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빈의 가요칼럼 2] 오멜라스를 떠나는 소년들 - 방탄소년단

단짠단짠 ② - 그들은 왜 유토피아를 떠나는가?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감군은,…. 아마도 문학 시간에 귀가 저미도록 들어봤을 이 작품들의 공통점이 있다. ‘악장’, 조선의 건국 시기에 연향, 혹은 각종 연회에 사용하기 위해 새로 지은 노래 가사이다. 그런데 흥얼거리기만 하는 ‘노래’를 왜, 어째서, 문학 교과서에 싣느냐고? 그건 바로, 이 ‘노래’들이 문학 장르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청산별곡, 처용가, 동동 같은 고려 시대의 민요들도 고려 속요라는 장르로 불리며 문학 시간에 단골로 등장하고는 한다.


이렇듯 역사적으로도 문학과 가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장르적으로 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리고 여기,둘의 장르 통합을 극적으로 이루어 낸 소년들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인기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 그리고 그들의 신곡이다. 최근 빌보드 차트에서 상승세를 보이는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귀추에 언론의 관심이 곤두세워진 가운데, 2월 10일 정각에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인 ‘봄날(spring day)’의 티저 영상이 공개되었다. 아직 공식 뮤직비디오가 릴리즈 되기 전인 고작 1분여의 영상임에도, 반나절 만에 300만뷰가 돌파할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 티저 영상에 등장한 단어, Omelas(오멜라스)는 1973년 휴고상(Hugo Award) 단편 소설 부문 수상작인 어슐라 르 귄(Ursula Le Guin)의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The Ones Who Walk Away from Omelas)’을 연상시킨다. 이를 통해 그들이 이번 앨범을 통해 풀어내고자 하는 이야기를 유추해낼 수 있다. 고작 단어 하나를 가지고 영상의 맥락을 판단한다니, 조금 의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들이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오브제를 차용하였다는 근거는 이 장면뿐이 아니다.



드넓게 펼쳐진 푸른 풀밭의 고요함 속에서, 도시의 거리를 지나 먼 듯 가까운 듯 조금씩 다가오면서 때때로 흩어지며 다시 모였다가 마침내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즐거운 종소리로 터져 나오는, 대기의 아련하고 달콤한 내음을 담은 음악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왔다.


어슐러 K. 르 귄의 단편집 '바람의 열두 방향'에 수록된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아름답고 평화로운 지상낙원, 유토피아의 공간인 ‘오멜라스’시의 이야기이다. 이 완벽해 보이는 공간에는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있다. 다수의 행복이 존속되기 위해 존재하는 단 하나의 희생양, 지하실의 작은 아이이다.



1. 아름다움 이면의 추악함

‘오멜라스’의 아름다운 공공건물들 중 한 군데의 지하실에는 방이 있다. 아니면 어느 널따란 개인 저택의 지하실일 수도 있다. 그 방에는 굳게 잠긴 문이 하나 있을 뿐 창문도 없다. (…) 그 방에 어린아이 한 명이 앉아 있다. (…) 너무나도 야윈 아이의 장딴지에는 살이라곤 아예 없고, 배만 불룩 튀어나왔다. 아이는 벌거벗은 채이다. 자신의 배설물 위에 계속 앉아 있었기 때문에 엉덩이와 허벅지는 짓무르고 헐어서 상처투성이다.

아이는 더럽고 악취 가득한 지하실에서 고통받으며, 바깥세상에서 시간에 맞춰 던져주는 기름과 옥수숫가루 반 그릇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어째서 구원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오멜라스’ 사람들은 아이가 그곳에 있음을 모두 알고 있다. (…) 계약은 엄격하며 절대적인 것이다. 그 아이에게는 친절한 말 한마디조차도 건네면 안 된다.

바로, ‘계약’ 때문이다. 이 계약은 ‘오멜라스’의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동시에, 한 아이의 인권을 파괴한다. 아이를 지독한 지하의 공간에서 그들의 밝은 공간으로 데리고 나오는 순간, 지금껏 ‘오멜라스’가 누렸던 모든 행복과 아름다움과 즐거움은 사라져 버리므로, 사람들은 지하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죄악을 내버리는 것이다.

