인 태도보다는 상황마다 여러 요소의 가치를 따져가며 공동체의 선에 기여하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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