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원의 문화재 칼럼] 과학, 시대를 뛰어넘다

21세기를 넘어가면서 대한민국의 과학 기술의 발전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작다면 작은 나라에서 뛰어난 IT 산업과 혁신적인 기술들을 대표로 보여주었고, 이는 다른 학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의학이나 공학, 심지어는 우리 생활에도 다양한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언제부터 우린 과학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었을까? 이번 칼럼은 고려와 조선시대의 과학 기술을 알아보기 위해 작성한다.

 

한국사 시험에서 역사적 인물의 정보를 주고 어떠한 업적을 이루었는지 선택하는 문제의 유형은 꼭 하나쯤은 나온다. 삼국시대는 물론이고 한국의 역대 대통령까지 자주 출제된다. 그중에서 종종 조선의 4대 국왕인 세종의 업적이 나오는데, 이때부터 조선의 전문적인 전통 과학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전에 고려의 멸망 이후, 조선의 이성계는 개국 3년 뒤에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천문도를 제작했다. 천문도가 조선에서 부활했다는 것 자체가 많은 학자를 주목하게 했다.1 태조가 조선의 과학 기술의 길을 순조롭게 열어준 것과 다름없다. 그 기세를 이어받은 세종은 천문학은 물론이고 수학과 도량형, 지리학, 의학, 약학, 농학 등의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2 여러 학자와 끊임없는 회의를 통해 조선의 과학의 수준을 높였다. 그래서 조선시대 시기에 나온 유명한 과학적인 기구들이 앙부일구나 자격루, 측우기 등이 있다.

 

 

조선이 과학에 관해 연구를 꾸준하게 하여 백성이 생활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면, 고려시대의 과학 발전은 조금 다르다. 삼국시대의 과학 기술을 계승하고 송·원시대를 이어받아, 귀족문화 속에서 귀족들의 문화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가운데 발전했다.3 그래서 화려하고 눈에 띄는 기술은 없지만, 전통적인 부분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원래 있는 이론을 더욱 뚜렷하고 정확하게 했다. 주로 중국에서 가르침을 받거나 빌려오는 경우가 많아 의학 저서나 제조품에서 참고한 흔적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고려시대에 지식을 잘 쌓아 올린 덕분에 조선에서 전보다 발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한국의 과학 발전이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급성장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다른 때에도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기술을 들여다보면 각 시대만의 정교함과 섬세함이 담겨져 있다. 당연히 2000년대가 시작되면서 한국이 다양하고 많은 과학 기술을 보여준 것은 틀림없는 말이다. 이미 그 얘기를 뒷받침해 주는 근거들이 있고 우리가 살아오면서 생활적인 부분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과학은 꾸준하게 연구하고 개발해야만 노력의 결과를 볼 수 있는 학문이다. 어떤 실험이고 연구든 한 번에 가능한 것은 없다. 여러 전문가의 손을 거쳐 대대로 이어지듯 대물림이 되어야 지금처럼 모든 사람이 주목하게 만드는 기술을 내보일 수 있다. 

 

이렇듯 시대를 뛰어넘는 기술을 가진 우리나라의 전통 과학에 대해 알아보면서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알아보았다. 조사하면서 몰랐던 부분에 놀라웠고 교과서로 배우지 않았던 내용들을 통해서 얼마나 오래전부터 과학에 큰 노력을 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각주 

1. 인용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8B%9C%EB%8C%80%EC%9D%98_%EC%A0%84%ED%86%B5_%EA%B3%BC%ED%95%99_%EA%B8%B0%EC%88%A0 
2. 인용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8B%9C%EB%8C%80%EC%9D%98_%EC%A0%84%ED%86%B5_%EA%B3%BC%ED%95%99_%EA%B8%B0%EC%88%A0
3. 인용 : 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B%A0%A4%EC%9D%98_%EA%B3%BC%ED%95%99%EA%B8%B0%EC%88%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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