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우의 영화 다시보기] 배트맨이 선택한 정의는 무엇이었는가

영화 '다크 나이트' (2008): 대한민국이라고 불리는 고담에서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정의는 무엇인가?

 

 

"You either die a hero, or you live long enough to see yourself become the villain." -영웅으로 죽거나, 살아남아서 악당이 되거나. - 하비 덴트 (투페이스)의 대사 중

 

우리가 오늘날 흔히 ‘코믹스’(comics)라고 부르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미국에서 창작된, 미국 정서가 가미된 ‘만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코믹스 대부분은 히어로물이 대부분이며, 당연하지만 1980년대 미국의 유명 만화 제작사인 DC를 필두로 하여 히어로물의 영화화가 시작되었고, 이후 할리우드 시장이 발달하면서 할리우드와 코믹스 그리고 히어로물은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코로나 19사태가 벌어지기 1~2년 전만 해도 할리우드를 통해서 실사화가 된 코믹스가 영화관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그 인기는 여전히 실감할 수 있다는 것을 자주 실감한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은 ‘지나치게 상업적이며, 유치하다.’라는 평가를 자주 받는 등, 순수한 작품성 자체로는 평론가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러한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많은 이들에게 아직도 사랑받는 코믹스 영화이자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을 소개할까 한다. 바로 영화 ‘다크 나이트’이다.

 

영화 다크 나이트는 유명 히어로인 ‘배트맨’을 실사화한 시리즈물이다. 정확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의 2번째 작품이다. 애석하게도 이 글을 통해서 시리즈의 모든 영화를 소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확실히 말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는데, 일반적인 코믹스 영화와는 철저한 차별화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족 같은 분위기를 보여주는 코믹스 영화들과는 다르게 작품의 분위기가 매우 어둡고 무겁다는 것이다.

 

캐릭터에서도 이러한 현실성이 부각된다. 크게 3명을 중심으로 생각을 해볼 수 있는데, 그 3명은 세상 물정 모르는 재벌 2세 인척 하는 주인공 브루스 웨인 (배트맨), 빛의 기사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도시의 부정부패를 없애려고 노력하는 젊고 착실한 검사 하비 덴트, 도시를 공포로 몰아넣는 범죄자 조커이다. 브루스는 어둠 뒤에 숨어서 힘을 통해서 정의를 구현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자경단임과 동시에 자경단을 증오한다. 이러한 모순에 대한 해결책으로 그는 하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배트맨으로서의 은퇴를 준비한다.

 

하비는 법과 정치적 제도를 통해서 합법적으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에게 정의는 포용과 법치,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영화 후반에서 조커에 의해 타락한 그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이러한 하비의 타락은 방식은 달라도 브루스와 자신이 정의를 추구한다는 목표가 같다는 점을 보여줌과 동시에 정의를 추구하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준다.

 

한편 조커라는 캐릭터는 완전히 그들과는 동떨어져 있다. 원작에서 그저 미치광이에 불과한 조커는 다크 나이트에서는 인간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저 범죄에 열광하는 사이코패스 기질을 가졌음은 원작과 같지만, 조커는 영화에서 하비를 타락시키는 모습을 보이며, ‘인간들이 말하는 정의는 가치 있는가?’같은 맥락의 질문을 자주 던진다. 겉으로는 그는 심판당하는 존재이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그는 심판하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조커의 존재는 영화에서 핵심과도 같다. 특히 영화 초반에서 보여준 조커의 범죄 장면은 그의 치밀함과 동시에 자신까지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광적인 성격을 보여주며, 관객을 압도한다. 다크 나이트 이후의 영화 속 빌런들의 모습이 다르게 바뀌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다크 나이트 속 조커는 충격적이면서도 기괴하고, 현실적이다.

 

이렇게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정의의 모순적인 부분과 순수한 부분을 보여주고 하비 덴트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정의의 변질을 보여준다. 또한 조커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정의의 한계를 보여주며 영화의 내용은 전개가 된다. 그렇기에 이 3명의 캐릭터는 작중에서 사회에 버림받는 모순적인 존재로 남는다. 대표적으로 영화의 후반부에서 타락한 하비 덴트가 죽게 되자, 브루스는 모든 책임을 지고 자신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게 된다. 직후 경찰서장 고든의 대사인 “그는 고담에 걸맞은 영웅이지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아니란다.”가 나오는데, 이를 통해서 배트맨은 결국 타락한 하비를 위해서 자신 역시 타락한 영웅으로 남게 된다. 참으로 모순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배트맨이 선택한 정의는 모순적이지만 가장 배트맨 다웠던 것인 셈이다.

 

영화 외적으로도 영화의 개성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보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특유의 현실성을 살리는 촬영기법은 다크 나이트에서도 완벽히 반영되었다. 대표적으로 배트맨의 슈트의 경우에는 CG가 아닌 실제로 있는 갑옷이며, 배트맨이 영화 속에서 타고 다니는 차량도 모두 실제로 제작되어 작동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헬기를 추락시키고 건물과 세트장을 실제로 폭파하는 등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현실에서 구현했다고 한다. 그나마 아쉬운 점은 코믹스 영화임에도 액션이 상당히 부실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치밀함 때문인지 몰라도 다크 나이트는 결국 현실적 요소와 비현실적 요소를 괴리감 없이 조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영역의 코믹스 영화를 개척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코믹스를 통해서 정의관에 대한 고찰을 거의 완벽하게 필름으로 표현했다는 점은 많은 관객에게 인정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크 나이트가 오늘날까지도 큰 인기를 얻는 근본적인 이유는 오늘날 한국 사회라는 고담에 던져지는 ‘인간들이 말하는 정의는 가치 있는가?’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제시해주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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