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현의 정치칼럼 2] 정치는 '꾼' 에게 맡겨라?

꾼에 의해 포기해버린 순수함과 소박함의 정치

“순수하고 소박한 뜻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너무 순수했던 것 같다. 정치인들은 단 한 사람도 마음을 비우고 솔직히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더라, 정치는 꾼에게 맡기라고도 하더라. 당신은 꾼이 아닌데 왜 왔느냐고 하더라. 정치는 정말 이런 건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 정치인들의 눈에서 사람을 미워하는 게 보이고, 자꾸만 사람을 가르려고 하더라. 표를 얻으려면 나는 보수 쪽이라고 확실하게 말하라는 요청을 너무나 많이 들었다. 보수의 소모품이 되라는 이야기다. 정치인이면 진영을 분명히 하라고 요구하더라. 보수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 나는 보수지만 그런 이야기는 내 양심상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난 1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0일 만에 정치권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그는 개헌을 고리로 한 새로운 연대를 주장했다. 이른바 ‘빅텐트’, 즉 분권형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본인은 자신의 전공인 외교 분야를 맡고, 그 외 분야는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기겠다는 것이었다. 본인이 대통령이 된다면 2020년 총선 시기를 맞추기 위해 3년 임기 단축 역시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분권형 개혁 추진을 위해 여러 분야의 인물들을 만났다.


그러나 그가 너무 순수했던 것일까 아니면 소박했던 것일까? 그가 만난 사람들은 그가 생각했던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새누리당 인명진 비대위원장은 반기문 전 총장에게 “나이가 들면 미끄러져서 낙상하면 아주 힘들어집니다. 특히 겨울 같은 때는 미끄러워서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낙상하기 쉬워서 집에 가만히 있는 게 좋습니다. 저는 그래서 낙상주의로 최근 입장을 바꿨습니다.”라고 말했다. 반기문 전 총장은 그의 앞에서 웃음을 잃지 않았으나, 그 말을 농담처럼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인명진 위원장이 수인사도 끝나기 전에 앉자마자 보수주의자, 진보주의자를 물어서 당황했다.”고 당시 속마음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새누리당 이후 바른 정당을 찾았지만, 반기문 전 총장에게 끊임없이 입당해달라며 구애했던 그들의 태도 역시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반기문 전 총장은 기존의 정치인들, 일명 ‘정치꾼들’에 비해 순수하고 소박했을지 모른다. 그는 기존 정치권의 편협한 이기주의와 정치인들의 태도를 보며 실망감, 절망감과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은 정치교체에 대한 진정성을 담아 뜻을 전달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의 정치권은 전혀 다른 냉담한 반응을 보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는 결국, 2월 1일 3시 30분, 국회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대선 불출마 선언 이후, 대부분 언론은 대선 불출마 선언의 원인과 반기문 전 총장, 그리고 다른 대선주자들에 대한 분석을 내놓고 있었다.


나는 반기문 전 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 이후, 왜 반기문 전 총장의 결정이 ‘대선 불출마’이어야만 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는 이기주의와 기회주의에 휩싸인 정치인들의 태도에 실망했고, 그들의 요구를 양심상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이유를 가장 큰 대선 불출마 선언의 이유라 말했다. 하지만 잘못된 태도와 요구로 인한 실망감과 배신감으로 인해, 정치권을 떠나겠다는 것은 어쩌면 정말 개인적인 이유이며, 어쩌면 ‘도망’이지 않았나 싶다.


반기문 전 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은 그가 기존 정치권의 부패한 면모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그 부패한 면모를 보고, ‘나는 받아들일 수 없어’라는 판단 하에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가 대선 불출마가 아니라, 그러한 기존의 정치권의 그림자에 맞서 자신의 소박하고, 순수한 정치개혁을 이루어 내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면, 그는 어쩌면 더욱 많은 이들에게 응원과 지지를 받게 되고, 어쩌면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번 대선 불출마 선언 이후, 나는 반기문 전 총장에 대한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가 과거에 어떤 직위에 있었는지, 어떠한 일을 하였는지를 떠나, 부당한 면모를 두 눈으로 보고도 그러한 부당한 면모를 해결하고 더 청렴한 정치를 이루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히지 못한 것이 실망스러웠다. 물론 실제 정치가, 그들의 세계가 우리의 생각과 말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더욱 더 순수하고 깨끗한 정치를 이루어 가겠다는 다짐이 하나라도 남아 있었다면, 기존의 어두운 정치에 작은 촛불 하나가 켜지지 않았을까.

   


깨끗하고 청렴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을 살펴보면, 그 과제가 무엇인지 하나 둘 깨닫게 된다. 이번 반기문 전 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 그리고 대선주자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우리가 극복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바로 ‘부당한 것에 도망치지 않고 맞서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여러분도 부당함에 도망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가, 밝은 ‘촛불’이 되어 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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