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우혁의 MLB 톡 칼럼] 가장 멋진 야구를 했던 팀, 워싱턴 내셔널스의 2019 명승부 10선-1편

첫 50경기 19승 31패로 창단 이후 최악의 스타트를 보냈던 팀, 150년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최악의 불펜진을 가지고 있던 팀, 최악의 팀 분위기와 감독의 경질설까지 나오며 시즌을 포기하려고 했던 바로 그 팀.

그러나 일말의 빛도 없었던 이러한 상황에서도 내셔널스는 포기하지 않고 결국 역대 최초로 승패마진 -12 이하 팀이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되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워싱턴 내셔널스가 이룩한 기적의 과정을 살짝이라도 엿보고 싶은 팬들을 위해 필자가 올해 워싱턴 내셔널스가 보여준 최고의 명승부 10경기를 선정해 보았다.

 

10

07.14 vs필라델피아 필리스

'야구는 9회 2아웃부터'

패트릭 코빈을 선발투수로 내세운 내셔널스(이하 '내츠')는 코빈이 6이닝 3실점 10삼진으로 잘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사이영상 3위에 빛나는 필라의 에이스 애런 놀라에게 꽁꽁 묶이며 6이닝 동안 한 점을 뽑아내는데 그쳤다. 8회 초 필라델피아 3루수 마이켈 프랑코의 실책으로 한 점을 따라붙었지만, 9회 초 테이블세터 터너와 이튼이 범타로 물러나며 루상에 주자 없이 아웃카운트를 하나 남겨놓은 채 앤서니 렌던이 타석에 들어설 때만 하더라도 필라델피아 홈 팬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러나 내셔널리그 최고의 타자 렌던은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었고, 네리스의 2구를 받아쳐 안타를 만들어낸다.

그떄까지는 네리스와 필리건(필라델피아 팬)들은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10월 26일 만 21세가 된 영건 후안 소토에게는 그 표정이 역겨워 보였나 보다. 소토는 네리스의 초구를 기다리지 않고 받아쳐 기적처럼 역전 투런을 만들어 냈다. (당시 필자는 그 순간을 라이브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후 두리틀이 9회 말을 깔끔하게 막으며 내츠는 패배 확률 99%였던 게임을 승리로 가져가며 와일드카드 1위를 수성했다. 최종 스코어는 4 대 3이었다.

 

9

06.10 vs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전설의 백투백투백투백'

이날은 내츠가 각성했던 운명의 5월 24일로부터 불과 2주 후였고, 내츠의 분위기는 최고조였다. 4경기 연속 위닝시리즈를 챙긴 내츠는 스트라스버그를 선발 투수로 내새워 경기를 시작했다. 경기는 굉장히 팽팽했다. 내츠는 스트라스버그(이하 '스벅') 가 7이닝 동안 단 한점만 내주며 샌디에이고의 타선을 무력화시켰고, 샌디에이고는 오프너 페르도모가 자신의 임무를 완수 후 엘린과 빈켄터가 완벽한 피칭을 하며 8회 스테먼-9회 예이츠라는 승리 공식을 가동하기 시작했었다. 내츠의 불펜은 최악이기 때문에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샌디에이고의 승리가 점쳐졌던 상황, 예상대로 필승조 스테먼이 8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 스테먼의 등판 장면은 이후 200만 뷰를 달성한 영상의 시작 장면이 되었다.) 예상대로 스테먼은 첫 타자 곰스를 안정적으로 잡아냈다. 그리고 투수 스벅 타석에 기용한 대타 하위 켄드릭의 타석, 35세의 베테랑은 2구를 당겨 좌월 홈런을 만들어낸다. 역전 홈런. 덕아웃에서는 켄드릭의 이름 하위를 연호하며 댄스 파티를 벌였다. 고조된 분위기 속 타석에 들어선 트레이 터너, 이번엔 2구를 노려 홈런을 떄려냈다. 덕아웃에서는 '트레이'를 연호하며 한번 더 댄스 파티가 벌어졌다. 그리고 아담 이튼도 2구를 노려 세 타자 연속 홈런을 만들어낸다. (자세히 보면 스테먼의 입에서 육두문자의 모양이 보인다) 아담을 연호하며 또 춤판을 벌인 후, 웃으면서 타석에 들어선 렌던마저 다시 2구를 노려 홈런을 만들어낸다. 팀원들은 3음절인 Anthony(앤서니)를 Anton(안톤)으로 줄여 4번쨰 댄스 파티를 연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7번째 대기록으로, 이미 2016년 이 대기록을 달성했던 워싱턴 내셔널스는 역사상 최초 멀티 백투백투백투백을 달성한 팀이 되었으며, 트레이 터너는 멀티 백투백투백투백을 쳐낸 첫 번쨰 선수가 된다. (이후 한 점만을 내주며 내츠는 5-2 승리를 가져갔다.)

