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겸의 한국사 칼럼 4] 조선에서 여름나기

"아~ 덥다 더워"

 

최근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을 것이다. 건물 밖으로만 나서면 숨이 차오르게 만드는 뜨뜻하고 습한 공기와 따가운 햇빛 때문에 이번 여름 또한 예년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덥게 느껴졌을 것이다. 올해 여름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해가 지날수록 날씨가 더 더워지기에 내년 여름은 어떻게 또 버텨야 하나라는 고민이 든다.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었더라면 여름을 어떻게 보낼지 아찔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수백년 전에는 이러한 선풍기나 에어컨도 없었을텐데 도대체 더위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더위를 이겨냈던 조상들의 지혜를 알아보자.

 

#1. 정약용의 책 <소서팔사>를 읽어보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수많은 책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정약용은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고 관직에서 쫓겨나서 전라남도 강진에 19년 동안 유배당한다. 그 19년 동안 정약용이 쓴 책의 갯수는 무려 500여권에 달한다. 그리고 그 책 중 하나가 이 소서팔사(消暑八事)라는 책이다. 뜻을 해석하자면 '여름을 사라지게 하는 여덟 가지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는 어떤 내용이 숨겨져 있을까?

 

1. 송단호시 : 솔밭에서 활을 쏘기

2. 괴음추천 :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타기

3. 허각투호 : 넓은 정각에서 투호하기

4. 청점혁기 : 대자리 깔고 바둑두기

5. 서지상하 :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6. 동림청선 : 숲속의 매미소리 듣기

7. 우일사운 : 비오는 날 시 짓기

8. 월야탁족 : 달밤에 개울가에서 발 씻기

 

그렇다. 많은 사람들도 느끼겠지만 지금의 피서법과는 다른 방향으로 접근한 피서법이다. 그렇지만 그 옛날 조선 시대에 여름을 피할 방법이야 지금처럼 다양했겠는가? 어떻게 보면 소소하게 제시된 이 피서법들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행동들을 하고 있으면 시원해지지는 않겠지만 더위는 쉽게 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최근 각종 미디어에서도 이 소서팔사가 널리 소개되고 있다. 무작정 시원함을 찾는 것보다 더위를 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2. 더위를 잊게 할 잇템 찾기!

오늘도 더위를 해소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그 결과물로 손풍기, 서큘레이터, 이동식 에어컨을 비롯한 다양한 물건들이 연구되고 사용되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 시대에는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어떤 아이템들이 사용되었을까?

 

우선 첫번째로 소개할 물건은 오늘날에도 흔히 사용되는 부채다. 부채는 접어서 쓰는 부채와 그냥 평범하게 쓰는 부채로 나뉘는데 전세계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널리 사용되었던 물건이다. 이러한 부채는 일본에서 개발되었다는 주장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부채 또한 우수했는데 기록에 의하면 고려시대 제작된 고려의 접부채는 가볍고 가장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내서 일본, 중국, 아라비아까지 수출되었다고 한다.

 

다른 아이템은 역시 지금까지도 종종 사용되는 죽부인이다. 죽부인은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침구인데 사이사이에 구멍을 만들어 놓아서  바람이 들어와 여름의 더위를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한다. 이 죽부인은 또 잠이 드는 것을 돕고 숙면하게 만들어서 수면제의 역할로도 사용되었다. 재밌는 이야기지만 죽부인을 사용하는데도 한 가지 매너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죽부인을 아들이 사용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고 한다.

 

마지막 아이템은 등등거리이다. 등등거리는 생소한 사람이 더 많을 것 같은데 등등거리는 등나무를 엮어서 만든 남자들이 입는 윗옷이다. 이 옷에는 소매가 없고 또 땀이 흐를 때 입으면 옷이 살에 닿지도 않고 바람도 잘 통해서 더위를 이겨내는데 제격인 옷이다. 또 등나무를 이용해서 토시, 조끼 등 다양한 자매품(?)들이 출시되었다고 하니 오늘날에도 만들어봄직한 옷인 것 같다.

 

#3. 얼음을 보존하라!

여러 기록에 의하면 냉장고가 없던 옛날에도 얼음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의 문인인 서거정의 책에는 빙수를 만들어 먹는 것이 최고의 피서법이었다는 기록이 있고 또한 임금이 아끼는 신하에게 얼음을 선물로 주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냉장고도 없었을 조선시대에 얼음을 선물하고, 빙수를 만들어 먹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결은 바로 석빙고다. 석빙고는 얼음을 만드는 장소는 아니었지만 겨울에 얼음을채취해서 이를 여름까지 보관하는 역할을 했다. 어떻게 보면 냉장고 같기도 하다. 석빙고는 원래 신라 시대부터 있었다고 기록에는 남아 있지만 실제로 남아 있는 유적은 조선 시대의 유적이다. 임금이 먹는 얼음은 겨울에 한강에 생긴 얼음을 채취해서 석빙고를 담당하는 관리가 맡아 관리했다가 여름이 되면 임금에게 진상했다고 한다. 석빙고는 지하에 건설되었고 얼음이 여름이면 녹을 수 밖에 없었기에 경사지게 만들어서 배수가 가능하도록 제작되었다. 이를 소재로 만든 영화도 있는데 2012년에 개봉한 영화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조상들이 여름을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사실 옛날 옛적에 사용되었던 피서법이 에어컨과 선풍기가 있는 오늘날보다 절대 뛰어날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산 정약용이 제시한 피서법을 보면 그럴 듯하지 않은가? 이렇듯 마냥 에어컨, 선풍기 앞에서 바람을 쐴 게 아니라 지구를 위해서도 조금만 더운 대신 조선 시대 피서법으로 하루를 지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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