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호의 무비칼럼 3] <컨택트> 미지와의 조우를 통해 보여주는 소통의 진정한 의미

소통과 화합의 결과는 '논 제로섬 게임'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 비행물체 12대가 전세계 각지에서 등장하며 지구는 혼란에 휩싸인다.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18시간마다 열리는 비행물체 안으로 들어가 외계인들과 대면하는 것. 그들이 어디서 왔고, 왜 지구에 온 것인지를 밝히기 위해 언어학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인 루이스(에이미 아담스)와 물리학자 이안(제레미 레너)은 한 팀을 이루어 그들의 언어 체계를 하나씩 밝혀 나가며 그들과 의사소통을 시작한다. 과연 그들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목적으로 지구에 착륙한 것일까.


우선 칼럼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주의사항을 말씀드리자면, 필자는 스포일러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몇몇 작품의 경우에는 스포일러를 미리 접하고 영화를 보는 게 감상에 더 이로울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 소개할 '컨택트'는 어떠한 사전 정보도 입력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시는 걸 추천드린다. 향후 이 영화를 감상하실 예정이고, 이 영화만의 재미를 제대로 느끼고 싶으신 분들은 오늘 칼럼 역시 감상하시지 않는 것이 좋다. (스포일러가 상당히 포함될 예정이다.)


컨택트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SF영화지만, 지금까지 외계인이 등장했던 여타 영화들과는 완전히 다른 설정과 주제로 러닝타임을 이끌고 간다. 우리가 흔히 외계인이 영화에 등장한다고 하면 드는 생각은 '압도적인 숫자와 기술력으로 2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지구 방방곡곡 부수고, 부수고, 또 부수고 다닐 것'이다. (참고로 필자는 배틀쉽에 격렬하게 분노한 이후로 외계인과의 전쟁을 다루는 영화에 정이 떨어졌다.) 하지만 컨택트는 의외로 정적이다. '쉘'이라고 부르는 외계인들의 우주선은 사진처럼 붕 떠서는 어떠한 공격도 실행하지 않는다. 디자인도 얼핏 보면 우주선 같지 않다. 컨택트는 SF장르를 표방하지만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스토리의 중심은 언어학자 루이스가 외계의 언어를 이해하며 그들과 점점 고차원적인 소통을 해나가는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루이스가 어떤 과학적 원리로서 외계의 언어를 분석해내는지가 아니다. 영화에서도 짧게 지나가는 장면들과 제레미 레너의 나레이션으로 간단히 설명할 뿐 자세히 다루지는 않는다.


중반부를 넘어가면 지구에 온 목적에 대해 외계인들이 보낸 답은 '무기를 주다'였다. '무기'라는 단어 하나에 사람들은 극도로 예민해졌고, 언론에서는 외계와의 전쟁이 임박했다고 보도한다. 심지어 몇몇 국가에서는 외계인들에게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려고도 했다. 루이스는 아직 두 종족 사이에 언어에 대한 이해가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외계인들에게 '무기'라는 단어가 '도구' 등의 다른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도입부에서도 보여졌는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총'은 사람을 죽이는 무기지만, 루이스에게 '총'은 딸과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해주는 도구였을 뿐이다.


재밌는 것은 이전까지는 우주선이 착륙한 12개 국가가 긴밀하게 연락하며 정보를 공유했지만, '무기'라는 단어가 등장한 이후부터 12개 국가가 통신을 차단하며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장면이다. 외계인들과의 소통이 원활해질수록 정작 말이 통하는 인류 간의 소통은 차단되어버리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극 중 이안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말을 한다. 제로섬 게임은 패자의 점수가 '0'이 되어야 끝이 나는 게임이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12개 국가는 각국의 안전을 위해, 혹은 이번 기회에 강대국이 되기 위해 모든 협력을 중단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이안의 대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세계 정세에 있어 제로섬 게임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의 화합을 추구하는 것은 어느 한쪽이 이익을 보면 모두 함께 이익을 보는, 논제로섬 게임인 것이다.



컨택트가 어려운 영화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시는데, 혼란스럽다는게 더 맞는 것 같다. 필자 역시 처음 관람한 후에 상당히 혼란스러운 부분들이 많았다. 오히려 그래서 사전정보 없이 관람하시라고 추천 드리고 싶다. 컨택트의 반전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곱씹어보게 만든다. 그리고 천천히 되새겨보면 영화는 꽤 이른 시점부터 반전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시작부터 반전을 보여주고 시작한 것이었다. 컨택트의 반전이 다른 영화들의 반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결말부에 다다라서야 등장하는 임펙트 있는 반전이 아니라, 작은 실마리들로 시작해서 결말에 다다를수록 점점 크고 구체적인 암시들을 던지며 결말에 다다르면 그 모든 퍼즐이 맞춰져 감독이 설계한 함정(?)에 뒷통수를 제대로 얻어맞게 된다.



외계인들이 사용하는 문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문자와는 다르게 처음과 끝이 맞닿아 있는 비선형 구조로 되어있다. 또한 루이스의 딸 한나의 이름은 영어로 쓰면 'hannah'로, 거꾸로 써도 똑같다. (ㅇㅂㅇ처럼...  미안 한나) 아직 영화를 안보셨거나(그러면 이 글을 보시면 안될텐데) 이미 보신 분들도 이 점을 유의하시면 감독이 일찍이 영화에서 '시간'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 힌트를 던졌다는 것을 아실 수 있다. 



컨택트는 호불호가 분명 갈릴 수 있는 영화이다. 하지만 반드시 보셨으면 한다. 전혀 새로운 유형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문과생이 해석한 SF'라는 평을 보았는데 평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는 스토리는 종종 봤어도 미래가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영화는 처음이었다. SF장르를 싫어하시는 분들도 보실만한 작품이다. 정적인 서스펜스로 극을 끌고 나가는 연출도 훌륭하고, 현 시점에 걸맞는 소통과 화합에 대한 메세지, 스며드는 반전까지 흠잡을 것이 거의 없다.


극중 루이스는 미래에 자신이 이안과 결혼하고, 딸 한나를 낳지만 이안은 루이스를 떠나고, 한나가 후에 불치병으로 죽는 것까지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아픈 일들을 보지만 결국 알고 있는 미래를 따라가는 순례자가 되기로 한다. 미래라는 것은 기쁘고 행복한 일들만 골라서 일어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설사 미래를 모두 안다고 할 지언정, 그것들은 자신이 떠안고 가야할 운명의 일부분인 것이다. 미래에 벌어질 아픈 일들보다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일들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어떻게 흘러갈 지 알면서도, 난 모든 걸 껴안을거야.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반길거야."




칼럼소개: 영화 칼럼이 영화에 있어 또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 감상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칼럼은 하나의 견해를 제시할 뿐 영화에 대한 실질적 감상은 여러분 개인의 몫입니다. 영화에 대한 각자 다른 생각들이 모여서 서로 존중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조영호의 무비칼럼]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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