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빈 역사시사 칼럼 1] 엘리트 교육의 대물림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과연 이완용은 그저 나라를 배신하고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게 한 사람일까?
이완용은 1882년 25세 때, 피난 갔던 명성황후를 무사히 복귀시키고 고종이 다시 실권을 잡은 것을 축하하는 ‘증광 별시’에 응시하여 문과 병과 18등(전체 28위)으로 합격했다. 또한 어려서 일찍 '천자문', '동몽선습', '대학' 등의 책을 통달한 그는 상당히 실력 있는 달필가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것을 보면 과연 고학력인 사람을 뽑는 것이 옳은 교육시스템일까. 한 나라를 적에게 넘긴 이완용도 그 시대에서는 엄청난 엘리트였다. 제2의 이완용을 오늘날의 교육시스템이 키워내는 것은 아닐까 한다. 당연히 자신의 지식을 의미 있는 곳에 쓰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수가 자신이 누리는 부와 명예를 위해 공부한다. 과거가 아닌 지금에도 입대를 피하기 위한 이중국적, 한국의 의료보험 혜택만 취하는 등 고학력자들이 오히려 그런 질 나쁜 행태를 보인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좋은 대학을 나와 전문적인 지식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버리고 기꺼이 남을 위해 사는 이들도 많다. 우리나라의 이태석 신부만 보아도 그렇다. '울지 마! 톤즈'라는 영화를 통해 잘 알 수 있는 그는, 의과 대학교를 졸업했지만, 봉사활동으로 갔던 수단을 잊지 못하고 다시 신학 공부를 해서 수단의 가장 오지인 톤즈로 갔다. 콜레라로 병든 사람들과 곳곳에 있는 나병 환자들을 위해 병원을 짓고 우물을 팠다. 또 학교를 세우며 오랜 전쟁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가진 사람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브라스 밴드(brass band)를 만들었다.

 

나는 지식적 기반만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없으며 또한 지식이 소수의 이익만을 위한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만약 엘리트들이 이대로 본인들의 기득권을 위해 공부한다면 이 사회 계층 간의 괴리감이 깊어질 것이다. 이제는 창의적인 인재가 필요한 시대다. 이런 것의 확장을 위하여 사회 기득권층이 앞장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교육풍토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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