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목민심서를 탐독하며 목민심서의 구절을 정치자금법과 같은 사회 이슈와 연계해 현대의 시각으로 새롭게 접근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율기6조 '청심'의 구절 ‘貨賂之行(화뢰지행) 誰不秘密(수불비밀) 中夜所行(중야소행) 朝已昌矣(조이창의)’를 생각하며 정치면 기사를 검색했습니다. 이 구절은 ‘뇌물을 주고받는 것을 누가 비밀히 하지 않으리오마는, 한밤중에 한 것도 아침이면 드러난다.’라는 내용입니다. 공직자의 금품수수나 뇌물에 대해 경계하는 내용이지만 진보정당 대표의 안타까운 사례를 보며 모든 정치자금을 청탁으로만 단정 지을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해외사례를 찾아보며 원외 정치인들이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미국의 로비스트 법 양성 같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함을 알게 됐습니다. 이를 좀 더 알아보고자 파커. J.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읽었습니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한 연민과 정의의 생각을 저버린다면 세상은 취약한 이들이 고통 받을 것이라는 정치의 근본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부서진 자들에 의해서 민주주의는 진보한다.’라는 작가의 통찰에서 한없이 약한 존재들이 모여 마침내는 거대한
저만의 성취 기준을 정하여 꾸준히 노력하고, 실천하는 국제 청소년 성취 포상제 금장에 도전했습니다홍콩 합숙 훈련 한국 대표 10명에 선발되어 외국 학생들과의 국제교류를 통해 영어로 대화하며 우의를 다졌습니다. 홍콩 친구들과의 합숙활동은 에코 다이나믹스 활동 이후 국제 교류활동을 열망했던 저에게 ‘제이슨’이라는 인생 친구를 만나게 해 주었던 특별한 기회였습니다. 우리는 영어, 중국어, 한국어 3개 국어를 동시에 사용하면서 그룹 활동의 대부분을 함께 하며 깊은 우정을 나눴습니다. 제이슨은 한국어, 저는 중국어에 관심이 있었지만, 평상시에는 영어를 사용하고 틈틈이 중국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다양한 대화 방식으로 소통했습니다. 홍콩 친구들의 영어 억양이 어색했던 저에게 국제학교에 재학 중인 제이슨은 억양의 차이를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는 영어 능력이 부족해 홍콩 친구들과의 교류에 소극적이었던 한국 친구들의 통역을 담당하며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중개역할을 했습니다. 한국과 홍콩의 간식 비교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홍콩 친구들은 한국어 간식 단어에 대해 호기심을 보였고 자연스럽게 한글 수업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유엔환경계획인 UNEP과 기아가 함께 주최한 기아 에코다이나믹스 해외 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했습니다. 참가하기 전 지원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았는데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항목에서 EM용액을 활용한 all-in-one키트를 제작해 제출하여 선발될 수 있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진행된 프로그램이었는데 스웨덴, 독일, 사우디, 말레이,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참가했습니다. 6개국 학생들이 모여 환경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제작된 글로벌 프로젝트이며 서로 각국의 문화를 체험하고 함께 생활하는 기회 또한 제공되었습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현지를 찾아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현지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들이 무엇인지 들어보며 팀원들과 함께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사진은 이번 러시아 월드컵 때 예선에서 같은 조였던 스웨덴이랑 독일 친구들과 각자 본국을 응원하면서 신경전도 붙었던 상황이었는데 전에 스웨덴 친구가 스웨덴이 우리나라를 이겼을 때 자랑했던 적이 있었고 우리나라가 독일을 이겼을 때 간접적으로 스웨덴에게 장난으로 복수했었던 사진입니다. 제가 경험했던 스웨덴 친구들은 대화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며 다른 문화와 생각들에 개방적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은 창립 반세기를 맞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성장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브루나이로 이루어진 아세안 10개국의 국내 총생산을 합치면 약 2조8000억 달러에 이른다.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5위 규모이며 한국의 2배에 이른다. 인구 또한 6억 4000만 명으로 인구 5억 1000만 명인 유럽연합 보다 큰 시장이다.거대한 경제 블록으로 성장한 아세안은 한국, 중국, 일본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것은 물론 16개국(아세안, 한중일, 인도, 호주, 뉴질랜드)이 참가하는 메가 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 협정’도 추진 중이다. 이렇듯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아세안에 우리는 어떤 식으로 다가가야 할까?아세안 국가의 상당수는 아직 경제나 교역은 물론 과학기술, 문화, 교육,기술훈련, 인프라 등 미래발전을 위한 여력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 같은 갈증을 풀어 줄 국제협력이 절실한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이 거대 블록에 포함되고 교역량을 늘리는 것만으로 경제, 외교, 문화적 이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아세안에 팔