아이러니하게도 크렉 스테먼은 2010년대 초 내츠를 대표했던 불펜 투수였다.

 

8

06.20 vs필라델피아 필리스

'슈어저가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인 이유'

20일 경기에 선발 등판 예정이었던 에이스 맥스 슈어저는 전날 번트훈련 도중 타구에 얼굴을 강타당하며 코뼈가

부러지고 눈에 피멍이 드는 부상을 입었다. 다음날 경기 출전이 불가능했던 상황이었고, 내츠는 조 로스를 선발로 예고했었다. 그러나 검진 후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은 슈어저는 자신이 선발로 오르겠다고 고집하며 출전 의사를 밝혔다.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3위 도약을 확정지을 수 있는 경기였기 떄문에 매우 중요했던 승부인 만큼 슈어저도 에이스인 자신이 던져야만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그것을 해내기 위해 어려운 선택을 내렸던 것이다. 

슈어저의 간곡한 부탁을 마르티네즈 감독은 결국 요청을 받아들였고, 슈어저는 이틑날 눈에 피멍이 들고 코가 휜 채로 마운드에 올랐다. 그는 마운드에서 필라델피아 타자들을 압도했다. 피멍이 든 눈은 오히려 필라 타자들에게 공포심을 불어넣을 정도였다. 6이닝 동안 안타 3개만을 허용하며 빼어난 피칭을 보인 슈어저는 1대 0 불안한 리드 속에 7회에도 마운드에 올라섰다. 그러나 선두타자 에르난데스에게 처음으로 장타를 허용하며 무사 2루 위기에 몰린 맥스 슈어저는 , 이후 크냅과 밀러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며 평정심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필라델피아는 투수 아리에타 타석에 작년 실버슬러거 수상자이자 올해 올스타에 빛나는 J.T. 리얼무토를 대타로 쓰는 초강수를 냈지만, 슈어저는 그마저 삼진으로 잡아낸 후 포효하며 마운드에서 내려온다. 이후 수에로와 두리틀이 2이닝을 완벽하게 틀어막으며 단편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했다. 최종 스코어는 2 대 0이었다.

 

7

05.12 vsLA 다저스

'아기상어 오리진'

19승 31패를 기록하던 희망이 없던 팀 내츠가 기적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것은 '아기 상어' 돌풍을 불러온 헤라르도 파라의 역할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파라가 내츠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경기를 7위 명승부로 꼽았다.

5월 9일까지 14승 22패로 끔찍한 성적을 기록 중이던 내츠는 분위기 반전을 꾀하기 위해 33세의 베테랑 헤라르도 파라를 영입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방출된 파라가 붉은색 유니폼을 입게 된 첫 번쨰 시리즈는 아이러니하게도 샌프란시스코의 라이벌 LA 다저스와의 4연전이었다) 5월 11일 다저스와의 5연전 중 두번째 게임에 소토를 대신하여 선발 출장한 파라는 3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하지만 마르티네즈 감독은 파라를 한게임 쓰고 벤치에 묵혀놓을 만큼 불신하지 않았고, 다저스와의 3번쨰 경기에도 파라를 출장시킨다. 그러나 파라는 세번째 타석까지 삼진-3루 파울플라이-1루 땅볼로 물러나며 예상과 크게 엇나가지 않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경기는 그대로 다저스에게 넘어가는것 같았다. 하지만 내츠는 8회 초 안타와 실책, 볼넷으로 잡은 1사 만루 기회에서 알렉산더를 무너리며 1-2 추격을 시작한다. 역전까지도 노려 볼 수 있었던 상황, 믿었던 최강타자 렌던이 삼진으로 물러나고, 최약타자 파라가 들어설 떄만 해도 다저스타디움 홈 팬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러나 다저스에 익숙했고, 이 경기장에 익숙했으며, 투수 딜런 플로로에게도 익숙했던 파라는 익숙한 스윙으로 이전 라이벌 팀을 무너뜨리는 기적같은 역전 만루홈런을 때려낸다. 5-2 내츠의 역전, 이 스코어가 유지되며 내츠는 승리했고, 후에 팀의 첫 우승에 큰 공헌을 할 헤라르도 파라는 자신의 이름을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6

