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우의 영화 다시보기] 여러분의 인생에서 혜성은 어느 순간에 떨어졌나요?

영화 '너의 이름은' (2016): 당신은 아직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고 있나요?

 

 

'아, 우리들의 목소리가 이대로 세상의 구석까지 사라지지 않고서 닿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 ‘너의 이름은’의 오프닝 곡인 ‘꿈의 등불’ 가사 中

 

사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영화를 봐온 사람으로서 고백할 것이 있다면, ‘멜로’라는 장르를 많이 접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볼 기회가 많이 없었지만, 글쓴이 개인적으로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아직 느끼기에는 어리다고 생각한 감이 머지않아 있었고 그렇기에 영화를 보면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나와서 괜히 괴리감이 생기지는 않을까?’라는 나름의 편견 아닌 편견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오늘 이 글을 통해서 이런 고정관념을 철저히 깨부수고, 글쓴이의 인생 영화 중 하나가 되어버린 명작 하나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누구보다도 사랑하지만, 잊을 수밖에 없고 누구보다도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다. 영화 ‘너의 이름은’은 누군가에게 있을 법하지만,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그렇기에 관객에게 영화는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다가올 수 없음에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 든 생각은 ‘독창적’이라는 것이었다.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만큼 ‘너의 이름은’이라는 영화는 그 자체로도 하나의 장르를 구축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글쓴이에게 있어 충격적이고도, 신선하게 다가온 것 같다. 특유의 독창성은 물론이고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놀랄 만큼 강렬하고 여운이 남는 구성이다. 그런데도 기초적인 ‘틀’에서 어긋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애니메이션 특유의 색채와 개성을 겸비한 영화가 된 것이다.

 

영화는 도시에 사는 남주인공 ‘타키’와 시골에 사는 여주인공 ‘미츠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두 주인공은 어느 날부터 서로의 몸이 바뀌면서 각자의 생활을 대신해주게 되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건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둘의 몸이 바뀌는 일은 갑자기 멈추게 되고, 타키는 직접 자신의 몸으로 미츠하를 찾아서 떠나게 된다. 그러나 타키가 마주한 것은 미츠하가 아닌 그녀가 살던 마을의 폐허뿐이었다. 타키는 그때서야 자신과 미츠하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이미 타키가 사는 시점에서 미츠하는 혜성이 지면에 충돌하는 자연재해로 인해서 사망한 것이다. 이런 미츠하와 타키는 서로를 다시 보고, 서로를 구해내기 위해서 운명과 맞서 싸우게 된다.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을 봤을 때, 가끔 많은 이들이 의문에 빠지는 것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어떻게 타키와 미츠하는 서로를 만나지 못했음에도 서로를 사랑할 수 있냐는 것인가?’이다. 하지만 글쓴이는 질문의 내용 그대로를 좀 다르게 해석을 해보고 싶었다. 서로 만나지 못해서 서로를 더욱 그리워하고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두 주인공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인해서 서로를 만날 수 없다. 심지어 거기에 ‘죽음’이라는 강력하고도 일방적인 순리는 두 주인공에게 커다란 장애물이자, 고난이 된다. 그리고 이런 고난을 극복해내는 과정에 의해서 두 주인공은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너무나도 만나고 싶은 절박함에 빠지고 이는 사랑으로 승화된다.

 

한편 영화는 초반에는 단순한 학원물, 멜로물의 양상을 띤다. 그러나 중후반부로 영화가 진행될수록 영화는 주제를 넓혀서 ‘혜성 충돌’이라는 자연재해를 다룸으로써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아픈 기억일 수 있는 것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마디로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이 재해로 인해서 희생된 이들을 그리워하는 모습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관객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나도 알았더라면, 그 혹은 그녀를 구할 수 있었을 탠데.’라는 등의 생각을 심게 된다. 이런 모습은 실제로 영화에서 미츠하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미야미즈 이장에게서 보여지는데 영화 초반에는 딸에게 무심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후반부 딸과 모두를 구하기 위해서 변화하는, 개성적인 캐릭터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미야미즈 이장은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세베루스 스네이프와도 상당 부분 닮아있다는 점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 특유의 ‘그리움’은 영화의 작화, 음악과 같은 요인을 통해서 더욱 극대화된다. 영화의 작화는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것 그 이상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적이면서도 파괴적인 느낌을 준다. 마치 누군가에게는 ‘인셉션’을 보았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게 다가온다. RADWIMPS 밴드가 창작한 OST들은 그 특유의 감성을 배가시키며 특히 혜성의 전체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장면에서는 이 작화와 더불어서 음악을 통한 관객의 감정적 공명이 최대치를 이루게 된다.

 

살면서 많은 이들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그 누군가를 잊지 않는다. 영화 ‘너의 이름은’은 그런 이들과 많은 관객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글쓴이는 생각한다. 여러분의 인생의 한 시점에서 떨어졌던, 혹은 떨어질지도 모르는 혜성을 위해서 이 영화가 짧게나마 위로가 되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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