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나의 독서 칼럼] 죽음의 곡, 광염소나타

창작을 위한 범죄를 독특한 예술의 형태로 보아야 하는가?

2015년 1월 1일, 많은 사람을 충격 속에 몰아넣은 현대 미술 작가 모르텐 비스컴(Morten viskum)은 한 커뮤니티에 그의 작품들과 그림 그리는 광경을 담아 넣은 사진을 올렸다. 그림의 제목은 ‘손(Hand)’이다. 손으로 그린 그림이다. 문제는 그 손이 자신의 손이 아니라 누군가의 잘린 손이라는 것이다. “작품을 위해 죽은 사람의 신체 조각을 얻어내는 일은 쉽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황당한 답은 “그것은 이 프로젝트의 비밀 중 하나입니다.”였다. 죽은 사람의 잘린 손을 이용하여 작품을 창작한 행위와 또 그 작품에 대한 수많은 비판이 있었음에도 그는 시체의 손이 자신의 제3의 손이라며 그것을 통해 새로운 작품이 태어난다는 뻔뻔한 반응을 보였다.1

 

 

김동인의 <광염소나타>는 천재적인 예술성과 광기를 지닌, 걸작을 만들어내기 위해 여러 범법 행위-방화, 살인, 시간, 방화 등-를 저지르는 음악가 백성수가 등장한다. 백성수의 이야기에 대해 친구 사이인 자선가 모씨와 작곡가 K씨의 대화, 백성수의 수기와 편지로 이루어진 액자식 구성의 소설이다.

 

백성수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였을까. 자기만족?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 자신의 부도덕적 행위를 무마하기 위한 결과물? 예술의 목적은 개인마다 다르며 어떠한 것이든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하면 모든 것이 다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저지른 범법 행위조차도 우리의 관점을 달리해서라도 예술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어떤 ‘기회’라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서, 그 사람의 가지고 있는 천재와 함께, 범죄 본능까지 끌어내었다 하면, 우리는 그 ‘기회’를 저주해야겠습니까, 혹은 축복하여야겠습니까? 이 성수의 일로 말하자면, 방화, 사체 모욕, 시간, 살인, 온갖 죄를 다 범했어요. (중략) 그러나, 때때로 그 – 뭐랄까, 그 흥분 때문에 눈이 아득하여져서 무서운 죄를 범하고, 그 죄를 범한 다음에는 훌륭한 예술을 하나씩 산출합니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범죄를 믿게 보아야 합니까 혹은 범죄 때문에 생겨난 예술을 보아서 죄를 용서하여야 합니까?”

 

질문을 던져본다. 당신은 예술의 창작을 위한 부도덕한 행위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가? 모르텐 비스컴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아무리 독특하고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시대라지만, 그의 작품은 타인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는 뻔뻔한 태도와 엄연한 시체 모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예술가 스스로에게는 예술이라 정의될 수 있겠지만 타인에게는 미성숙한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예술적 측면뿐만이 아니라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범죄 코디네이터가 등장할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범법 행위가 하나의 예술 요소로 치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이런 ‘부도덕한’ 소재에 무뎌졌으며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미래를 초래하는지 알아야만 한다. 저자는 올바른 예술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을 만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천재적인 예술성에 매료되어 인간으로서의 도덕성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

 

참고 및 인용자료 출처

1.참고: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501061149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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