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현의 정치 칼럼] 당쟁인가 붕당인가

 

 

코로나 19상황에서도 여야간의 대립으로 국회 본회의가 개최되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의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은 매우 슬픈 일이다. 이에 역사적인 관점에서 의회정치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의회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정당 정치에서는 복수 정당제를 그 기본으로 한다. 그러한 정당들이 자신의 정책을 국정의 방향으로 삼기 위하여 정권 획득을 목적으로 여러 정치 활동을 한다. 이러한 근대적 의회 민주주의와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조선 시대에도 붕당정치라는 이름으로 각각의 당파가 의견을 개진하며 주도권 쟁탈전을 벌였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붕당정치의 시작은 1575년(선조 8년) 이조전랑직을 둘러싼 김효원과 심의겸의 반목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는 사림이 사화를 극복하고 정권을 쟁취하였으나 한정된 관직의 수 때문에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이조전랑직을 두고 관료들 간의 대립이 시작된 것이다. (참고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80385&cid=40942&categoryId=31645)

 

김효원의 동인과 심의겸의 서인으로 양분된 붕당은 동인이 득세하는가 싶더니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분당되고 북인은 대북과 소북, 인조반정 이후 집권한 서인 역시 노론과 소론 등으로 끝없는 분화를 한다. 한정된 관직을 1당이 차지하기 위해 생겨났다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지만, 붕당은 한명회나 윤원형 같은 권신의 등장을 방지하였고 정치적 갈등을 칼이 아닌 토론을 통해 갈등을 해결한다는 면에서 상당히 발전적인 정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힘을 모아야 할 때에도 붕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조건 반대 의견으로 대립하거나  전혀 실익이 없는 문제로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조선으로의 침략을 계획한다는 첩보가 들어오자 조정에서는 서인 황윤길과 동인 김성일을 통신사로 파견하고 돌아온 그들에게 일본의 분위기를 묻는다. 정사 황윤길은 일본이 침략할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부사 김성일은 그와 상반된 의견을 내놓는다. 물론 민심의 안정을 위해서라는 김성일의 의도 역시 이해는 되지만 이는 느슨한 전쟁 대비로 이어지고 임진왜란이라는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 했다. 또한, 병자호란이라는 큰 전란을 겪고 나서도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복상 문제를 놓고 예송논쟁을 벌인 것을 보면 이는 발전적이고 생산적인 붕당정치가 아닌 정권을 잡기 위한 당쟁이라 말할 수 밖에 없다. 

(참고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19017&cid=62047&categoryId=62047)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보면 독재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묵살하기 위하여 붕당정치의 순기능마저 무시하며 다양한 의견은 국론의 분열을 가지고 오고 결국은 조선과 같은 망국의 길로 접어든다는 논리를 펼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발전을 위하여 토론을 통한 다양한 의견 수렴은 국가와 조직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발전적인 안건을 놓고 합리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붕당 정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익이 없는 그저 다툼을 위한 논쟁은 그야말로 당파싸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해한 후 발전을 위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며 자신의 의견에 잘못이 있으면 언제라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합리적으로 도출된 결과에 대해서는 승복하고 함께 힘을 합칠 때 국가와 조직에 진정한 발전을 가지고 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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