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호의 무비칼럼 8] <옥자> 자본주의 사회에게 던지는 봉준호 감독의 심판

불편하지만 꼭 알아야할 이야기


개봉 전부터 넷플릭스와 멀티플렉스 동시상영 논란으로 화제가 되었던 <옥자>를 뒤늦게 관람했다. 영화 생태계 교란에 대한 우려가 적잖게 불거지는만큼 멀티플렉스 상영관들의 결정도 이해할 만 하지만, 왠지 이번 <옥자>를 시작으로 점차 영화 산업의 전반적인 구조가 크게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옥자>를 보고난 직후 역시 봉준호 감독의 작품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전에 없이 직설적이고 과격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봉준호 감독답게 우리 사회가 가진 어두운 면을 드러내어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이전과 다르게 그 방식이 비유적이고 관객 스스로 되짚어 보게 만드는 것이 아닌 '심판'에 가깝다.



<옥자>는 여러면에서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연상 시킨다. 옥자와 괴물은 모두 자본주의의 악랄함이 만들어낸 존재들이다. 괴물은 독극물 처리 비용을 아끼려는 한 군부대에서 발생한 무단 방류로 인해 만들어졌다. 옥자는 미란도 그룹의 친환경 축산업이라는 명목 아래 만들어진 유전자 조작 슈퍼돼지이다. 하지만 괴물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죽여야만 하는 존재였다면, 옥자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구해야만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괴물>이 가족을 찾기 위한 사투에 가까웠다면 <옥자>는 마치 현대 버전의 동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특히 초반부 옥자와 미자가 산 속에서 행복한 한 때를 보내는 장면은 <이웃집 토토로>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ALF와 함께 옥자를 구출하는 장면은 긴장감 넘치기보단 의외의 웃음 포인트로 작용한다. 동물을 보호하겠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쳤을 것만 같은 사람들이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막상 보면 리더인 제이를 제외하면 하나같이 괴짜같은 구석들이 있다. 안 웃긴 상황에서 피식 웃음 짓게 만드는 봉준호 감독만의 스타일이 드러난 부분이었다.



이 영화는 자본주의가 지닌 추악한 면을 비판함과 동시에 매일같이 공산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에게도 강력한 메세지를 던진다. 사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이익만을 추구한 나머지 정작 기업으로서 갖추어야할 윤리 의식은 결여된 거대 기업들이 많다. 하지만 잠시 비난 받을 뿐 얼마 뒤 그 기업의 상품들이 오히려 불티나게 팔리는, 소위 '노이즈 마케팅'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극 중 루시의 쌍둥이 언니인 낸시의 한 대사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정곡을 찌른다.

"가격이 싸면 다들 먹어."

루시와 낸시는 비슷한 구석이 많지만 기업인으로서의 마인드는 큰 차이를 보여준다. 루시와 낸시의 서로 다른 상징적 의미에 주목하신다면 이 영화가 비판하고자 하는 부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제이크 질렌할이 연기한 조니도 눈여겨 볼 만하다. 예고편부터 개성이 뚜렷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유머를 담당하는것에 저런 유명 배우를 소진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중반부에서 나름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다만 조니를 조금 더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낼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너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아서 아쉬움이 남았다.



후반부와 결말부는 봉준호 감독답게 묵직하고 강렬하다. 다만 일부 관객분들에게는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사실 예고편에서 얼핏 지나갔던 장면들을 조합해보면 예상은 하실 수 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옥자>를 준비하면서 실제 육류가 생산되는 공장을 직접 방문했다고 한다. 그 때의 충격으로 실제 한동안 육류를 전혀 입에 대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 때의 경험이 후반부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듯하다. 필자 역시 인터넷으로 우연히 돼지가 도축되는 과정을 영상으로 접하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는데, 그 때의 충격이 조금 되살아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 부분을 보여준 것이 오히려 개인적으로 <옥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후반부는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봉준호 감독이 자본주의 사회와 소비자들에게 내리는 심판에 가깝다. 그 심판이 다소 과격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때로는 이런 직설적인 심판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와서 조금이나마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어쩌면 봉준호 감독은 이런 변화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마냥 적나라하고 직설적이지만은 않다. 봉준호 감독답게 결말부는 관객들이 생각해보게 만드는 그러한 요소를 보여준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언급은 안하지만 의외의 요소가 있으니 잘 봐두시길 바란다.



ALF의 리더 제이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다소 잔인하고 끔찍한 현실을 가급적 미자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한다. 미자는 흔히들 하는 말로 '좋은 것만 보고 자라야 할' 나이다. 이런 미자가 자신의 동생 옥자를 구하기 위해 전력질주하며 자본주의와 정면으로 맞서는 과정을 통해 다소 불편하고 거북하다는 이유로 우리가 외면하고, 사회가 감추었던 이면을 '좋은 것만 보고 자란'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옥자>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칼럼소개: 영화 칼럼이 영화에 있어 또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 감상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칼럼은 하나의 견해를 제시할 뿐 영화에 대한 실질적 감상은 여러분 개인의 몫입니다. 영화에 대한 각자 다른 생각들이 모여서 서로 존중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조영호의 무비칼럼]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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