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우 시사 칼럼] 판옵티콘에 대하여

초기의 판옵티콘과 현대의 팝옵티콘에 대해 알아보자.

제러미 벤담과 판옵티콘

 

제러미 벤담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은, 영국의 정치 철학자였다.
그는 공리주의의 원칙에 따라 판옵티콘을 세웠다.

 

벤담은 감옥 건축 양식으로 소수의 감시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수용자 모두를 감시할 수 있는 형태의 감옥을 제안했다. ‘진행되는 모든 것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하며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를 뜻하는 'opticon'을 합성한 것으로 판옵티콘이라는 말을 창안했다.

 

판옵티콘은 중앙에 원형의 감시탑이 있어 그곳에는 감시자가 머물고 그 주위에 원형으로 수용자들이 머물게 되는 형태이다. 중앙의 감시탑은 항상 어둡고 수용자들의 방은 항상 밝은 상태를 유지하는데, 이 때문에 수용자들은 감시자의 부재 또는 감시자가 어느 곳을 지켜보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수용자는 항상 감시받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게 되고 이로 인해 감시의 효과를 지속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다.

 

벤담은 판옵티콘이 감옥과 같은 시설에만 국한하지 않고, 여러 공공시설에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보았다.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그는 최소한의 비용과 최소한의 감시로 최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판옵티콘을 이상적 사회의 축소판으로 보았다.


* 미셸 푸코의 판옵티콘

제러미 벤담의 판옵티콘은 미완의 설계에 그쳤지만 후에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저서 ‘감시와 처벌’을 통해 판옵티콘은 현대 감시체제의 원형으로 소개된다.
푸코에게 있어서 판옵티콘은 새로운 근대적 감시의 원리를 체화한 건축물로 한명의 권력자가 다수를 감시하는 ‘규율사회’로의 변화를 상징하고, 동시에 이런 변화를 추동한 것이었다.

 

 

시놉티콘

 

감시자의 시선이 항상 전능할 수는 없다.
감시자는 대상을 감시하지만 동시에 그 대상이 또한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불안해한다.

이러한 감시에 대한 역 감시를 ‘시놉티콘’이라 한다.

시놉티콘의 다른 말은 ‘역파놉티콘’으로, 소수에게 통제를 받는 다수들이 파놉티콘을 이용하여 다수가 소수의 권력자들과 같은 소수를 통제 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시놉티콘은 파놉티콘이 자리를 잡았던 19세기, 다수가 소수의 권력자를 감시하는 언론의 발달을 시놉티콘이라 하면서부터 발달하기 시작했다.  

                                 

* 정보사회와 시놉티콘

정보사회의 발전에 의해 파놉티콘 체제의 일방적 감시는 시놉티콘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의 교류, 부정적인 현실의 고발, 중요사안에 관한 의견 결합 등 네티즌들의 조사로 권력자들을 감시하는 역발상 체제가 바로 이것에 해당한다.
 
정보사회로 접어들면서 파놉티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일방적 감시가 아닌 상호감시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감시를 받던 피 감시자들이 역으로 감시자들을 감시하게 됐으며 소수만이 권력과 언론을 독점하고 다수의 일반 시민을 통제하는 체제가 아니라 시민들도 권력자를 감시하고 통제한다.

 

 

현대사회의 감시체제

 


앞서 말했듯이, 현대사회는 정보화 사회로 발전했고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판옵티콘 사회는 시놉시콘 사회로 변화되었다.

 

* 정치 분야에서의 시놉티콘
근대에 접어 들면서 왕의 정치에 감시 통제를 하기 위해 의회와 언론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그러한 용도로 활동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며 변질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이유로 또 하나의 시놉티콘 시스템을 이용한 방침으로 시민운동이 생겨났다고 한다.

 

* 경제 분야에서의 시놉티콘
시민 운동단체는 국제적 단체 활동으로 정부의 힘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시놉티콘에 크게 기여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인터넷의 익명성이다.
이를 통해 권력자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내용을 서로 익명 체제하에 교류하고 투합할 수 있게 되어 피감시자들이 역으로 감시자를 감시할 수 있게 되었다.

다수의 시선이 항상 존재하는 시놉티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존중과 배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명한 영화인 <트루먼쇼>에 나오는 것이 판옵티콘의 예라고 볼 수 있을것이다.

정보화 시대로 나아가면서 cctv에 찍힌 우리의 모습이나 sns에 올린 나의 위치까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는 정보화 사회의 판옵티콘에 갇혀있다고 볼 수 있다.

판옵티콘을 앎으로써, 무심코 나와 타인의 정보가 유출되는 지금, 이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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