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권의 독서칼럼]개츠비가 위대한 이유

 

미국의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태어난 한 청년이 있다. 그 청년은 부유한 가문의 딸을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헤어지는 실연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 청년의 애틋한 사연은 미국 소설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이야기이자, 그의 소설인 ‘위대한 개츠비’ 주인공인 개츠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데이지에 대한 개츠비의 지고한 사랑에는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을까.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장교였던 개츠비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주둔지에서 사귄 애인 데이지의 부모로부터 거절당하고, 프랑스 전선으로 배속된다. 그가 떠난 사이 데이지는 속물 부자인 탐 뷰케넌과 결혼하게 된다. 이로 인해 충격과 상처 속에 괴로워하던 개츠비는 전쟁이 끝나고 귀국한 후, 자기도 어떻게 해서든 돈을 벌겠다는 일념에 불타게 된다. 그래서 개츠비는 술을 만들거나 마시는 것이 불법이었던 ‘금주령’ 시대에 술을 만드는 은밀한 방법으로 큰 돈을 벌어 부자의 반열로 올라가게 된다. 개츠비는 뉴욕 롱 아일랜드의 데이지 집 근처에 대저택을 구입하였고 순진하게도 잃었던 옛 애인을 되찾아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웃인 닉의 도움으로 5년 만에 다시 만난 데이지는 이미 예전의 순수했던 시절의 데이지가 더 이상 아니었다. 그녀는 변해있었다. 허영에 들떠있는 속물인 데이지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단지 남편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잃기 싫어 떠나지 못하고 있다. 개츠비의 순수함을 이용하여 자신의 허전한 감정적 욕구만 채울 뿐이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저자는 한 때는 이상적이고 순수했던 아메리칸 드림이 현실에서는 타락하고 오염되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데이지의 남편 탐과 개츠비 사이에 언쟁이 오간다. 흥분한 데이지는 개츠비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탐의 정부 머틀을 치어 죽이게 된다. 순진한 개츠비는 데이지를 감싸주기 위해 자신이 그 차를 운전한 것처럼 행세하지만, 악랄한 탐과 데이지 부부는 머틀의 남편에게 개츠비가 머틀의 애인이며 그녀를 치어 죽인 사람이라고 고발한다. 실의에 빠져있던 개츠비는 자신의 저택 풀장에 있다가 복수하러 찾아온 머틀 남편의 총탄에 살해당하게 된다. 개츠비의 장례식장에는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개츠비는 이미 변해버린 데이지를 보고서도 왜 계속 지고지순한 사랑을 포기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는 자기가 데이지의 사랑을 얻지 못한 이유가 가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부자가 된 후 다시 데이지 앞에 나타났다. 사실 데이지는 돈보다 사랑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순진한 여자였다. 그러나 부모에 의해 물질의 유혹에 빠져 타락하게 되었고 자본주의에 맛을 알게 돼 변해버렸다. 나는 이 부분에서 아무리 순수한 사람도 외부의 환경으로 인해 완전히 180도 변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이 부분에서 내가 만나고 나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의 영향이 내 인생에 얼마나 큰 작용을 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고, 끼리끼리 논다는 의미의 유유상종이라는 옛 말이 떠올랐다. 내가 긍정적이고 좋은 성장을 하고 싶다면 좋은 생각과 품행을 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면 될 것이다. 또한 나 역시 그렇게 행동한다면 자연스럽게 내 주변에는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되지 않을까.

 

 

왜 소설의 제목을 위대한 개츠비라고 했을까? 개츠비는 비인간적인 기계문명과 물질주의 속에서 순수한 꿈을 꾸며 사는 '로맨틱 드림보이'였다. 소설의 화자 닉은 톰이나 데이지 같은 사람들을 남에 대한 배려가 없는 “무책임하고 부주의한 운전사”라고 표현한다. 그들은 남을 치어 죽이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속물적이고 유치하기는 하지만 개츠비는 기꺼이 타자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다. 개츠비는 비인간적이었던 상업시대에서도 낭만적인 꿈과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이었으며, 타락과 부패의 시대에도 홀로 순수를 지키는 고독한 사나이로 대변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 아닐까? 새로운 가치관이 형성되면 기존의 것들은 무시되거나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소중한 가치가 남아있다. 산업혁명 시기 눈 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 속에서 자본가들에 의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착취와 혹사를 당해야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지기 마련이다. 항상 좋아 보이는 것 이면에는 숨겨진 고통이 있다. 우리는 그 숨겨진 고통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고통을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간 결국 곪고 곪아 우리 몸 전체를 잠식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이런 아픔은 사람과 관련된 것이다. 과학 기술과 문명이 발달할수록 우리는 점점 사람에 집중해야 한다.

 

 

개츠비는 타락한 물질주의자들 사이에서 오직 홀로 순수했으며, 낭만적인 꿈을 잃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싶을 때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너처럼 복을 받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라.” 이 말은 가장 미국적인 소설, 혹은 20세기 최고의 소설 중 하나라고 평을 받는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포문을 여는 첫 문장이다. 우리는 늘 남과 비교며 자신의 불행한 신세를 한탄한다. 그러나 정작 나보다 더 불행한 이들의 아픔을 바라보지는 못한다. 비교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불행에 늪으로 빠지게 만들 뿐 행복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가난했기 때문에 첫사랑을 잃고 그 사랑을 찾기 위해, 과거를 바꾸기 위해 낭만적인 꿈을 꾸다가 살해당한 개츠비를 이 세상 그 누구도 비판할 자격은 없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우리가 남을 비판하고 욕하기 이전에 그 사람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뜻도 갖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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