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기술의 발전, 복잡한 인간관계와 사회 속 반복되는 일상. 나는 내가 사는 21세기 현재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우리 삶은 너무나 편리해졌다. 기술과 통신의 발전으로 공간적 제약이 사실상 거의 없는 세상에서 살아간다. 수많은 규칙이 존재하는 복잡한 사회 속에서 나는 나에게 주어진 것을 그저 수행하며 하루를 보낸다. 내일도, 모레도 나는 그저 내 할 일을 할 것이다. 하지만 문득 무한한 우주 속 아주 작은 행성인 지구에 사는 그저 하나의 생명체인 ‘나’라는 존재를 떠올리면 이 모든 것은 허무하게만 느껴진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진다. 아직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고르지 못했다. 나는 학교에서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을 배우고 있다. 맨 처음 이 과목을 선택하게 된 까닭은 자신이 없는 과목을 제외하고 남은 하나의 과목이었고,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처음 이 과목을 들을 때 나는 이 과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철학을 들을 마음도, 나의 마음에 새길 생각도 없었다. 나는 그저 나만의 철학에 맞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지, 아주 오래전에 활동했던 철학자의 사상은 현재와는 무관한 것으로 생
저명한 철학가 임마누엘 칸트. 그는 무조건적인 정언명령으로 도덕법칙을 만들어 그것만을 따르며 사는 것을 강조했다. 보편주의와 인격주의에 의거한 법칙은 매우 견고했다. 그의 세계에서는 ‘하얀 거짓말’ 도 안 되는 것이다.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라는 도덕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세기는 그가 살던 시대보다는 훨씬 복잡하다. 가끔은 거짓말이 필요하고, 가끔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21세기에서 바라보는 칸트는 어떤 사람일까? 우리는 그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반려 동물 천만 시대, 동물보호법,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 등. 현대인들에게 동물은 꽤나 큰 의미들을 포함한다. 동물을 상대로 폭력을 휘둘러서는 안 되고, 배곯지 않고 따뜻한 곳에서 편안하게 잠에 드는. 우리와 별 다르지 않은, 도덕적인 권리가 있고, 감정과 고통을 느끼는 생명들. 동물 학대는 동물들이 아파하니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칸트에게는 좀 다르다. 그 역시 동물 학대는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지만 ‘인간의 인격이 훼손되기 때문에’ 하면 안 된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이들 중 방금 막 칸트가 싫어진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