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연우의 문화 칼럼 3] 작가와의 만남 : 박현경 작가편

<또마의 그네>의 작가인 박현경 작가님을 만났다.
 
<또마의 그네> 책은요..
 
 
저자: 박현경
 
문화일보와 광주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2009년 제17회 MBC 창작동화대상, 제8회 건국대학교 창작동화상, 제7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을 받았다. 주목받은 작품으로 동화책 《로봇 친구 앤디》, 그림책 《동생을 데리고 미술관에 갔어요》가 있으며, 역사동화 《너는 그리고 나는 달린다》, 창작동화 《최고의 베프, 최악의 베프 동생》 《비행 사탕》 《체리 도둑》 들을 펴냈다. 어린이들의 혼을 쑥 빼놓을 만큼 재미있는 동화, 어린이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동화를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알라딘 참조)
 
줄거리
 
<또마의 그네>
 
또마는 바쁜 가족들 틈에서 외롭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주운 지갑에서 돈을 훔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는 또마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양심에 걸리는 일을 저지른 날마다 또마를 만나게 되는 거다. 게다가 또마 이 녀석, 뭐지? 넌 누구야?
 
<국경 특급열차>
 
이혼한 엄마는 바빠서 영지한테 관심도 없다. 외할머니는 맨날 잔소리만 한다. 영지는 친구도 없고 재미난 일도 없다. 그런데 국경 특급열차를 타면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국경 저 너머에선 완전히 만족스런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영지는 무작정 국경 특급열차를 타고 국경 너머로 향한다. 과연 국경 너머에는 영지가 바라는 삶이 있을까?
 
 
<작가와의 만남>-박현경 작가를 만나다.
 
세번째 작가와의 만남은 동화작가이신 박현경 작가님과의 만남이었다. 사실, 책을 읽는동안 이 책을 쓰신 분은 도대체 어떤 분일까 하는 궁금증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또마의 그네>는 최근에 읽어본 작품 중에서 가장 섬세하고 미묘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 만큼 질문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고르고 골라 선발한 질문지에 박현경 선생님은 찬찬히 대답을 해주셨다. 인터뷰를 진행하면 할 수록 작가님의 책에 대한 애정과 이야기를 구성하는 과정의 섬세함, 치밀함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1. 또마의 그네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또마의 그네란 어떤 의미일까요? 또마는 왜 그네에 앉아 있는 걸까요?
 
거짓말을 하면 그것을 숨기기 위해서 또 다른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만하고 사기치고 도둑질하고 남을 위해하는 등 악의 행실은 성공하면 할수록 내성이 생기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그네타기를 생각해 봅시다. 그네는 다른 놀이기구와 달리 처음에 막막하죠. 생전 처음 타는 사람이라면 올라탄 다음에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르죠. 발을 굴러서 어찌어찌 그네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힘차게 밀어가다 보면 추진력도 생기고 바람도 실리고 그러면 구름을 발로 뻥 찰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아주 신이 납니다. 이 정도 되면 그네는 발을 구르지 않아도 저절로 갑니다. 그다음부터는 멈추려면 노력이 필요할 정도입니다. 악의 시작과 진행이 그네타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린이들에게 접근하기 쉬운 은유가 필요했기에 그네놀이를 빌려왔습니다. 
 
2. 책을 읽으면서 인물들이 잘못된 일을 했을 때 또마를 만나기도 하지만 또마를 만나고 나서 점점 나쁜 일을 많이 저지르게 되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또마가 나쁜 일을 저지르게 하는 능력도 있는 건가요? 또마를 어떤 인물로 설정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또마는 악마인데요. 유혹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또마를 아이로 설정한 이유는 악이란 다가올 때 천진한 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어떤 일본 소설을 읽었는데요. 주인공은 의대를 나오지 않았고 정식 의사도 아닌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섬에서 의사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섬에 온 도시의 큰 병원 원장 딸을 구해준 인연으로 호감을 얻어 그녀와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그녀는 물론 처가 식구들 모두 당연히 그가 정식 의사인 줄 알고 있지요. 그는 어찌어찌 하다가 고백할 기회를 놓쳤고 침묵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의 거짓말은 눈덩이 커지듯 거대한 사기극이 되어 버린 겁니다. 이렇듯 악의 시작은 천진한 아이의 얼굴과 같습니다. 유혹도 어린아이처럼 다가옵니다. 순진무구하게 천진하게 해맑은 표정으로요. 아이가 순진무구한 얼굴로 부탁을 하는데 뿌리치고 그냥 갈 수 있겠어요? 쉽지 않습니다. 
 