그 아이의 모습을 보고서 이러한 끔찍한 모순에 직면했을 때, 대개의 젊은이는 눈물을 흘리거나, 혹은 눈물도 나지 않을 만큼 화가 치밀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 그 아이에 대해 의롭지 못한 행위에 가슴 아파하면서 흘리던 눈물은 현실이 보여 주는 이토록 끔찍한 정의를 알아차리고 수긍하기 시작할 때면 메말라 간다.

그들이 지하실의 참혹한 현실과 마주하였을 때, 처음에는 분노하고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희생되는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들의 행복에 도취하여 그 모든 감정을 잊고, 묻고, 하루를 살아간다. 그 아이의 불행이 자신들의 행복 담보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은가? ‘너만 참는다면, 우리 모두 행복할 수 있어.’ 최대 다수의 행복을 위한, 소수에 대한 희생의 강요. 그리 멀지 않은,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2. 공리주의, 그리고 그 딜레마
 
고장 난 기차를 멈추기 위해 한 사람을 던져 희생하는가, 아니면 그냥 두어서 다수의 죽음을 초래하는가. 이 유명한 딜레마는 어디서라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다수와 소수의 이익, 바로 ‘공리주의’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두는데, 그것을 쟁점으로 많은 논쟁이 벌어지고는 한다. 과연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라는. 어쩌면 ‘모럴 하지 못함’에 가해지는 비난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제로, 다수에 속하는 사람 중에서도 끊임없이 그 딜레마 속에서 고뇌하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오멜라스’에서도, 어김없이 그런 이들은 존재한다.

이따금 지하실의 아이를 보고 난 청소년 중에는 눈물을 흘리거나 분노에 찬 채로 그냥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들이 있다. (…) 그렇게 그들은 혼자서 서쪽으로, 아니면 산맥을 향해 북쪽으로 간다. 그들은 계속 걸어간다.

모두가 방관하는 사이에서 그들은 유토피아를 떠난다. 마음 한쪽에 틀어박혀 결코 다시는 빼내지 못할 그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그들의 발을 움직이게 한다. 그들은 아이의 희생 위에 보장된 자신의 안락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 그저 고통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



3.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그들이 가는 곳은 우리 대부분이 이 행복한 도시에 대해 상상하는 것보다 더 상상하기 어려운 곳이다. 나는 그곳을 결코 제대로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곳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가고자 하는 곳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마지막 단락에서 유추할 수 있듯, 그들은 자신이 가려는 곳을 머릿속에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어둠’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유토피아의 공간인 ‘오멜라스’보다 행복한 공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들은 목적지를 정확하게 아는 듯하다. 그럼에 그들은 자신의 안락과 행복을 두고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과연 그곳이 진정한 어둠일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만약 오멜라스를 떠나서 다다르는 곳이 더 깊은 어둠이라면, 떠난 사람 중 누군가는 죄책감을 택하고 낙원 같은 오멜라스로 다시 돌아올 법도 하다.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 말인즉슨, 바깥의 어둠이란 오멜라스에 소속된 사람들의 눈으로 판단된 것일 뿐이고, 오멜라스는 결국 모순적인 유토피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오멜라스’를 떠나 어둠 속으로 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4. You never walk alone.
 
그렇다면, 떠난 이들은 과연 그들이 반(反)하던 오멜라스의 시민들과 윤리적으로 대립하는 구도일까? 사실 그렇다고 볼 수 없다. 결국, 떠난 이들은 아이의 고통을 방관하였고, 마침내 그것을 외면한 채 떠나버린다. 이는 ‘모순된 행복을 두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 떠난다.’고 명명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방관자이다. 아이에게 위로의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함께 떠나지 않고 각자, 혼자 알아서 제 갈 길을 향해 떠난다.

그들은 길로 나가서는 거리를 따라 홀로 걸어 내려간다. (…) 소년이건 소녀건, 나이든 남자건 여자건 간에 모두 혼자서 간다.

