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의 독서 칼럼] 전염병과의 치열한 사투를 담아낸 ‘28’

재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

코로나19로 사회가 혼란스러운 지금, ‘28’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정유정 작가는 엄청난 필력으로 전염병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빨간 눈 괴질’이라고 불리는 전염병이 퍼진 28일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독특한 점은 이야기가 5명의 인물과 1마리의 개의 시점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6개의 시점이 서로 어우러져서 하나의 대서사를 이룬다. 

 

 

빨간 눈 괴질은 치사율이 매우 높은 전염병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더욱 공포에 몰아넣었다. 눈이 빨갛게 변하기 시작하면 죽음이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눈이 변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또한, 빨간 눈 괴질의 가장 큰 특징은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점이다. 이 사실이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일깨웠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전염병을 옮길지도 모르는 개를 길가에 버렸고 몇몇은 집단으로 학살했다. 이 책에서 쿠키, 스타, 링고라는 세 마리의 개가 중요하게 등장하기 때문에 개들을 학살하는 장면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소수의 사람이 저지른 잘못이 다른 무고한 사람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 가장 슬픈 장면 중 하나는 주인공 기준의 아내가 개에게 물려 죽는 장면이다.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버려진 개들은 거리에서 굶주렸고, 자신의 딸을 병원에 데려가려고 혼자 집을 나선 기준의 아내가 희생된 것이다. 사람의 이익을 위한 선택이 사람을 죽게 했으니, 참으로 모순적이다. 재난 상황에서는 앞만 보고 무작정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이 낳을 결과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편 이 책은 ‘화양시’라는 가상의 도시를 설정해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다룬다. 앞서 이야기한 모든 절망적인 상황은 화양시에서 벌어졌다. 그리고 정부는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서 화양시를 폐쇄했다. 시민들은 전염병으로 가득한 공간에 갇혀서 상황이 회복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양은 무법 도시가 되어갔고 도시 안에서는 전염병이 아닌 다른 이유로 지옥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간호사인 수진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세 명의 남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수진은 책의 후반부까지 이야기를 이끌어가던 주요 인물이다. 간호사의 역할을 최선을 다해 수행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작가는 수진을 가차 없이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작가가 정말로 ‘리얼리티’를 추구한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지옥 같은 상황이 찾아오더라도, 그에 맞서 싸우고 살아남는 주인공이 이 책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실제 현실에서는 그런 아름다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렇기에 재난 상황에서 정부의 대응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아도 올바른 선택으로 인해 더 나은 결과가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

 

 

그럼 이 책에서 정부가 화양시를 봉쇄한 것은 잘못된 대응이었을까? 나라 전체, 넓게는 세계 전체를 위한다면 전염병의 근원지인 도시를 봉쇄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책에서 화양시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분명 잘못되었다. 화양시 시민들의 안전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화양이라는 도시를 ‘버리는’ 태도였다. 책에서도 언급이 되는 것처럼 정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화양을 완전히 포기해버렸다. 필자는 도시 봉쇄와 함께 시민들의 안전 보장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여러 사례도 존재한다. 중국, 이탈리아 등 많은 나라에서 봉쇄 조치를 취했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인권 침해적으로 조치가 이루어졌다. 우리는 ‘28’ 속 화양에서 일어난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격리나 봉쇄가 시행될 때 정부는 시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힘쓸 의무가 있다.1

 

‘28’은 재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따뜻한’ 본성도 담고 있다. 등장인물 5명이 전염병이 퍼진 상황에서 각기 다른 선택을 하지만 그 중 재형의 행보는 놀라울 정도이다. 링고, 스타, 쿠키와 사람들에게 버려진 수많은 반려견들을 보살피는 수의사 재형은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이다. 과거에 썰매개 팀과 경주를 하다가 자신의 개들을 모두 희생시킨 적이 있다. 그 기억을 항상 떠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겉으로 보기에 답답할 정도로 이타적인 그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재형의 행동이 우리의 숨겨진 인간성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은 작품 해설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아이들을 어쨌어?라고 묻는 듯한 썰매개 마야의 눈빛. 그 안타까운 눈빛은 서재형의 트라우마이면서 동시에 그의 가장 아름다운 본성을 일깨우는 영혼의 등대가 된다.” 우리도 우리의 아름다운 본성을 일깨울 수 있지 않을까. 우리도 재형처럼 따스한 심장을 가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혼란스러운 지금,  정부와 시민이 힘을 합쳐 모두를 위한 선택을 이어나가기를 바란다.
 

참고: https://www.hrw.org/ko/news/2020/03/19/339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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