중국은 기후협약 탈퇴 등 자국 이익 우선의 미국과 달리 자유무역 등을 천명하며 글로벌 리더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서구 중심의 국제 질서 규칙을 다시 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중국 스스로는 패권을 쓰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힘을 가진 중국이 어떤 세계질서를 구축할지가 세계의 관심사이다. 엄청난 인구와 경제력을 바탕으로 굴기한 중국의 부상은 국제질서에 일대 충격으로 다가왔다. 과연 중국이 세우고자 하는 새로운 세계질서는 어떤 모습일까?아마도 중국은 16세기 조공체계와 화이사상을 근간으로 한 전통적 중화질서로의 회귀는 사실상 불가하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21세기 주권국가가 현대의 보편적 가치로 수용되고 있기 때문에 만일 중국이 과거의 조공질서를 추구한다면 이는 전 세계적인 저항에 부딪힐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중국은 서구 주도의 현 국제 질서를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고, 다만 현대 국제질서를 따르면서 여기에 중국 특색을 정교하게 더한 ‘중국 특색의 현대 국제질서’의 수립을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이 꿈꾸는 미래 세계질서는 어떤 것일까?미래 국제 질서는 각국이 주권국가로 구성되지만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영향력 차이가 존재하
고대 동이족 문화로 해석되는 홍산(紅山)문화는 아직도 고고학적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홍산 문화를 포함하는 요하 지역 문명은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신석기 문화가 훨씬 앞섰다.다시 말해서, 고대 동이족 문화가 시기적으로 중국 문화보다 앞서고 질적 수준도 훨씬 우수하기 때문에, 중국은 동이족 문화를 중화 문화로 귀속시키기 위해 동북아 지역의 모든 소수민족을 ‘중화민족’의 일원으로 해석한다. 이렇게 된다면 자연히 고구려사를 비롯한 이전의 모든 고대사는 중국사에 포함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사 왜곡에 맞서는 역사 연구는 물론이고 홍산 문화 유적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고대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진 황하 문명보다 훨씬 앞선 동이족의 홍산 문화는 문헌의 기록과 고고학적 유물로 보아 고대 동아시아에 여러모로 영향을 미쳤던 가장 발전된 문명이었다.가무를 즐긴 공연 예술 문화와 제천행사를 성대하게 한 굿 문화, 그리고 군자의 도리를 존중한 예절 문화가 발전했고, 아사달과 삼족오 문양 같은 시각적 상징 문화도 발달했다.이러한 동이족의 발달된 문화는 중국과 북방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은 동이족의 선진 문화를 받아들여 중세 문화를
3)목민심서에 나타난 공직자의 리더십과 현대복지에의 반영 목민심서에 나타난 공직자의 리더십 ‘율기’ 편에서 목민관이 지켜야 할 원칙 중 ‘청렴 결백한 마음가짐으로 검소하게 생활하며 청탁을 받아서는 안 된다’라는 구절을 통해 무엇보다도 ‘청렴’을 공직자의 본연의 임무이자 모든 선과 덕의 뿌리로 보았다. 청렴하지 아니하고서는 목민관이 될 수 없음을 천명하며 청백리 정신이 국가와 사회발전에 매우 중요한 덕목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현재 사회적 쟁점인 고위공직자들의 뇌물수수와 부정청탁 등의 청렴성과 자질, 윤리의식의 부재에 경종을 울리며 시사하는 바가 큰 내용임을 알 수 있다.두 번째로는 절약과 베풂을 공직자의 으뜸가는 임무로 보았다. “내 창고에 여유가 있어야 바야흐로 남들에게 베풀 수 있다. 나라의 재물을 훔쳐서 사사로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예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통해 제대로 베풀고자 한다면 평소 절약을 통해 비축하고, 공금 집행에 있어 목적과 용도에 맞게 쓰도록 고민함으로써 검약과 베풂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을 찾아야 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더불어 공물 보기를 사물처럼 한다면 이는 어진 목민관이고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지 못하는 자는 결국 실패한 리