여기서 방탄소년단 서사의 구조적인 특징이 나온다. 문학의 오브제를 차용하되, 거기서 또 한 번 방탄소년단만의 주제의식을 꺼내기 위해, 원작을 비틀고 자신들의 색깔을 덧입힌다. ‘You never walk alone.’ 방탄소년단이 노래하는 오멜라스의 결말은 결코 혼자 떠나는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행복하고 안락한 사회의 이면에 있는 추악함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걷고, 연대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노래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떠나는 그들의 옆에는 한 소년이 있다. WINGS 앨범에서 방탄소년단의 멤버 ‘진’으로 표현해낸, 지하실에 갇혀 있던 아이이다.



5. 지하실에 갇힌 청춘
 
방탄소년단은 이전에 발매했던 앨범들(화양연화, WINGS 시리즈)에서 줄곧 청춘의 방황과 청춘들이 유혹을 마주하는 자세를 다뤄왔다. 그리고 이번 앨범은 공교롭게도, 그 시리즈들의 마지막 스토리인 WINGS 외전이다. 고로, ‘청춘’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언급했던, 지하실의 아이에게 다시 한번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행복으로 일갈 통칭하는, 부와 명예를 좇는 오멜라스 사람들의 발밑에 있는 그 아이를 말이다.

부와 명예에 치중한 그들은 아이를 지하실이라는 발밑의 공간에 가두어 둔 채, 그를 잊고 행복한 나날들을 보낸다. 하지만 그 ‘행복’이란 진정한 행복은 아님을 앞서 말한 것처럼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방탄소년단은, 이 아이를 청춘, 혹은 가둬놓고 꺼내지 않는 청춘의 꿈으로 비틀어 해석해낸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꿈이란, 늘 깊은 곳에 묻어두어야만 하는 존재이다. 만약 그것을 꺼내어 보인다면, 현실이 한없이 고단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꿈은 늘 불편한 존재로 치부된다. 결국,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둠 속 고단한 삶을 향해 간다는 것을 인지하지만 가두어진 꿈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청춘들이며, 그 ‘떠나는 행위’ 자체도 결국은 청춘이다.

자, 그래서 방탄소년단이 남기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You never walk alone.’ 비록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어둡고 고단하고 어렵기만 할지라도, 꿈을 직시하고 그 길을 떠나는 자들이 ‘청춘’이며, 우리도 당신들과 함께 걷고 있으니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안락해 보이는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진정으로 꿈을 꾸는 삶을 살아보자. 청춘답게.

그리고 이는 티저에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타이틀곡 ‘봄날’의 가사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6. 봄날
 
추운 겨울의 끝을 지나
다시 봄날이 올 때까지
꽃 피울 때까지
그 곳에 좀 더 머물러줘
 
꽃이 개화하는,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 향하는 길은 추운 겨울이지만, 그 끝에는 따뜻한 봄이 있다. 아직은 그 시기가 아니라서 힘들고 고단하겠지만, 조금만 더 기다린다면 봄날이 온다. 방탄소년단은 청춘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역할을 자처하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청춘에게 응원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그들이 어떻게 풀어나갈지 매우 흥미롭다. 내가 몇 시간 동안 적어 내린 이 글이 그들의 의도하는 바와 어긋나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정확하게 맞추어 앨범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You never walk alone>은 오는 2월 13일 정각에 발매된다. 기회가 된다면, 앨범이 나온 후에는 풀버전을 들고 열심히 분석해보려 한다. 외전을 통해 그들이 꺼내 드는 주제가 무엇이던, 화양연화로부터 시작된 대서사시의 마지막 스토리는 우리의 상상 그 이상의 것임이 틀림없다.



칼럼 소개: 감정의 올을 바느질하는, 덜 여문 글을 씁니다. 음악과 문학, 가요와 시. 장르의 경계를 적당히 허물어가며, 재미있고 다양한 각도의 견해를 담은 '단짠단짠'한 칼럼을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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