3. 다음은 국경특급열차에 대해 궁금한 것을 여쭤보려고 합니다. 국경특급 열차에서 국경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국경 너머 세계가 죽음의 세계를 뜻하는 것 같아요. 제가 제대로 이해한 걸까요? 죽음 세계가 맞다면 그렇게 설정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죽음의 세계 맞습니다. 옳게 이해했어요.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초등 고학년이라면 죽음의 세계를 사유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라고 해서 죽음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어른들은 어린이들 앞에서 죽음을 말할 때 모호하게 또는 에둘러서 말합니다. 특히 그 죽음이 자연사가 아니라 스스로 택한 죽음일 때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은 OECD 회원국의 평균 자살률보다 3배나 높습니다. 10년째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고 하니 참으로 비극적인 현실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문제를 쉽게 입에 올리지 못합니다. 저 역시 이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고민되고 부담스럽더라고요. 너무 노골적으로 주제를 드러내면 자칫 계몽적인 작품이 될까 우려되었고요. 너무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는 싫고 그렇다고 명랑한 이야기로 끌고 갈 수도 없고 말이죠. 그래서 국경특급열차 ‘너머의 어떤 세계’ 라는 상징성을 차용했고 은유의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걸 택했습니다. 어린 독자들은 각자 보이는 만큼 이해되는 만큼만 받아들이면 작가의 입장에서는 조금 덜 부담스럽기 때문이지요. 
 
실제로는 경험하기 힘든 세계이므로 ‘만약 내가 어떤 이유로 그 세계에 가게 된다면?’ 이라는 가정을 통해 현실자각과 삶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4. 국경 열차를 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왜 국경 열차를 탈까요? ‘민희 언니’와 ‘윤도’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요.
 
국경열차에 탑승한 사람들은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옮겨가는 중입니다. 억지로 끌려가는 것도, 그렇다고 소풍을 떠나듯 즐거운 것도 아닙니다. 그들에게 그 떠남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설정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정서도 무채색입니다. 이런 설정을 선택한 이유는 그들은 이 이야기에서 ‘배경’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배경 색을 너무 진하게 칠하면 주인공 영지가 보이지 않게 되지요. 
 
같은 이유로 그들의 사연도 일체 배제했습니다. 그 중에서 영지와 민희 언니의 경우는 조금 특별한 죽음을 맞이하려는 사람들이죠. 영지는 현실 불만, 반항, 불안심리 등의 정서적 이유와 호기심 어린 일탈로 국경열차를 탔습니다. 민희 언니의 국경열차 탑승도 영지와 비슷한 경우로 보입니다. 민희 언니는 영지 돈을 갖고 도망쳤으니 그 돈을 갖고 원하던 대로 성형을 했겠네요. 하지만 명품 가방을 갖고 있다고 사람이 명품이 되던가요? 성형 후 민희 언니가 과연 행복할지? 의문입니다. 
 
윤도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그런데 윤도는 왜 마음 심사관이 되었을까요. 언제까지 심사관을 해야 하는 걸까요. 만약 심사관으로서 의무 기간이 있다면 기간을 다 채운 후 윤도는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을까요? 민희 언니와 윤도의 뒷이야기는 순전히 책을 읽은 독자의 몫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5. 국경 너머에 가려던 영지는 엄마의 전화 한 통에 마음을 바꿔요. 굳게 마음을 먹은 것치고는 너무 쉽게 마음이 바뀌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해요. 작가님은 영지의 사연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어요?
 
언젠가 청소년 상담을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에게 들은 적이 있어요. 처음 가출하려고 마음먹은 청소년들은 하루 종일 밖에서 놀다가 밤이 되면 집근처를 배회하면서 자기 집에 불이 켜져 있는지 껴져 있는지를 살펴본다고 합니다. 불이 켜져 있으면 집으로 돌아오고 꺼져 있으면 가출을 정한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은 환히 밝혀놓은 불빛 속에서 엄마 마음을 읽는 거겠죠. 
 
전화 한통은 바로 불빛과도 같은 엄마 마음입니다. 엄마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아이들은 망설이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전화 한 통을 마음속으로 너무도 갈망하면서 오직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6. <또마의 그네>에는 마음이 불안한 아이들이 나와요. 어떻게 보면 평범한 고민을 하는데 반응이 거세다고 할까요? 고민에 비해 굉장히 많이 마음 아파하고 힘들어해요. 그리고 주위에 어른들이 보이지 않아요.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친밀하지 않고 같이 살아도 따로 겉도는 느낌이 드는데, 그렇게 설정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평범한 고민을 하는데 반응이 거세어 보이는 것, 고민에 비해 상심이 큰 것처럼 보이는 것. 이는 독립성과 자유의지의 획득을 꿈꾸는 사춘기 청소년의 정서를 그와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청소년 시절 그들이 나타내는 감정은 충동적이며 정서적으로도 상당히 거칠고 불안해 보입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경우 강도 높은 학업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도 있을 듯합니다. 
 
