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진의 역사문화칼럼 4] 목욕의 역사

청결’이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는 날마다 빠짐없이 샤워한다는 것을 뜻한다.

 

17세기의 프랑스 귀족에게는 아마포 셔츠를 꼬박꼬박 갈아입고 손만 살짝 씻는 것을 의미했고 1세기의 로마인에게는 다양한 온도의 물에서 하루 2시간 넘게 몸을 담그고 찜질을 하고 쇠로 만든 긁개로 땀과 기름을 닦아낸 뒤 다시 온몸에 기름을 바르는 것을 가리켰다.

 

이처럼 '청결'은 눈이나 코가 아닌 각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며 지저분함과 결벽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정의 되어졌다.

 

오늘날의 현대인들과 17세기의 프랑스인, 그리고 1세기의 로마인은 그들의 관점에서 행해지는 청결에 대한 갖가지 행동들이 문명의 지표이며 ‘자기들의’ 방식만이 깨끗함의 왕도라고 여겼을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덥고 습한 섬나라 기후 특성상 자주 씻을 수밖에 없었고 그들에게 있어서 목욕은 더러운 몸을 씻으러 간다는 개념보다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러 간다.’라는 의식이 강했다. 하지만 19세기 제국주의의 팽창으로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면서 자주 씻지 않는 주변국들을 경멸하며 자신들의 청결함에 대한 우월감을 가졌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경우 그리스인들이 잔잔한 물에 더러운 몸을 담근다는 이유로 이를 불결하게 여겼고 19세기 말의 미국인은 유럽인의 불결함에 할 말을 잃었다.

또한 나치는 유대인이 더럽다는 관념을 조장해 잔악한 학살을 저질렀다.

 

이처럼 나름대로 정의내려진 '위생관념'은 언제나 이민족을 구분 짓고 자신들의 우월함을 입증하는 잣대였다.

 

중세 이후 유럽 여행자들은 재미 삼아 가장 불결한 나라를 뽑기도 했는데, 승리의 월계관은 주로 프랑스나 에스파냐로 돌아갔다고 한다.

언젠가, 18세기 유럽인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아래 다음과 같은 해설이 달린 것을 본 적이 있다.

“이 그림에 나온 귀족들은 농민만큼 불결했다.”

 

당시의 귀족들은 의사들로부터 몸을 구석구석 씻지 말라는 권고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는 인체의 분비물이 보호막을 형성하며 차단된 모공이 몸의 감염을 예방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씻기를 두려워한 유럽인들은 원정에서 돌아온 십자군들에 의해 터키식 목욕탕 이야기를 퍼졌고 이후 몇 세기 동안 중세 유럽에는 따뜻한 물과 공중목욕탕이 유행하였다.

 

하지만 매독의 공포로 인해 목욕탕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결국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목욕탕 문을 닫게 만들었던 것은 14세기의 치명적 전염병 '페스트'였다.

 

하지만 역병이 돌지 않는 상황에서도 중세 말부터 시작된 물에 대한 공포는 점점 더 널리 퍼져만 갔다. 

그 이후 ‘목욕 없는 400년’의 시기가 도래한다. 

유럽인은 적어도 18세기 중반까지 가장 천한 농부에서 가장 귀한 왕에 이르기까지 물을 멀리하고 대신에 아마포에 놀라운 정화의 속성이 있다고 믿으며 셔츠를 갈아입는 행위를 통해 ‘씻었다’.

 

이와는 반대로  ‘너무’ 깨끗해서 눈총을 받기도 했는데 몸 구석구석을 문질러 닦아대는 이슬람교도는 몇 세기 동안 유럽인들에게는 충격이었다.

당연히 이슬람교도는 유럽인들이 지독하게 불결하다고 생각했다.

 

목욕은 단지 몸을 청결하게 한다는 개념이외에 통과의례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이름 없는 유아에서 공동체의 어엿한 구성원으로, 미혼자에서 기혼자로, 살아 있는 사람에서 죽은 사람으로, 삶의 어느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의식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와 오늘날의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신랑 신부결혼 전에 축하의 의미로 목욕을 하는 관습이 있다.

 

또한, 가장 보편적인 통과의례 가운데 하나는 망자의 몸을 씻어주는 것이다.

이 의례에는 실용적인 목적은 전혀 없고 심오하고 상징적인 의미만이 있다. 이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망자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마지막 안식처로 여행을 떠나는 망자의 몸을 깨끗이 씻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 물과 정화는 은총, 용서, 부활 등을 상징한다. 세계 곳곳의 종교 신자들은 기도 전에는 이슬람교도처럼 몸을 씻든 카톨릭교도처럼 은유적으로 성당 입구의 성수반에 손가락을 담그든 어쨌든 '씻는다'. 

, 기후, 종교, 그리고 사생활이나 개성을 바라보는 관점, 이 세 가지도 우리가 몸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청결의 정의는 당연하고 보편적이며 영구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부분 현대인은 20세기 이전의 사람들은 자주 씻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그 사람들은 냄새가 나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을 가진다.

하지만 모두가 악취를 풍기면 냄새가 나지 않는 법이다. 사람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그들의 조상들이 헤엄쳐 다니던 바다였고, 말라붙은 땀 냄새는 그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존재였을 것이다.

이렇듯  자신, 또는 이민족의 신체나 냄새에 대한 느낌은 대부분 집단 구성원들의 억측이나 편견, 선입견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비행기, 식당, 호텔 객실 같은 실내공간은 담배 연기로 자욱했으나 사람들은 그것을 잘 느끼지 못했다. 그런 장소 대다수가 금연 구역으로 지정된 지금, 사람들은 누군가 안에서 담배를 피우면 금세 얼굴을 찌푸리며 비난의 눈길을 던질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코는 적응력이 있고, 환경이 가르치는 대로 작동함을 알 수 있다.

 

 

 

청결의 미래는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사고방식뿐 아니라 천연자원과도 연관된 문제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목욕 습관을 가장 철저하게 바꿔 놓을 만한 것은 바로 오늘날의 심각한 물 부족 현상일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세기 뒤의 사람들은 평균적인 청결을 위해 엄청난 양의 깨끗한 온수와 세정제를 하수구에 버려대는 21세기 초의 목욕문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며 돌아볼지 너무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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