10.12 / 10.13 vs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마치 6년 전 그날처럼'

몰락한 명가 디트로이트가 마지막으로 챔피언십 시리즈 무대를 밟아본 2013년, 당시 디트로이트의 선발진은 세계 최강이었다. 맥스 슈어저-저스틴 벌랜더(현 휴스턴)-아니발 산체스-존 레스터(현 시카고 컵스)-덕 피스터(은퇴)로 이어지는 선발진은 압도적인 페이스로 디트로이트를 리그 챔피언 후보까지 끌어올렸었고, 디트로이트는 1차전 선발로 리그 평균자책 1위를 기록한 스물아홉 살의 우완 투수 아니발 산체스를 예고한다. 어꺠에 무거운 짐을 얹은 산체스는 6이닝 동안 보스턴 타선에게 한 개의 안타도 내주지 않고, 무려 12개의 삼진을 잡는 말도 안되는 피칭을 보여준다. 1승을 올린 디트로이트는 다음 경기 선발로 맥스 슈어저를 내새웠다. 슈어저 역시 위력적인 투구를 선보이며 7이닝 동안 단 한 점만 허용하며 13개의 삼진을 잡아내는 거짓말 같은 경기를 만든다. 그러나 7차전까지 가는 승부 끝에 디트로이트는 리그 챔피언 자리를 보스턴에게 내주게 되고, 이듬해 슈어저가 내츠와 FA 계약을 맺으며 한떄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원투펀치였던 두 남자는 이별을 하게 된다.

그러나 여러분도 알듯이, 산체스는 내츠로 오게 되었고, 내츠는 기적같은 행보를 이어 나가며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하게 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츠는 디비전 시리즈에서 슈어저 스벅 코빈을 모두 소모하여 산체스를 챔피언언십시리즈 1차전 선발로 내세운다. 그떄의 느낌을 몸이 기억하기라도 한 걸까, 검은색이 아니라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6년 만에 서게 된 챔피언십시리즈 무대, 서른다섯 살의 산체스는 또다시 기적을 만들어낸다. 7회까지 단 한 개의 안타도 맞지 않고 세인트루이스 타선을 완전히 봉쇄시킨 것. 노히트 진행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투구수 문제로 7회 마운드에 서지 못했던 6년 전과 달리 산체스를 믿은 데이브 마르티네즈 감독은 산체스를 8회에도 마운드에 올린다. 그러나 산체스는 8회 2아웃 이후 대타 호세 마르티네즈에게 안타를 허용하고 만다. 노히터가 깨지는 순간이었고, 마르티네즈 감독은 불펜 훈련장에 전화를 걸었다. 최고의 피칭을 보여주고 떠나는 투수를 위해 동료들이 모여들자, 산체스는 좌절하기보다 오히려 동료들을 하나 하나 격려하고, 외야에 있는 동료들에게는 글러브를 들어 올리며 '세인트루이스' 홈 팬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으며 위엄 있게 마운드를 떠난다. 이후 두리틀이 1.1이닝을 틀어막으며 내츠는 역사상 첫 챔피언십시리즈 경기 승리를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2차전, 아니발 산체스가 검은 유니폼을 입고 펜웨이 파크에서 6이닝 노히터를 기록 한 지 정확히 6년이 되는 날, 정말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날 선발은 슈어저였다. 산체스에게 당한 치욕을 씻기 위해 절치부심한 세인트루이스 타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악조건 속에 마운드에 섰지만, 이 남자는 맥스 슈어저이다. 코뼈가 부러지고 눈에 피멍이 들었음에도 110개의 공을 던지고, 옷도 혼자 입지 못할 만큼의 극심한 부상을 딛고 진통제를 맞으며 10시간 비행 후 마운드에 올라 팀에게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긴 바로 그 투수란 말이다. 그리고 그날도 매드 맥스는 이름값을 해 냈다. 7이닝 동안 안타 단 한개만을 내주고 11개의 삼진을 잡아내는 빼어난 피칭을 보인 것, 내츠는 원정 2연전을 모두 승리했고, 스벅과 코빈이 등판한 홈 3-4차전도 모두 승리하며 4연승으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다. 이후 펼쳐진 월드시리즈에서도 결국은 휴스턴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고, 슈어저와 산체스는 6년의 기다림의 결실을 맺은 우승 직후 서로를 껴안으며 이렇게 말한다.

 

 "우승했어, 우리가 결국 우승을 해냈어"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