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원의 가요칼럼 7] 사라져가는 전통음악을 담은 퓨전음악

서양 음악 양식과 한국 정서의 만남

요새 길을 걷다가 들려오는 노래를 들으면 한국음악인지 외국 음악인지 단번에 구분하기가 어렵다. 한국 대중음악에 서양의 팝송이 많은 영향을 미치며 음악 양식이 비슷해진 탓이다. 가뜩이나 훅송 형식으로 획일화되어버린 대중음악이 이제는 외국 음악과의 구분마저 어려워지다니, 음악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무척 당황스러울듯하다.


구성지고 흥겨운 전통음악의 특색이 사라져가며, 이를 살려보고자 하는 퓨전 음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퓨전음악이란 여러 장르의 요소와 스타일이 합해진 음악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퓨전 음악의 경우 보편화 된 서양 음악의 양식에 한국 정서가 담긴 전통 음악이 섞여진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이 즐겨듣는 아이돌 노래 중에서도 퓨전 음악을 찾아볼 수 있을까?


(1) 인피니트 ♬_ 추격자

'인피니트'의 세 번째 미니앨범 <인피니티즈(INFINITIZE)>의 타이틀곡인 <추격자>는현대적이고 세련된 비트에 한국적 정서의 가사와 선율이 어우러진 곡이다. <추격자>는 발매 당시 동양풍 가사와 멜로디로 관심을 끌었다. '아이야 먼저 가 어기야 디여라차 어기야디야 되찾을꺼야'와 같이 고전적 분위기를 풍기는 여음구를 가사에 사용하여 한국의 정서를 살리고 있다. 또한, 전체적인 멜로디에서 느껴지는 한국의 가락과 악기 소리가 귓가를 사로잡는 것이 <추격자>의 큰 매력이다.


<추격자>는 팬들에게뿐 아니라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으며 인피니트의 뛰어난 음악성을 확인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인피니트의 히트곡 중 하나로 손꼽힐 뿐, 동양의 정서가 가미된 매력적인 퓨전 음악으로서의 인지도는 높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2) 블락비 ♬_ 닐리리맘보

'블락비'의 히트곡 <닐리리맘보>는 뮤직비디오 도입부에 동양 현악기를 튕기는 소리와 함께 전통적인 느낌을 한껏 담아냈다. 현악기의 단조로운 리듬으로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멜로디를 힙합과 결합하여 신나고 경쾌한 음악으로 탄생시켰다. 특히 <닐리리맘보>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는 태국으로,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극대화해주는 공간을 선택하였다. 뮤직비디오와 함께 음악을 감상하면, 동양적 요소와 서양의 분위기를 동시에 찾아볼 수 있다. 청각적 효과뿐 아니라 시각적 영상을 통해 퓨전음악의 특징을 극대화하였다는 점에서 <닐리리맘보>는 퓨전음악의 장점을 잘 담아내고 있다.


이전의 퓨전 음악이 서양 음악에 동양음악을 가미한 정도였다면, <닐리리맘보>는 서양과 동양의 분위기가 골고루 섞여 퓨전 음악을 하나의 장르로 느껴지게 하는 매력이 있다.


(3) 빅스 ♬_ 도원경(桃源境)

지난 5월 빅스가 내보인 곡 <도원경>은 제목에서부터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동양미를 내뿜는다. '도원경(桃源境)'이란 복숭아꽃이 피는 아름다운 곳을 의미하는 한자어이다. 우리에게는 '무릉도원'의 이미지가 더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도원경>의 동양미는 뮤직비디오에서 가장 크게 드러난다. 실제로 미국 퓨즈티비는 <도원경> 뮤직비디오를 '올해 최고의 뮤비'라고 극찬하였다. 뮤직비디오 속 빅스 멤버들은 전통적인 의상과 함께 고대 동양의 느낌을 주는 세트장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빅스는 <도원경>과 함께 부채춤을 선보였다. 부채춤은 동양의 멋을 살린 춤으로, 동양의 우아하고 부드러운 곡선을 표현할 수 있는 무용의 일종이다. 신스 사운드와 가야금의 선율이 혼합된 <도원경>과 부채춤의 조화는 완벽한 하나의 퓨전 음악을 만들어냈다.


(4) 블락비 ♬_ Secret door

'블락비'의 노래 <Secret door>는 웅장한 현악기와 사극과 어울리는 리듬이 돋보이는 퓨전 힙합곡이다. 이 노래는 사극 드라마 <비밀의 문> OST로 작업 된 곡으로, 힙합과 사극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힙합 아이돌 그룹으로 잘 알려진 그룹 '블락비'가 사극 드라마의 OST 작업에 참여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대중들에게 의아하게 여겨졌으나, 블락비는 웅장하고 비장한 분위기의 드라마 <비밀의 문>에 딱 어울리는 힙합 퓨전 음악을 내놓아 호평을 받았다.


특히 이 곡은 절대 섞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두 가지 장르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동양과 서양의 멋을 분리하여 바라보던 대중들에게 한국 정서의 사극에 힙합 OST를 입힌 것이 신선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한국의 대중음악이 한류의 중심에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으므로 이러한 퓨전 음악의 필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서양의 음악을 쫓다보면 한국의 대중음악은 더 이상 한국의 정서를 담지 못하고 모두 비슷한 리듬에 비슷한 멜로디를 가진 팝송으로 변질될 것이다. 음악의 도입부 또는 후렴구 등에 한국 전통악기의 선율을 넣어 한국의 전통음악을 녹여낸다면 세계에 우리의 음악을 알릴 기회가 된다. 세계화 시대인만큼 다른 국가의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는 것은 좋지만, 지나친 수용은 문화 사대주의의 원인이 된다. 우리의 고유문화를 잃지 않으면서 이를 새로 수용한 문화와 접목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칼럼소개: 가요로 창조된 문화는 세상을 조명한다.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