또, 작품 속에서 아이는 부모와 친밀하지 않고 같이 살아도 따로 겉도는 느낌이 든다고 했는데요. 독자에 따라서는 그렇게 읽힐 수도 있겠다 싶네요. 아마도 단편이 가진 특성 때문일 겁니다. 길지 않은 분량이다 보니 저는 독자가 또마 이야기에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부수적인 디테일을 과감히 생략하거나 축소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이를 테면 부모와의 관계, 가족간 갈등,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생략해 버린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풀어놓으면 적지 않은 양이 되는데 그러면 단편에서는 주제에 집중하는 힘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7. 평소 캐릭터나 소재를 어떻게 구상하고 구체화시키시는지요? 떠오르는 캐릭터와 소재를 어떻게 보관하시나요?
 
평소 스치는 생각들을 반드시 메모했다가 글로 남기는 편입니다. 책을 읽은 후 영화, 연극, 공연은 물론 여행이나 강연을 들은 후 또 사람을 만나거나 길을 가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도 놓치지 않고 적어두려고 하죠. 그 모든 것들이 생각의 씨앗이 되니까요. 
 
뜻이 맞는 작가친구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각자 흥미 있는 뉴스거리나 관심 있는 주제에 관해 이야기도 나눕니다. 내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남에게 들려주는 것은 노트에 적어놓는 것과 다른 차원의 경험입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정에서 우선 본인 스스로 ‘이것이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를 점검하게 됩니다. 질의응답을 통해 얼개 속 캐릭터를 분석하게 되고 작의를 확인하며 구성의 허점을 논하게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낸 이야깃거리를 하나의 폴더로 저장해 둡니다. 추가 자료를 수집해서 폴더 안에 저장하고 에피소드나 필요한 장면이 떠오르면 따로 적어서 그 폴더 안에 파일로 저장해 둡니다. 이야기가 순조롭게 완성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아주 중요한 디테일이 어느 날 문득 밥 먹다가 떠오를 때도 있고 우연히 대화 중에 딱 맞는 예화가 떠오를 때도 있습니다. 결국 소재와 캐릭터와 디테일들이 잘 만나야 좋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8. 작업과정이 보통 어떻게 진행되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떠오르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 때 이걸 단편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따로 얼개를 짜지 않고 머릿속에 저장하는 편입니다. ‘이 이야기는 장편감이다’ 라고 생각했을 때는 줄거리(시놉)와 작의를 따로 적어놓습니다. 저에게는 나쁜 버릇(혹은 징크스)이 있는데요. 얼개를 너무 충실하게 짜 놓으면 작업이 시들해지면서 결국 완성을 못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얼개를 대충 짭니다. 
 
작품을 다 쓴 다음 다듬을 때 동료 작가들과 서로의 작품을 평하는 시간을 통해서 객관화 작업을 거칩니다. 작가는 자기 이야기라는 숲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숲 전체를 볼 수 없으므로 합평은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후부터는 계속 추고입니다. 너덜너덜해지도록(파일이니까 너덜너덜해질 일은 없지만^^) 원고를 들여다보면서 가차 없이 걷어내고 장면을 다시 쓰고 구성을 완전히 뒤집어서 새로 시작할 때도 있습니다. 문장 역시 셀 수 없이 다듬고 고칩니다. 
 
9. 작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야기를 꿈꾸는 사람들’은 이미 다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장르(소설, 동화, 시나리오, 희곡, 웹툰 등등)는 취향이므로 중요하지 않다고 보고요. 작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아주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왜냐하면 작가란 참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증을 갖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을 위한 다리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소통을 위한 다리란 곧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는 있는데 이왕이면 좋은 작가가 되면 더 좋겠죠. 좋은 작가가 되려면 늘 주변을 관찰하고 세상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야기를 발굴해갈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발굴하고 기록해 가려면 연장이 필요한데요. 작가의 연장은 ‘문장’입니다. 좋은 문장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보다 자유롭죠. 자신이 구현하고자 하는 세계를 빠르고 정확하게 써내려 갈 수 있으니까요. 
 
좋은 문장을 가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피아노를 잘 치고 싶으면 계속 피아노를 치면 됩니다. 같은 맥락으로 좋은 문장을 쓰려면 많이 읽고 생각하고 계속 쓰면 됩니다.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