베트남의 문화와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다.그래서인지 케이팝이나 드라마 등 한류에 대한 관심이 어느 나라보다 높다.요 근래에는 베트남 축구팀을 이끌고 있는 박항서 감독 때문에 이러한 관심이 더욱 폭발적인 것을 알 수 있다. 부임 3개월 만에 아시아 축구 연맹 23세 이하 챔피언십 준우승이란 기적을 만들어내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라 베트남의 히딩크, 국민 오빠라는 별명도 붙었다.이번 신남방정책의 일환으로 베트남 순방에 나선 대통령도 베트남 방문 첫 일정으로 축구팀 훈련장을 찾아 박 감독을 격려했을 정도였다. 아세안 국가 중 베트남은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이 찾은 국가로 인적 교류 측면에서도 1년간 베트남을 방문하는 한국인이 150만 명을 넘는다.또한 베트남은 아세안에서 한국의 공적개발원조를 가장 많이 받는 국가이며 한국 기업의 투자가 베트남 경제성장을 이끈다 해도 무방하다. 양국 간 교역액은 작년 한 해만 해도 40% 이상 증가해 640억 달러에 달했고, 한국은 베트남의 2대 교역국이면서 베트남은 한국의 4대 교역국이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2020년까지 양국의 교역 1천억 달러 목표는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한다.베트남의
2018년 평창 겨울패럴림픽이 지난 9일부터 18일까지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 이번 평창패럴림픽에는 역대 동계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인 49개국에서 567명의 선수가 참가해 총 80개의 금메달을 걸고 경쟁을 펼치며 지난달 열렸던 평창 겨울올림픽 못지않은 치열한 경쟁과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보여 주었다. 이렇듯 스포츠와 휴머니즘, 인간의 숭고한 의지를 보여준 패럴림픽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 역사는 단순히 장애인 스포츠 행사를 넘어서서 차별과 편견을 극복하고자 하는 살아있는 인류애의 외침으로부터 시작되었다.패럴림픽 이전에는 비장애인과 경쟁해 좋은 성과를 냈던 장애인 선수들에 의해 장애인 올림픽의 밑거름이 다져졌다고 한다. 사고로 다리를 잃고 의족으로 평행봉과 안마에서 메달을 딴 미국 국가 대표 선수, 오른팔이 심하게 손상돼 왼손밖에 쓸 수 없었던 헝가리 사격선수의 25m 속사권총 금메달 획득, 소아마비라는 장애를 이겨내고 2번의 올림픽에서 연속 은메달을 딴 덴마크 여성 승마선수 등은 장애, 여성 이라는 다양한 한계를 극복하며 이어 다가올 패럴림픽의 초석이 되었다. 장애인끼리 겨루는 스포츠 대회는 1948년 시작되었다. 이를 처음 조직해
지난 시간에 이어 목민심서에서 다루어진 다양한 복지정책 분야와 목민 정책의 현대적 의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2. 목민정책의 복지정책분야와 현대적 의미 - 목민사상과 사회복지 정책과의 관계목민심서는 윤리를 근간으로 사회복지사상을 형성하고 있다.이는 수기(修己)를 통하여 자신과 가정을 바로잡고 윗사람에 대한 윤리인 '효’, 대등관계 윤리인 '제’, 아랫사람에 대한 윤리인 '자’가 조화로운 화민성속(化民成俗: 백성을 교화하여 아름다운 풍속을 이룸)의 사회를 이루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사회를 어지럽히는 각종의 비리와 청탁을 막고 백성을 위한 청렴하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하였다. (박석무, 2005)또한 목민관은 오직 민생을 위해 본(本)이 민(民)이고 말(末)은 관(官)이라 마음가짐으로 백성을 대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주장에서 보듯 목민사상은 현대의 주권재민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그가 추구했던 민본주의 사상과 애민사상은 백성을 본위로 삼는 목민행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의지할 곳 없는 불쌍한 사람들과 질병이나 재난으로 극심하게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국가의 이름으로 위로하고 구휼하기를 주장하는 정약용의 목민사상은 서양의 복지
오늘날의 사회복지사상은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기본 가치로 하고 있는데 조선시대 역시 백성을 다스리는 기본을 추목(芻牧), 즉 백성을 먹이고 기르는 것으로 보았다. 이는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목민의 본질이라 하였던 다산 정약용의 목민사상과 유사하다.이처럼 전통사상에 기반 하면서 현대적 성격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현대 한국적 사회복지사상과 정책 적용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현대사회의 문제점으로 대두된 부모와 자식 간의 학대와 싸움, 이웃 간의 단절, 노인 소외, 강력 범죄, 공동체 의식의 상실, 인구 문제 등을 완화시키고 해결할 수 있는 사회기제가 바로 사회복지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다산이 목민심서를 통하여 주장하고 있는 사회는 현대적 개념의 복지국가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현재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는 사회문제의 원인을 파악하여 목민심서가 제시하는 해결책을 현대에 접목해 볼 수 있다. 앞으로 3회에 걸쳐 1)목민심서의 사상적, 시대적 배경과 내용, 2) 다양한 복지정책 분야와 목민정책의 현대적 의미 3)현대 사회복지에의 반영에 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첫 번째 시간에는 목민심서의 사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모두의 성지이자 중동의 화약고이다.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중세 때부터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고 현재까지도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이러한 예루살렘을 놓고 얼마 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이스라엘은 현재 미 대사관을 포함한 86개국 외국 대사관이 모두 텔아비브에 위치해 있다.