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서연의 독서 칼럼]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처음 서점에서 과학 베스트셀러로 진열된 것을 보았지만 제목을 보고 마술 이야기인 줄 알고 그냥 지나쳤었다. 최근 뇌의 신비로움에 호기심이 많던 나는 우연히 이 책의 첫 장을 넘기고는 단번에 책을 집어 들었다. 작가 올리버 색스는 신경의학, 뇌과학 교수이며 의사이다. 수십 년간 그는 뇌와 신경장애를 가진 환자들을 진료. 치료하며 세심히 관찰하고 연구하고 기록하여 인간을 위해 고뇌하는 과정이 담긴 연구서, 임상 보고서 같은 책을 집필했다. 24가지 이상의 논픽션 에피소드가 담겨있어 흥미롭게 읽기 시작했지만, 환자는 상상 밖의 이상하고 비참한 세상을 살고 있었고 그들을 바라보는 의사는 신경학자, 뇌과학자로서 진지했고 세심했고 애처로웠다. 그냥 단순히 뇌에 일어나는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에피소드가 아닌 '인간'을 생각하는 과학자이자 의사의 고뇌가 담겨있었다. 관심과 애정을 쏟고 관계를 맺고, 지속해서 발전해 나아감의 중요성을 알게 해준 책. 나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란 이 책을 애정, 관계, 그리고 발전이라는 세 가지로 얘기하려 한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병을 겪거나 또는 노화로 인해 뇌에 생리학적 생화학적 결손, 과잉증상이 오고 그로 인해 환자마다 여러 가지 괴이한 증상이 나타난다. 책 속에서 환자와 그 가족, 의사는 '애정'으로 엮여있다. 의사는 환자와 병증에 대한 애정이 어린 관심을 쏟는다. 여느 의사와는 다르다. 대화하고 집을 방문하고 길이나 교회에서 관찰하며 마치 탐정처럼 과거 행적을 좇아 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나타나는 증상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즉 환자의 단편이 아닌 전체 스토리를 파악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해결책을 찾는다. 완치가 안될 수도 있지만, 환자의 남은 인생을 위해 최선책을 찾으려 노력한다. 환자는 가족과의 애정 관계가 돈독할수록 병증이 비참한 가운데서도 희망적인 요소를 보인다. 예를 들면 자폐가 생기기 전 어렸을 때 음악을 가르쳤던 아버지 영향으로 세상과 단절된 자폐임에도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가져 음악과 함께할 때 만큼은 행복함을 느낀다. 한 80세 노인은 뇌의 관자엽 손상으로 과거 기억이 라디오 음악처럼 들려오는데 어릴 적 그리운 엄마의 기억과 함께여서 그날 부모의 사랑을 다시 느끼는 행복감에 젖기도 한다. 이처럼 환자에게는 사랑받은 기억이 뇌 깊숙이 남아 병증에 영향을 미치며,  의사에게는 환자와 병을 대하는 관심과 애정에 의해  치료법도 새롭게 모색되는 힘이 된다. (참고 :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51~53쪽)

 

둘째는 '관계'의 중요성이다. 시각인식 불능증에 걸린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보기는 하지만 무엇인지 인식을 못 한다. 즉 물체와 나와의 관계를 맺지 못한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지미는 1.2분 전의 기억을 잃어버린다. 지미에게 정체성이나 관계가 있을 수 있을까? 똑같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톰슨은 본인의 정체성을 증명하려는 듯 끊임없이 얘기를 꾸며낸다. 하지만 홀로 정원이 있을 때만은 조용해진다. 관계를 맺을 대상이 없고 정체성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기에. 또, 자폐와 지적장애를 가진 쌍둥이 이야기는 뇌가 갖은 미지의 세계, 불가사의하고 복잡하며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세계의 궁금증을 자극한다. 지능지수는 60인데 숫자에 관한 기억력은 한계가 없을 정도다. 쌍둥이는 서로 숫자로 놀이하며 숫자로 대화한다. 둘은 수로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행복해한다. 인간을 배제한 질병만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이 둘을 떼어놓았을 때 숫자로 된 대화나 교감이 차단되자 그들은 신비한 능력이 점차 사라지고 기쁨이나 살아있다는 감각조차 뺏기고 만다. 이는 실패한 결과이고 비극적인 결말이다. 이처럼 환자에게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의사는 환자 표면만을 보지 않고 내면 깊숙한 심층에까지 생각하고 선입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공감해 준다. 그런 의사와 환자의 관계 또한 믿음과 신뢰가 쌓여 효과적인 치료로 이어진다. (참고 :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323~325)


마지막으론 '발전'이다. 자폐를 치료하는 과정 중 환자의 잠재능력을 알아내는 방법이 중요한 치료과정으로 소개가 된다. 고립된 세계에서 사는 줄 알았는데 특정 분야의 잠재능력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을 발견하고 그 세계에서 안정감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환자의 치료 방법을 발전 시켜 예술적, 음악적, 이야기, 극과 같은 요소를 다른 환자에게도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었다. 이 책에 소개된 에피소드는 일반적이고 흔한 증상이 아닌 의사가 봐도 괴이하고 흔치 않은 임상 증상을 보이는 환자의 스토리로 엮어졌다. 처음 경험하는 병증도 있고, 같은 병명이라도 증상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정도도 다르다. 의사는 환자마다 반응, 상태를 관찰하여 꼼꼼히 기록하고 다른 동료학자들의 임상경험과 충고를 참고한다. 한 사람의 병증에서 끝나지 않고 잡지에 실어 독자의 경험이나 전문가들의 지식을 취합하고 생각과 경험을 발전시킨다. 또한 이를 임상 기록으로 남겨 또 다른 환자를 위해 후일을 도모한다. 이 책도 그 목적의 하나일 것이다. 그는 인간에 관심을 기울이는 인간적인 의사이기 때문에 이 모든 노력이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애정, 관계, 발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인물을 예로 들자면 영화 ‘뷰티플마인드’의 주인공,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존내쉬는 천재 수학자였다. MIT 대학 교수 시절 심각한 정신 분열증으로 교수직에서 물러났으나 친구의 도움으로 대학 도서관 구석에서 그토록 좋아하는 수학에만 빠져 평생을 보내며 66세에 노벨상까지 타게 되었다. 그가 가족과 친구의 애정이 없었다면 병상에서 평생을 보냈을 수도 있고, 수학과의 관계가 없었다면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이 책을 통하여 세상이 환자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갖고 이해를 하기를 바라고, 그들이 자신의 세계나 사회에서 관계를 잘 맺고 살아갈 수 있도록 뇌과학, 신경의학 분야의 끊임없는 발전을 위해 이 책을 엮었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책임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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