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긴가 민가 했지만 나는 그 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오늘(9일)로부터 1,000일 전,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는 침몰했다. 그 당시 세월호에서 울려 퍼진 말은 “가만히 있으라.”였다. 가만히 있으라 해서 구명조끼를 부여안고 가만히 있었던 친구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먹먹하다. 살아있었다면 대학생활도 즐기고 처음으로 선거권도 가지며 어른이 되었음을 만끽하였을 친구들이 아직도 학생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에 마음껏 스무 살을 즐기기 미안해지는 새해다.그 당시, 나한테는 세 가지 믿음이 있었다.첫째, 사고가 나면 당연히 국가가 알아서 해결해줄 거라는 믿음과 확신. 둘째, 세월호를 기억하며 학교 내에서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 셋째, 정부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언론은 끝까지 밝혀내 줄 것이라는 믿음.세월호 참사 1,000일이 되는 시점에서, 이 믿음들을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는 그 1,000일 동안 무엇을 노력하였을까? 무엇을 바꿔 나갔을까?솔직히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언론도, 국가도, 그리고 우리도 변화를 약속해놓고 지금껏 세월호를 외면하였다. 정부는 진실을 은폐하고 축소하기에 급급하였고 정부를 견제하고 감시
* 자료출처 : 서울신문- https://www.youtube.com/watch?v=9hSrPe_vh7M- 게시일: 2016. 12. 3.(기사내용 중)자유발언 무대에서 고등학생 김벼리(18)양은 “우리는 박 대통령이 명예롭게 내려오는 것을 원하지 않고, 역사상 가장 부끄럽게 모멸감을 느끼며 내려오기 바란다”며 “주권자들이 원하는 것은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이라고 말했다.
이번주 주말(26일)이면 ‘제5차 촛불집회’가 열린다. 회가 진행될수록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수는 늘어가지만 그럴수록 더욱 평화롭고, 더욱 질서정연 한 시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에 언론사들은 물론, 경찰까지 합세하여 광화문에서의 ‘평화’ 시위를 성숙한 시위문화라며 대대적으로 칭찬하였다. 앞으로도 이런 시위문화를 만들어 달라는 지침 아닌 지침을 만들어 유포하고 있다. 물론, 평화적 시위는 중요하다. 조직과 단체만이 아닌 어린이, 노인, 신체적 약자 할 것 없이 더 많은 시민들을 광장으로 모이게 하기 때문이다. 이번 시위에 학생들과 가족단위의 시위참가자들이 많았던 이유도 이러한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왕이면 다치지 않고, 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차벽 위에 올라간 시위자를 향에 “폭력시위 안 돼!”, “평화시위 해야 돼!”, “내려와!”등의 구호를 외치며 그들을 문제시 여기는 것과, 차벽에 부친 꽃 스티커를 시위자들이 자발적으로 다시 떼버리는 것 등을 보며, 평화시위가 아닌 것은 전부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것으로 몰고 가며 극도로 꺼리고 배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무조건 착하고 바른 시위
재작년, 한창 교육감 선거가 진행되던 당시 청소년들의 교육감 투표권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청소년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에 대해 꽤 부정적이었다.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학생이 무슨 정치야”였다.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교육을 받는 주체는 우리 청소년인데, 왜 우리는 위에서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정한 대로 따르는 수동적인 학교생활을 해야 하는 거지? 이제는 학생들도 능동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주체적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주장하고 자신들의 학교생활을 어떤 식으로 이끌어갈지 결정할 권리가 주어져야 할 때가 아닌가?작년10월 7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재정 교육감님은 “교육감 선거권을 고교 1학년 나이인 만 16세로 낮추자”라는 말씀을 하셨다. 물론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미성숙한 학생들의 정치참여에 따른 폐해를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라는 점, 학생의 자의적 판단과 인기를 얻기 위한 공약에 학생들은큰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점, 공약보다 외모·유머감각 등에 치중한 후보선택으로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 등이다.하지만 이러한 점들이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공약의 실현성 여
몇달 전 SNS에 생리대를 구입할 돈이 없어서 신발 깔창에 휴지를 대고 쓰고 있다는 사연이 올라오면서 큰 파장이 있었다.할머니 할아버지와 살거나, 한 부모 가정에서 성장하는 소녀들은 생리대 구입에 실질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나의 생리대를 아껴 쓴다거나, 논란이 되었던 깔창에 휴지를 대고 쓴다던 지의 비위생적이고 안타까운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흔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청소년기의 여학생들은 생리문제에 특히 민감하다. 생리가 축복받아야 할 현상 이라기보다는 숨겨야 하고, 불편하고, 부끄러운 것이라는 느낌을 생리를 처음 시작하는 때부터 강하게 받아오기 때문이다.이런 불편하고 민감한 상황에서 생리 대 조차 제대로 구입하기 힘든 그 친구들의 상황을 생각해보자니 마음이 먹먹하다. 현재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전주시에 도움을 요청한 청소년만 모두 830여명에 달한다고 하는데, 국내 저소득층 가정의 여학생은 약 10만명(국가정보포털)에 달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830명을 훨씬 넘는 학생들이 생리대 구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지자체는 이러한 문제들을 후원금 등을 통해 해결해 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후원금이 소진되면서 사업이 중단될 처지에 놓인
문득 이러한 막막함이 찾아올 때가 있다. 공부만이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는 생각에, 숨이 사진이 막힐 것 같은. 사실 우리가 배우는 것들 하나하나 중요하지 않은 학문은 없다. 마땅히 배워야할 것들이라는 걸 알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을 단 하나의 공식으로, 단 하나의 문장들로 머리에 구겨 넣으려니 그 신비하고 설레는 이야기들은 더 이상 신비하고 설레는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왜 배우는지 모르는 공부는 더 이상 공부가 아니다. 그저 괴로운 암기일 뿐이다. 시험을 위해 공부하고, 시험을 보고난 후 면 언제 배웠냐는 듯 기억에서 사라지는 이러한 공부, 마치 12년 살아온 삶을 평가하는 자리가 된듯 한 수능시험. 대학을 가기 위해 고등학교 때 열심히 성적과 스펙을 쌓으며, “지금 못 노는 거 대학가서 놀면 되” 라고 말하는 아이러니한 현실. 사람위에 제도가 있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수능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 살아가는 것만 같다. ‘9시 등교’시행 전 가장 많은 반대 이유 중 하나가 ‘수능 시간 때문’ 이었듯이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되돌아오는 말, “공부 못하는 것들이 꼭 이래”. 우리는 이때, 대부분 두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방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