반면 의회, 대법원, 대통령 관저 등 모든 주요 행정기관들은 예루살렘에 두고 자신들의 수도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국제사회 또한 지난 70년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선언을 통해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지난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견지해온 중립적 입장이 깨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예루살렘은 선지자 무함마드가 승천했던 곳으로 이슬람에 있어 이곳은 메카, 메디나에 이어 세 번째로 중요한 성지이다.심지어 무슬림들은 이곳 예루살렘을 향해 첫 18개월 동안 절을 해야 했는데 이는
세상은 커피를 마시는 사람과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커피를 마시고 그 커피로 연결된 세상을 사는 사람을 '호모 커피엔스'라고 한다.그렇다면 강렬하고 매혹적인 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신의 음료, 검은 액체 ‘커피’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그리고 현재,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한 잔의 커피가 가지는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커피의 발견, 에티오피아 커피의 유래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나 증거는 없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마셔왔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널리 알려진 것은 6~7세기경 에티오피아 목동 칼디(kaldi)에 관한 이야기이다.하루는 얌전하던 염소들이 붉은 열매를 뜯어 먹고 밤새 흥분해 춤추듯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 양을 돌보던 목동이 이 사실을 근처 수도원에 알리게 된다. 수도승들은 이 열매가 정신을 맑게 하고 피로를 덜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원에서 기도할 때 졸음을 쫓기 위해 먹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 아랍인들, 볶은 커피로 음료를 만들다 커피를 음료로 만들어 즐기기 시작한 것은 대략 15세기경으로 추정된다.커피 열매를 실수로 태우게 된 후 더 좋은 맛과 향이 난다는 것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다가오고 있다.‘수능 시험 ' 당일 듣기평가가 실시되는 시간대엔 한국 공군은 물론 주한미군 전투기도 이륙하지 않는다.전세계를 휘어잡고 있는 미군을 가볍게 눌러버리는 수능의 힘!오늘날 대한민국에서의수능은 비행기 이착륙은 물론 증권시장 개장시간을 조정할 정도의 위력(?)을 지닌 국가적 행사이자 국민적 초관심사이다. 과거 조선시대에도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 중에 훌륭한 인재를 쓰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라고 할 정도로 과거(科擧)를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일은 선조들에게도 큰 고민거리이자 중차대한 일이었다. 조선시대판 ‘수능’, 500여년 역사를 함께 한 인재 등용문 ‘과거시험’은 어떤 시험이었을까?또한 우리 선조들은 어떠한 인재를 뽑기 위해 고심했을까? 조선은 이전 고려보다는 신분보다 실력을 중시하는 공공성의 원칙에 좀 더 가깝게 진보했던 사회로 인재선발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음을 여러 역사적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3년에 한 번, 조선팔도 모든 선비들이 운명을 걸었던 과거시험은 가문, 혈통, 일체의 압력이나 청탁을 배제하는 순수한 실력경쟁으로 오늘날로 치면 수능에 해당하는 ‘소과’와 각종 고시와 비슷한 ‘
북한의 연이은 핵 도발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발언으로 연일 한반도를 둘러싼 핵전쟁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껏 전 세계가 본 적 없는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란 발언으로 북한과 미국을 둘러싼 핵전쟁 위협이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공표한 바 있다. 이렇듯 전 세계를 끔직한 공포에 떨게 만드는 가공할 만한 무기, 핵무기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5년 8월 미군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다.두 곳에서 나온 사망자수는 28만 명에 달했다.이것이 전 세계를 공포에 빠뜨린 핵무기의 등장이었다.이에 핵무기의 위력을 실감한 몇몇 국가들이 앞 다퉈 실험을 성공시키며 전 세계는 본격적인 핵무기 시대를맞이하게 된다. 1945년 미국을 필두로 1945년 소련, 1952년 영국, 1960년 프랑스, 1964년 중국 등이 핵무기 실험에 성공한다.이처럼 전 세계 곳곳에서 무분별한 핵실험이 계속되자 1970년에는 더 이상의 핵 확산을 차단한다는 목적의 ‘핵확산금지조약 (NPT: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이 발효된다. 이 조약은 미국과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