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원의 독서 칼럼] 아가미, 사랑의 형태를 고찰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어떤 형태로서 존재할까? '사랑'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막연하다. 가족, 친구, 연인 등 사랑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은 유연하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각자의 삶에 녹은 상태로 존재해서 손을 뻗으면 감각할 수 있는 사랑이다. 추상적인 표현이지만, 책장을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우리가 평소에 여겨왔던 사랑의 정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처음 읽었을 때와 두 번째로 읽었을 때의 감상이 전혀 다르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없는 주인공들이기에 과연 이들의 감정을 공감하고 또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들의 감정은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는 '우리들의' 감정과 비슷했다. 

 

 

 

 

한 여성이 귀가하는 길 발을 헛디뎌 강에 빠지는 사건을 시작으로 사건은 전개된다. 해류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는 여성은 소설의 앞부분에서 잠깐 등장하는가 싶더니 전반적으로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헤엄쳐 나오기 힘든 강에서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물속의 낯선 남자 덕분이었다. 그 물속에서 그녀를 구한 남자는 이 소설의 주인공, '곤'이다. 곤은 물속에 살다가 강이 위치한 마을, 이내촌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할아버지와 그 손자 '강하'에 의해 구해진다. 구해진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할아버지와 강하가 물 속에 있던 앳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를 물속에서 꺼내 집으로 데려가, '곤'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는 할아버지, 강하와 함께 그들의 집에서 살게 되면서 태어난 이후부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소속감과 사회성에 대해 깨닫게 된다.

 

앞서 사랑의 정의에 대해 언급했었는데, 그렇다면 이런 줄거리에서 어떤 형태의 사랑이 등장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곤을 향한 강하의 사랑이다. 특정 인물을 가리키며 '누군가를 향한'사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일방적인 감정이 아니었으니, '향한'이라기보다도 곤이와 나눈 강하의 사랑이라는 표현이 더 옳지 않을까 싶다. 다짜고짜 곤과 강하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다가 강하와 곤의 사랑이 어떻다 이야기하는 것이 터무니없게 느껴질 수 있겠다. 필자가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해서 책장을 덮기까지, 주인공인 강하의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의아해했었다. 다름이 아니라 강하가 곤에게 너무 심하게 대하는 것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아가미'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지만 곤에게는 귀 뒤에 깊게 팬 아가미가 있다. 피부도 일반적인 사람과 다르게 빛을 비추어보면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거린다. 강하는 곤이가 처음 집에 왔을때 부터 외출을 거의 자제했으며, 실내에서도 되도록 방 안에 있도록 했다.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와, 또 다른 등장인물들 사이의 갈등 과정에서 강하의 사랑은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라 많이 엇나간 사랑이 아닐까. 곤이 살던 물속 세계와 지금 땅 위의 세계는 모두 혼란한데 이렇게 형체 없는 세상에서 사랑이 온전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첫 번째로 읽었을 때는 강하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줄거리를 파악하고 인물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에 급급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글이고, 여운이 너무도 짙었던 글이라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느껴졌다. 얼마 전, 다시 이 책을 읽자 처음 읽었을 때는 의아했던 강하의 행동들로부터 비롯된 진심이 여실히 드러났다. 강하의 삶에 있어서 곤의 존재는 전부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중간에 등장한 강하의 어머니 '이녕'의 등장에서, 강하의 유년기가 어땠는지에 대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손에서 길러졌지만, 그에게 있어서 유독 허전하게 느껴졌던 부모의 부재와 특별할 것 없었던 날들에 지쳐가던 중 곤이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곤, 그에게 있어서 당신은 어쩌면 일찍이 들어본 적 없던 세계의,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직조된 존재였어요. (p.118)

 

 

이 구절을 읽자 모호하기만 했던 그 둘의 관계가 어느 정도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곤은 강하의 감정에 대해 어렴풋이 알았지만 강하에게는 곤의 존재 자체를 품어 줄 수 있을 만큼의 넓은 공간이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닫고, 견고한 경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순탄하지 않은 사랑이며, 엇나간 것은 아니지만 그리 완전하지 않은 사랑이다. '헤엄쳐야지 별 수 있나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기도 하니.' (p.22) 가볍게 털어놓는 듯한 이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가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다시 흩어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며, 누구에게 일어난 어떤 일이든 낯설지 않은 이유는 우리 모두 그런 방식의 삶을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는 동안 내가 위로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강하가 곤에게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다고 진심을 터놓았던 순간 나에게 강하 같은 존재, 곤과 같은 존재가 없어도 흐름에 따라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확신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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