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우의 영화 다시보기] 말할 수 없었던 것을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 (2017): 참아야만 했던 고통을 이제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음을 보여준 영화

 

 

간혹 영화관에서 포스터를 구경하고 있으면 제목을 보고 내용이 잘 예상되지 않는 영화들이 많다. 어떤 영화들은 포스터에 넣어진 사진과 제목을 보면 간단히 내용이 유추되지만, 몇몇 감독은 의도적으로 영화 제목을 이용해서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영리하게 숨긴다. 그리고 이렇게 영리한 방식을 통해서 우리 역사 속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오늘 이 글을 통해 소개할 ‘아이 캔 스피크’이다.

 

사실 영화 제목을 통해서 작품 전체의 내용과 결말을 강조, 암시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자주 쓰이는 방법이다. 대표적으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같이 다소 엽기스러운 제목을 간판으로 하여 결말과 내용에 큰 반전을 주어 관객들에게 인상을 남기는 영화가 있다. 또한 ‘천국보다 아름다운’과 같이 제목 자체를 추상적으로 설정하는 경우도 있으며, ‘인셉션’ 같은 영화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설정을 제목으로 써서 관객들은 내용은커녕 결말마저 쉽게 예상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 캔 스피크’는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과는 다르게 색다른 방식을 사용했다. 포스터만 보면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갈등을 ‘영어’라는 소재를 통해서 풀어낸 코미디 영화로 보인다. 그러나 막상 영화관 안에 들어가서 작품을 관람하기 시작하면 영화에서 담아내고 있는 것이 단순한 세대 차이만이 아닌 그 이상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원칙을 중요시하는 공무원 박민재와 민재에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요구하는 나옥분 할머니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할머니를 귀찮게 여겼던 민재는 온갖 변명을 하면서 그녀와의 만남을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바쁜 자신을 대신하여 매일 자신의 친동생에게 밥을 차려주었던 것이 옥분 할머니임을 알게 된 민재는 그녀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게 된다. 본격적으로 영어에 대해서 배우게 된 할머니와 더불어서 그녀를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민재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흐뭇함을 느끼게 해줄 뿐 아니라 중간중간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 시점까지의 ‘아이 캔 스피크’는 기성세대가 신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여겨진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에서 옥분 할머니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옥분 할머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의 숨겨진 주제로 전환된다. 옥분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여러 복잡한 과정 끝에 옥분 할머니는 자신이 어떤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왔는지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그동안 배운 영어를 통해서 말한다. 이것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아이 캔 스피크’ 즉 진정하게 말하고 싶은 말이다.

 

결국 영화에서는 ‘아이 캔 스피크’라는 제목 하나로 두 가지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후반부의 중점이 일본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이 캔 스피크’라는 제목이 영화를 보기 전의 것과 완전히 다른 제목으로 보이게 된다. 특히 이러한 점을 관객들의 무의식중에 각인시키기 위해서 영화에서 '아이 캔 스피크'라는 대사는 딱 한 번, 이 영화의 핵심이 되는 미국에서의 청문회 장면에서만 나오게 된다. 상당히 센스 있게 주제를 관객들 머릿속에 각인시킨 것이다.

 

무엇보다도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의 두 주제를 자연스럽게 연결했다는 점 역시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보통 상반된 두 주제를 한 영화에서 동시에 다룰 경우에는 영화 내용이 전체적으로 꼬일 수 있는데, ‘아이 캔 스피크’는 이를 매우 자연스럽게 대조, 연결한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 ‘귀향’은 역시 ‘아이 캔 스피크’와 똑같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훨씬 직설적이고, 사실적인 모습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슬픔을 준다는 점에서 ‘아이 캔 스피크’의 다소 해학적인 표현들과 일본인 위안부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살아남은 피해자 할머니들이 노력하는 모습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확실히 대조된다.

 

다만 영화에서 공무원인 민재가 상부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반대한다는 점은 확실히 아쉬운 장면이다. 어떻게 보면 민재가 원칙주의에서 벗어나서 주민들을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 되었다는 상징이 되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바라보면 매우 어색한 장면일 수밖에 없다. 또한 영화 중간중간 다뤄지는 작은 에피소드들이 해결되지 않고 어영부영 넘어가는 것도 볼 수 있어서 다소 아쉬웠다.

 

그런데도 우리의 아픈 역사를 영리하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 있어서 ‘아이 캔 스피크’는 이미 ‘말하고자 하는바’를 완벽하게 관객들에게 답할 수 있었다. 제목 하나만으로 관객들에게 감동적인 거짓말을 했으며, 이런 거짓말에 속은 관객들은 영화 속에 감춰져 있던 옥분 할머니가 진정으로 하고 싶어 했던 말에 눈물로 응원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아이 캔 스피크’는 참으로 영리하고 묵직하다는 표현으로만 정의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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