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인의 독서 칼럼]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가 지은 '미움받을 용기 2'를 읽고

나는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가 지은 '미움받을 용기2;를 읽었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단 2명, 철학자와 청년이다. 청년은 아들러의 심리학을 공부한 다음 교직 생활을 한다. 하지만 아이들과의 충돌과 교육자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아 조언을 구하기 위해 철학자를 다시 찾아간다. 책은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로 내용이 진행되고, 이들은 아들러의 심리학을 기반으로 ‘교육’을 주제로 이야기한다.


내가 이 책에 대하여 칼럼을 쓰는 이유는 ‘교육’이라는 분야를 공부하게 되는 것뿐만이 아닌, 이러한 교육을 사회에 적용하며 깨달음을 얻은 책이기 때문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에게 이 책을 소개해주고 싶다고 느꼈다. 이 책의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로 줄이면 ‘교육의 중심은 학생이다.’이다. 이에 대해 예를 들어 설명을 해주는데, 철학자는 청년에게 ‘교실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생각하고 학생들이 국민이라면 교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다.(본 책 72쪽)  청년은 이에 대해 대통령이나 총리라고 대답하지만, 철학자는 학생들이 투표하여 교사를 뽑은 것이 아니므로 교사는 독재자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교사를 독재자로 보는 관점에서 작가가 교육에서 교육자보다 학생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철학자가 한 질문 중 흥미로운 질문을 하나 뽑아보자면 ‘ 교사가 학생들을 먼저 존중해주어야 할까? 아니면 학생들이 먼저 교사를 존중해주어야 할까?’라고 할 수 있다.(본 책 48쪽) 교사가 학생을 먼저 존중한다면 학생들의 신뢰를 얻어 학생이라는 공동체를 잘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먼저 교사를 존중해주었을 때에도 긍정적인 효과는 발생할 수 있다. 학생들이 먼저 교사를 존중해줄때는  교사가 ‘선한 권위’를 얻게 되어 공동체를 쉽게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 책의 저자는 교육의 중심을 학생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철학자는 교사가 먼저 학생을 존중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현재 사회에서도 적용된다. 과거의 교사가 학생들을 체벌하는 것은 허용되었고, 과거 학창 시절 체벌을 겪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사회였다. 하지만 현재는 체벌은 위법화가 되어가고 있고, 학생들을 체벌한다면 교사는 처벌을 받게 된다. 이는 교육의 중심이 학생이라는 증거인 셈이다. 체벌이라는 것은 학생을 수월하게 통제하기 위한 교사를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이러한 체벌이 금지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교사의 편리함보다 학생의 인권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미움받을 용기 2'는 교육이라는 분야에 대한 정보를 통해 사회적인 측면까지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유익한 책이다. 현재의 교육이란 무엇인지, 교육자란 무엇인지, 교육이라는 범위 내에서 무엇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지, 등과 같은 물음에 이 책이 명확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교육 쪽에 관심이 있는 학생을 포함한 학생들과 현재 교육자가 이 책을 읽는다면 교육과 삶, 양쪽 측면에서 모두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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